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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못난이였던 나 / 마광수

작성자광마|작성시간12.11.19|조회수239 목록 댓글 0

[단편소설] 못난이였던 나 ............................................... 마광수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일이다. 그때 연세대 동아리인 연세문학회 학생 20명과 이화여대 이화문학회 학생 20명이 어느 카페를 빌려 그룹 미팅을 한 적이 있었다. 제비뽑기로 각자 의 파트너를 정했는데, 나한테는 하필이면 제일 못생긴 여학생이 걸렸다. 이화여대생 20 명 중에서는 정말 그림같은 미녀가 한 명 있었는데, 서로 통성명을 할 때 들으니 그녀의 이름은 김리나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내 파트너로 배당되지 않은 것을 한탄하며 어영 부영 시간을 때우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에 뜻밖에도 리나한테서 전 화가 왔다.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아냈는지 정말 신기하였다. 전화로 그녀는 내게 거두 절미하고 이렇게 말했다. “내일 저녁에 저랑 만날 수 있어요?” 그녀가 전화로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내 염통은 벌렁벌렁 뛰었다. 또 콩팥에도 이상 현 상이 생겼는지 갑자기 오줌이 마렵기도 했다. 내가 돌연한 충격 때문에 말을 제대로 못하 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리나는 일방적인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일 저녁 6시에 명동 <캠퍼스 카페>로 나오세요.” 그러고서 그녀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의 일방적인 행동에 조금 화가 나기도 했지만, 고금 뒤부터 내 마음은 고무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리나와 나 둘만의 만남이 너무 수월 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저녁 6시에 나는 <캠퍼스 카페>로 나갔다. 리나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 는 배시시 웃으면서 아는 체를 했다. 차를 시켜 마시면서 우리 두 사람은 별로 말이 없었 다. 내가 침묵을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왜 저를 만나자고 했습니까? 그리고 제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내셨지요?” 그러자 리나는 별로 억양이 없는 어조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그중 제일 잘생겨서요. 전화번호는 연세대 국문학과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물어 봤어요.” 나는 47 kg 밖에 안 나가는 빈약한 육체와 특히 어깨가 좁은 것에 커다란 콤플렉스를 갖 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그녀에게 하며 놀리지 말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녀는, “당신의 우뚝한 코 하나만은 정말 명품 중의 명품이에요. 당신 코에 반했어요. 그리고 저는 날씬하게 마른 남자가 좋아요. 당신은 키도 큰 편이고 몸매가 정말 날씬해요.” 하고 심드렁한 어조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한테 ‘당신’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그리 기분나쁘지 않게 들렸다. 마치 부부사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 리나 씨는 남자를 볼 때 외모만 보시나요?” “그럼요. ‘겉볼안’이거든요. 그리고 아까 빠뜨린 건데, 당신의 계란형 얼굴 윤곽과 쪽 빠 진 하관도 정말 한국인으로서는 보기 드문거죠.” “리나 씨가 그렇게 비행기를 태우니까 쑥스럽네요. 그럼 저도 답례를 하기로 하죠. 전 이 제껏 리나 씨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미팅 때 읽으신 자작 시(詩) 도 정말 좋았어요.” “그건 당신 시(詩)도 마찬가지예요. 무척이나 감동적인 시였어요. 당신은 머리가 좋은 남 자인 것 같아요. 우리, 앞으로는 편지로 시를 교환하기로 해요.” “내 외모입니까, 내 시입니까? 리나 씨가 반한 대상이요.” “물론 외모가 제일 중요하죠. 시 쓰는 능력은 곁따라 온 거구요. 당신도 그런 거 아닌가요?” “제가 보기에 리나 씨도 아주 미인인데 그동안 애인이 없었나요? 분명 추근거리는 남자들 이 많았을텐데요.” “물론 애인도 많았고 추근대는 남자도 많았죠. 하지만 전 그때 그때 기분내키는대로 계속 파트너를 바꿔왔어요.” 황당할만큼 어이없는 대답이었다. 그럼 나도 그녀의 ‘사랑의 먹잇감’ 중 한 사람에 불과하 다는 얘기가 아닌가. 내가 좀 뚱한 표정으로 한참동안 대답을 안 하고 있자, 리나는 명랑한 어조로 이렇게 말한 다. “그렇게 너무 심각한 척 하지 마세요. 연애는 그저 그때그때 상황봐가며 ‘즐기는’ 거예요.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순진하시네요. 자, 우리 여기서 나가요. 술이 고파서 죽겠어요. 그 리고 춤도 고프구요.” 춤이 고프다? 그럼 리나는 춤추기를 즐긴단 말이로군. 사실 나는 여자를 만나오면서 춤을 추러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당시에는 대학생 전용의 값이 헐한 댄스 클럽이 없었을뿐더러, 대학생들이 춤을 잘 추지도 못했다. “춤은 제가 잘 못추는데…….” “그냥 분위기만 즐기면서 적당히 몸을 흔들기만 하면 돼요. 