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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더럽고 불편하게 똥 누기 / 마광수

작성자광마|작성시간12.09.19|조회수1,459 목록 댓글 0

[단편소설] 더럽고 불편하게 똥 누기 ................................... 마광수

여자가 불쑥 움직인다. 여자는 허리와 다리를 움직여 일어설 태세를 취한다. 그러면서도 여자는 여전히 남자의 자지를 머금은 채로 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눈을 정색을 하며 주시하고 있다. 여자의 눈빛은 초점이 정확할 뿐 만 아니라 이상스럽게 또랑또랑하다. 여자가 남자에게 말한다. 아무래도 뒤가 급해 화장 실에 가야겠어요. 여자는 몸을 반쯤 일으킨 다음 남자의 자지를 입에서 뽑아낸다. 그리고는 다시 남자의 눈 을 바라본다. 여자는 남자에게 다시 이렇게 말한다. 혼자 가기 무서워요. 같이 가주세요. 남자가 주섬주섬 일어난다. 남자의 자지가 그냥 바지 바깥으로 늘어져 내려와 있다. 남자 는 자기의 자지를 바지 속으로 도로 거둬들이고서 지퍼를 채운다. 이어서 여자가 완전히 일어선다. 그 동작은 느릿느릿 게으른 동작이다. 도무지 뒤가 마려 운 여자 같지가 않다. 하지만 여자 자신으로서는 느릿느릿 게으른 동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뒤가 마렵지 않은데도 뒤가 마려운 체하는 거짓 동작이 아니었을지 도 모른다. 엄청나게 긴 손톱과 엄청나게 긴 발톱을 늘 신경 쓰며 간수해야 하는 그녀로 서는, 매사의 모든 동작이 느릿느릿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여자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난 뒤 백을 뒤져 화장지를 거낸다. 화장지의 색깔은 짙은 황금 색이다. 그래서 그걸 물 묻혀 똘똘 뭉쳐놓으면 흡사 대변처럼 보일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남자도 몸을 굽혀 주섬주섬 가방을 뒤진다. 꽤 오래 걸려 손전등을 찾아낸 남자가 손전등 을 쥐고 여자의 뒤를 따라나선다. 방 밖으로 나오니, 무더운 한여름이라 맵싸한 기운을 풍기는 청량(淸凉)한 밤공기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방 안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변소는 널찍한 마당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변소 가까이 오자 벌써부터 분뇨 냄새가 풍 긴다. 그 냄새는 구릿하고 비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숨막힐 듯 매운 기운을 풍기는 냄새 다. 아마도 분뇨가 오랜 시간에 걸쳐 부패하며 만들어낸 메탄가스 때문일 것이다. 남자가 먼저 변소의 거적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변소 흙바닥엔 아주 얕게 구멍이 파 져 있고, 그 곁엔 재로 덮여 있는 높다란 무더기가 있다. 손전등을 비춰 자세히 들여다보 니 겉만 재일 뿐 그 안은 다 분뇨다. 거름으로 쓰기 위해 분뇨가 배설되는 대로 곁에다 쌓 아놓고 썩히고 있는 것 같다. 변소 귀퉁이에는 변을 본 후 분뇨를 곁으로 쳐 옮겨놓기 위해 쓰는 도구인 듯, 길다란 나 무 삽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야트막한 구덩이 양쪽 켠엔 두 발을 딛고 앉아 변을 보라는 것인 듯, 시멘트 벽돌 두 장이 놓여 있다. 남자가 비춰주는 손전등 빛을 따라 여자가 조심조심 변소 안으로 들어간다. 커다란 랜턴 이 아닌 소형 손전등이라서 불빛이 흐리다. 여자가 불안한 자세로 벽돌 두 장에 양 발을 올려놓는다. 여자는 부츠를 벗지 않은 상태로 있다. 그러고 보니 여자는 아까 방 안에서 뭉그적거릴 때도 부츠를 벗고 있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가 굽 높은 뾰족부츠를 신고서 좌식 변기가 아닌 재래식 변기에서 어떻게 변 을 보려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여자가 신고 있는 구두는 무릎을 구부리기 힘 들게 만들어진, 특별하게 길고 꽉 조이는 가죽 부츠다. 그런데도 여자는 부츠를 벗지 않는다. 여자는 벽돌 위에 두발, 아니 두 구두굽을 올려놓고 서서 천천히 무릎을 구부리며 엉덩이를 바닥 쪽으로 하강시키고 있다. 하지만 역시 부츠 때문에 무릎이 완전히 접히지는 않고, 허벅다리와 장딴지 사이의 각도가 100도 정도 되게 까지만 구부러져 아주 불안하고 엉거주춤한 자세가 된다. 여자는 그 상태를 유지하며 빳빳한 가죽 줄을 엮어 만든 타이트한 초미니스커트를 힘겹게 위로 말아올리고 변을 보기 시작한다. 하이힐뿐만 아니라 뾰족부츠에도 습관이 들었나보 다. 아니, 하이힐이나 뾰족부츠를 신고 재래식 변소에서 변을 보는데 습관이 들었나보다. 아니아니, 그럴 리가 없다. 여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화장실엔 좌식 변기가 설치돼 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힘겹게 대변 보는 모습을 계속 주시하며 서 있을 수도 없고 해서, 손전등을 비춰주고 있는 상태로 고개만 마당 쪽으로 돌려 시선을 옮긴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다 보 니 아무래도 손전등의 조명 각도가 자주 어긋나며 불빛이 흔들거린다. 