사랑의 본질 ................................................ 마광수
요즘도 에세이집이라고 하는 책들을 보면, 거지반 다 ‘사랑’ 문제를 다룬 책들뿐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인 잠꼬대로 일관된 것이라서 읽다 보면 저절로 한숨만 나온다. 제목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사랑은 영원한 것’, ‘사랑은 주는 것’, ‘사랑은 영혼의 결합’ 등등, 다 그렇고 그런 소리의 되풀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외국의 유명한 현자들 (예컨대 칼릴 지브란이나 라즈니쉬 같은)이 썼다는 것도 그렇고, 국내의 유명한 시인, 철학자들이 썼다는 것도 그렇고, 나한테는 모두 다 ‘말짱 꽝’이요 거짓말로만 보인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주장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런 책들이 계속해서 잘 팔린다는 사실에 그저 아연실색해질 따름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전부터 많이 되풀이해온 얘기지만, 이 글을 통해서 나는 그 얘기를 다시 한 번 더 강조해 두려고 한다. 요즘의 독서풍토가 너무나 한심스럽고, 또 그런 책들이 대부분 사랑이 무엇인지 미처 잘 모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너무나 많은 피해를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춘기 때 일단 그릇된 사랑관(觀)에 잘못 길들어져버리면, 나이를 먹어서까지도 그 미망 (迷妄) 속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나는 이따금씩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가정주부들로부터 전화상담을 받곤 하는데, 그들이 이제 와서 토로하는 불행한 애정생활의 원인은 한결같이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였다.
알고 보면 사랑은 별 게 아니다. ‘영원’이니, ‘영혼’이니 하는 어휘들은 사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랑은 오로지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접촉감’일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꼭 외국학자의 학설을 인용해 가면서 설명해야만 그 말을 믿어주는 못된 습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어느 외국학자의 실험 예를 하나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H. F. 할로 박사는 갓난 원숭이를 가지고 실험을 하였다. 즉, 새끼원숭이를 어미원숭이로부터 떼어낸 다음, 인공적으로 어미원숭이의 대용물을 만들어 거기서 젖을 빨아먹게 하며 길렀다. 그는 두 개의 대용물을 만들었는데, 하나는 스펀지고무와 헝겊으로 된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이 있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금속으로 만든 것이었다. 물론 둘 다 전기로 가열했기 때문에 따뜻한 느낌은 동일하였다. 그런데 그 실험 결과, 헝겊으로 만든 대용물에는 새끼원숭이가 늘 달라붙어 있었고, 두려운 일이 일어날 때마다 거기에 곧바로 들러붙어 어미에게 대하는 것과 똑같은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금속으로 만든 대용물에는 이와 같은 반응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할로 박사는, 모유든 우유든 ‘따뜻하고 부드러운 접촉감’만 수반한다면 실제 발육 상태에 있어서는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하등의 차이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던 것이다.
물론 원숭이와 인간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느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갓난아기 시절의 애정과 성인의 애정이 어떻게 똑같냐고 물어올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원숭이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고, 나이 든 어른의 애정생활이라 할지라도 그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어린아이 시절과 똑같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시바삐 인간, 그것도 어른 위주의 생명관을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랑을 할 때 서로를 만져주는 데 너무나 인색한 것 같다. 살갗이 조금만 스쳐도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간지럼을 타는 사람들이 많고, 키스를 하더라도 혀를 오므라뜨리기 일쑤다. 그러면서 계속 외롭다는 타령만 해댄다. 그러다 보니 허구한 날 늘어나는 것은 환상뿐이요, 그런 식으로 사랑을 들입다 거룩하게 뻥 튀기다 보면 어느새 사랑은 ‘고상(高尙) 망측’한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만지는 것’이다. 사랑은 ‘영혼의 대화’가 아니라 ‘살갗끼리의 대화’이다. 사랑은 ‘정신적 신뢰감’이 아니라 ‘육체적 신뢰감’이다. 사랑은 ‘살갗끼리의 접촉’이 주(主)가 되지 ‘성기끼리의 접촉’만은 아니다.
확실히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범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것도 사랑이요, 핵전쟁을 막아줄 수 있는 것도 사랑이다. 그러나 잘못된 사랑관(觀)은 더 위험하다. 무작정 신기루만 쫓아가다 보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허탈과 분노, 그리고 적개심뿐이기 때문이다.
(마광수 에세이집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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