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 대하여 >.............,,,,,,,,,,,,,,,......,, 마광수
일본에서 지금 제일 높게 평가받고 있는 작가를 들라면 아마도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일 것이다. 199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나 1968년에 노벨문
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는 나쓰메 소세키만큼 전국민적 사랑을 받고있
지 않다.
특히 오에 겐자부로는 문단에서나 독자들에게 시큰둥하게 취급받고 있다. 생각컨대 오에
의 작품이 지나치게 서구적 지성과 관념으로 충만돼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오에에 비
하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특히<雪國>)은 가늘고 섬세한 일본적 정서와 감상을 다
루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사랑 받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가 지금 1천엔짜리 일본화폐에 그의 초상이 들어갈 정도로 존경받고 있는
까닭은 작품 자체도 훌륭하지만, 그가 일본 근대문학의 개척자이기 때문이다.
1867년에 태어나 1916년에 죽은 그는 말하자면, 일본의 이광수(李光洙)라고 할 수 있다.
출생시기로는 25년의 차이가 있으나, 나쓰메가 명치(明治) 유신 직후에 태어났고, 이광수
가 갑오경장 직전인 1892년에 태어났다는 점으로 볼 때 두 사람 다 개화기의 시운(時運)
을 타고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 문학의 다른 점은 나쓰메 소세키는 아직까지도 국민들에게 애독되고 문학
성 면에서도 크게 칭찬받고 있지만, 이광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내가 봐도 이광수의 소설은 그 주제가 너무나 진부하고 교훈적이다. 이광수가 말년에 친
일을 했고 안 했고를 떠나서, 이광수의 문학은 이제 고작 문학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밖에는 인정 못받게 되었다.
이점이 바로 내가 원통하고 절통하게 생각하는 점인데, 일본이 우리의 원수라고 아무리
따져봤자, 그리고 '일본은 없다'고 아무리 외쳐봤자, 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아무
래도 일본에게 한수 밀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그 까닭을 유추해보자면, 일본은 근대문학 초기부터 문학의 독자성을 인정했고, 우
리나라는 문학을 유교윤리나 기타 다른 관념의 포장물이나 훈민적(訓民的) 계몽서로밖에
보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한국문학은 '이광수주의'로부터 한
발짝도 못벗어나 있다.
내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생때였다. <나는 고양이다>와 <도련
님>이 그것이었는데, 특히 <도련님>을 읽고나서 나는 미칠듯한 울화와 질투를 느꼈다.
일본에서 최초로 씌어진 근대문학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이광수식의 촌스러운 훈계나 잔소
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옛날에 씌어진 케케묵은 작품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생생한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다>는 연작형태로 된 일종의 수필적 소설인데, 나쓰메 소세키의 데뷔작이
다. 어느 시골 선생의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화자(話者)로 삼아, 인간이란 동물의 위선
과 허위의식을 냉소적으로 풍자.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말하자면 윤리, 도덕, 철학 등 외형적인 가치보다는 인간심리의 심연에 보다 깊숙이 접근
해 들어간 소설인 것이다. 이 작품에 비해보면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인 이광수의 <무정>
은 오로지 엘리트적 시혜의식(施惠意識)과 유치한 윤리의식으로만 가득 차 있다.
<봇짱(도련님)>은 짧은 중편인데, 내가 나쓰메의 소설들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다.
우직할 정도로 단순. 정직한 성격을 지닌 남주인공이 학교를 졸업하고 시골 중학교의
수학선생으로 부임해 가서 겪는 일종의 모험기다.
그 학교 선생들은 교장에서부터 하나같이 썩어 있다. 뇌물을 받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들 승진에만 눈이 시뻘개져서 복지부동과 무사안일, 그리고 이중적 위선으로 똘똘
뭉쳐 주인공을 화나게 만든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못된 위선자 한명을 흠씬 두들겨패주고 학교
를 떠난다는 얘기다. 이 작품은 성격창조의 면에서 크게 성공한 소설인데, 관념적이고 현
학적인 사고를 즐기는 우유부단한 지식인이 아닌 단순, 솔직한 지식인을 창조해 냈다는
점에서 빼어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일본에는 우리나라처럼 민족이니 역사니 하는 것들을 주제나 소재로 삼아 대하소설을 써
야만 인정받는 문학풍토가 없다. 그래서 그들의 문학은 어느정도 '세계성'을 확보할 수 있
었다.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인간 개인의 문제에 깊이 천작할 수 있을 때, 그 때 문학은 비로소
세계적 보편성을 갖는다. 이념이나 이데올로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 역시 시대에 따라
변덕스럽게 변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관념적 주제를 가진 작품에만 가치를 매기다 보면
'세계적 문학' 을 바라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본이 얄미워서라도 한시바삐 관념
적 교훈주의 문학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