얼마 후 여자가 날카로운 손톱 끝으로 손전등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을 콕콕 찌르고 있는 게 남자에게 느껴진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서워요, 더 가까이 와서 플래시 를 비춰주세요! 남자가 여자 곁으로 바짝 다가가 손전등을 비춰준다. 그래서 변소 안이 조금은 더 환해지 고, 여자의 드러난 엉덩이가 남자의 눈에 완연히 들어온다. 여자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반 은 앉고 반은 서 있는 것이 무척이나 불안해 보인다. 그러나 여자는 그런 상태로 한 이십 분쯤 시간을 보낸다. 갑자기 여자가 치마도 내리지 않은 상태로 변소에서 뛰쳐나온다. 아니, 사실 '뛰쳐나왔다' 는 표현을 쓸 수는 없다. 다리가 아파서 그런지, 부츠 자세가 불편해서 그런지, 드러난 성 기에 대한 무의식적 부끄러움이 작용해서 그런지, 아니면 세 가지 이유가 합쳐져서 그런 지 그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자는 변소에서 뛰쳐나오지는 못했다. 다시 말해서 여자는 변소에서 급하게 나오기만 했지 뛰쳐나오진 않았다. 차라리 약간 어기적거 리며 나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표현을 쓰면 여자가 황급 한 표정으로 변소를 탈출했다는 의미의 뉘앙스를 담기 어렵다. 그래서 일단 '뛰쳐나왔다' 는 표현을 써본 것이다. 어쨌거나, 여자는 변소 밖으로 나와 남자에게 눈살을 약간 찌푸리며 또랑또랑한 시선을 보낸다. 또랑또랑한 시선으로 봐서 다리가 아파서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여자가 남자에게 말한다. 너무 냄새가 나서 도저히 뒤를 못 보겠어요. 이 동네는 정말 더러운 동네군요.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간다. 남자가 여자에게 말한다. 그럼 밖에 나가서 뒤를 보지 그래. 그 편이 낫겠어. 여자가 멈춰 서서 미니스커트를 제자리로 끌어내린다. 그래서 여자의 걸음걸이가 한결 가 뿐해진다. 남자의 뒤를 따라 여자가 느릿느릿 걸어간다. 이번의 '느릿느릿'은 확실히 꽉 끼 는 부츠 하나만이 원인이다. 집 밖으로 나가 조금 걸어 가다보니 야트막한 잡풀들이 보드랍게 나 있는 꽤 아늑하고 동 그만 공간이 있다. 남자는 좌우를 둘러보며 혹시라도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다. 어둠에 묻힌 마을은 확실히 고요 속에 놓여 있고, 확실한 정적 속에서 잠들어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말한다. 여기가 좋겠어. 아무도 볼 사람이 없으니 걱정말고 뒤를 봐. 여자가 다시 치마를 올리고 엉덩이를 까고 나서 아까처럼 엉거주춤 뒤보는 자세로 다리를 꺾는다. 남자는 이번엔 아예 여자 곁에 붙어 서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손전등을 비춰준 다. 다시 이십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다. 여자가 문득 다리를 꼿꼿히 세우고 일어선다. 그리고 남자에게 뭔가 호소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말한다. 다리가 아파서 도저히 뒤를 못 보겠어요. 그러고 보면 아까 변소에서 여자가 취한 엉거주춤한 자세는 습관되고 숙달된 자세가 아니 었던 셈이다. 여자는 역시 서양식 좌변기에서만 변을 봤을 게 틀림없다. 그러니 아주 화급 하게 배설되는 설사가 아닌 한, 그렇게 불안하고 불편한 자세를 오래도록 유지하며 변을 볼 순 없었을 것이다. 남자는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윽고 주위를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 다. 아마도 여자가 앉을 수 있을만한 돌을 찾는 것 같다. 잠시 후 남자는 두 개의 돌을 찾아가지고 그것을 힘겹게 옮긴다. 그러고 나서 여자가 양쪽 궁둥이 가장자리를 붙이고 걸터앉을 수 있게 적당한 간격을 두고 돌을 놓는다. 여자가 두 돌 사이에 항문을 조준하며 앉고, 남자가 계속 손전등을 비춰준다. 한참 동안의 긴 포즈 (pause). 아니 긴 건너뛰기. 갑자기 여자가 기겁을 하고 비명을 지르며 화닥닥 일어선다. 희미한 손전등 불빛에도 그녀 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는 게 보인다. 남자가 놀라 가까이 다가가보니, 꽤 굵다란 뱀 한 마리가 여자의 부츠에 감겨 있다. 여자는 계속 비명을 질러가며 정신 없이 발길질을 해 뱀 을 떨어내려한다. 남자도 구두 끝으로 정신 없이 뱀을 쫓는다. 드디어 뱀이 떨어져나간다. 여자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황급히 그곳을 벗어난다. 여자는 대변보기를 단념한 것 같다. 아니, 더 오랫동안 대변보기를 단념한 것 같다. 여자가 그 사이에 대변을 조금이라도 배출 시켰는지 배출시키지 못했는지,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 여자가 화장지로 밑을 닦지 않는 걸로 봐서 대변을 배출시키지 못한 것도 같다. 그러나 대변을 배출시키고도 뱀 때문에 놀 라 밑 닦는 걸 잊어버렸을 수도 있으므로, 대변을 배출시키지 못했다고 확실히 단정 할 수 는 없다. 아니 뱀 때문이 아니라 그냥 밑을 안 닦았을 수도 있다. 대변을 보고 나서 밑을 꼭 닦으란 법은 없다. ☆ (마광수 장편소설 <페티시 오르가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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