참, 그리고 오늘 술값은 제가 낼테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만나자고 한 게 저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리나는 금세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주춤거리며 그녀를 따라 나갔는 데, 그녀는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내 팔장을 끼고서 유유히 걸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게 왠 떡이냐’하는 심정보다도, 그녀한테 모든 걸 리드당하는 것 같아 조금 자존심 상하는 걸 느꼈다. 그렇지만 역시 내 가슴은 리나에 대한 연정(戀情)과 기대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리나는 명동을 빠져나와 큰 길로 나오더니 지나가던 택시를 한 대 불렀다. 그리고 차에 오 르자마자 택시 기사에게, “아저씨, 이태원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태원은 처음이었다. 미군과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만 알았지 직접 가보지는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부쩍 호기심이 났다. 이태원 거리를 죽 지나가다가 리나는 어느 큰 건물 앞에서 차를 스톱시킨 후 차에서 내렸 다. 물론 나도 따라 내렸다. 건물 입구를 보니 <해밀톤 호텔>이라고 적혀 있었다. 건물 앞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미군과 외국인들이었다. 나는 <해밀톤 호텔>은 물론이고 그 어떤 호텔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리나는 다시 내 팔 장을 끼고서 호텔 안으로 들어가 지하로 내려갔다. 그러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외국인 전용 호텔이라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넘기고 나이트 클럽에서 밤을 새워 가며 술을 마시고 춤을 춰도 괜찮은 곳이에요.” “외국인 전용 호텔 나이트 클럽인데 우리가 어떻게 들어가죠?” “잘 아시잖아요. 한국이란 나라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라는 사실을요.” 그녀는 더 이상 설명을 해주지 않고서 나이트 클럽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자주 가는 곳인 듯, 문지기 웨이터가 그녀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나는 못추는 춤을 추기도 겁났지만 밤을 새운다는 말에 겁이 덜컥 났다. 역시 내가 소심한 모범생이기 때문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리나는 목이 마르다며 맥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배도 채울 겸해서인지 닭다리 튀김을 안주로 시켰다. 그러고는 그때부터 줄창 줄담배였다. 나도 술이 고팠던지라 나온 맥주를 맛있게 들이켰다. 그리고 닭다리도 열심히 뜯었다. 또 그녀에게 질세라 담배도 열심히 피워댔다. 아직 시간이 이른지 나이트클럽 안이 한산 했다. 그런데도 무대 위에서는 소규모의 악단이 조용한 생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술과 안주로 얼추 배가 불러오자 손님들이 더 많이 들어왔고, 악단도 음악을 춤추기에 좋 을 걸로 무드 나게 연주했다. 악단의 연주가 어느 곡에 이르자 리나가 내 손을 잡아이끌고 서 무대 앞에 마련돼 있는 넓은 플로어로 나간다. 그러면서 내게, “이건 제가 너무나 좋아 하는 느린 곡이에요. 춤을 추지 않으면 본전이 아깝죠. 당신도 춤에 너무 겁먹지 말고 적당 히 몸을 흐느적거려 주세요.” 하고 말한다. 내가 곡의 제목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찰리 차프린이 감독과 주연을 같이 맡은 영화 "Lime light"의 주제가인 "Eternally"라고 했다. 그렇다명 상당히 오래된 노래를 리나가 알고 있는 셈이었다. 나도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다. 무대 위의 악단은 노래 없이 연주곡으로만 그 곡을 감칠맛나게 들려주고 있었다. 리나가 내게 몸을 찰싹 들러붙이고서 내 손을 잡은 후 춤을 리드해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 의 발을 안 밟으려고 애쓰면서, 진땀을 흘려가며 구색을 맞춰보려고 어기적어기적 스텝을 밟아나갔다. 연주가 끝나자 나는 그래도 그녀의 발을 안 밟은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테이블로 돌아왔 다. 십년감수한 기분이었다. 그녀와의 포근한 살갗접촉 때문에 나는 저으기 흥분이 되어 맥주를 더 빠른 속도록 들이켰다. 하지만 리나가 워낙 주량이 세서 거기에 따라가는 것이 꽤나 힘들었다. 조금 있다가 빠른 템포의 연주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때 유행했던 고고 리 듬인 것 같았다. 리나가 반색을 하며 내 손을 잡고서 춤을 추자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빠 른 춤은 워낙 자신이 없어 한사코 안 나가겠다고 버텼다. 그러자 그녀는 혼자 플로어로 나 가서 멋지고 신나게 몸을 흔들어댄다. 나로서는 또 다른 ‘유미적(唯美的) 경탄’의 순간이 었다. 이런 식으로 술마시고 춤추고 담배 피우다가 통행금지 시간을 넘겨버렸다. 그러자 리나가 나보고 호텔 방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나는 덜덜 떨리는 한기(寒氣)를 느끼며 그것만은 못하겠다고 했다. 찬란하게 아름다운 다이아몬드에 상처를 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정말 순진한 것도 아닌, 바보에다 멍청이에다 못난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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