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부럽고 무서워 ................................................... 마광수
페티시즘적(的) 쾌감의 대상인 페티시(fetish) 가운데는 여성의 긴 머리카락도 들어간다.
나는 여자의 긴 손톱에 특히 열광하고 있지만, 사실 긴 손톱 자체보다도 ‘여자가 손톱을
마음껏 기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광적인 선망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자의
긴 머리카락을 보며 느끼는 심리도 그런 것은 아닐까. 물론 나도 손톱을 길게 기르려면
기를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머리카락도 길게 기를 수 있다. 하지만 남자가 손톱이나
머리칼을 길게 기른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불결해 보이기만 하고 도저히 아름답다고 말
할 수 없다.
설사 내가 이 시대가 아니라 고대나 중세 시대에 태어났다고 해도, 나는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며 관능적 나르시시즘을 맛볼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중국의 왕이나 귀족들은 모두 다
손톱을 길게 길렀고, 근세까지만 해도 서양이든 동양이든 모든 남성들은 머리를 길게 기
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름다움으로까지 연결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긴 손톱이 주는 상징적 의미가 남자의 경우엔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표시에 국
한되지만, 여자에게는 거기에 덧붙여져 ‘관능적 아름다움’의 의미가 첨가된다. 그렇다면
나는 겉으로는 남자라면 누구나 원하는 사디스틱한 쾌감을 맛보길 바라고, 속으로는 여성
이 원하는 마조히스틱한 쾌감 대신 긴 손톱이나 긴 머리카락 등의 페티시를 마음껏 아름
답게 가꿀 수 있는 여성 고유의 권리를 몹시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무튼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더 행복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
니 자연히 내 시 가운데 페티시스트로서의 나의 심리적 특성과 함께, 여성이 갖고 있는 가
장 중요한 심리적 특성인 마조히스트로서의 특성이 자주 묘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
까지 생각을 발전시키다 보니까 비로소 나는 나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나의 오른손 검지손가락은 평상시의 버릇대로 오른쪽 무릎 위의 허공을 맴돌며 불안
하게 춤추고 있었다. 아아, 그래서 나의 손가락은 언제나 불안한 것이로구나! 나의 유별나
게 긴 손가락들에 대해서 나는 은밀한 자부심을 품고 있었고, 그 자부심의 근원은 내 말라
빠진 손가락의 길쭉한 모양새가 여자의 손가락을 닮았다는 데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손가락들은, 남성의 그것도 아니고 여성의 그것도 아닌 어정쩡한 중성(中性)의 상태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고, 6십 년 가까운 세월을 계속 불안에 떨며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었
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페티시스트의 근본 심리를 해부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
다.
페티시즘은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한 혐오감’이나 ‘무생물에의 동경’보다도, ‘중성적(中性
的) 심리’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거기에는 남자로서 강건한 육체를 지니
지 못한 데 대한 열등감이 작용한다. 내가 여자를 부러워하고 또 여성이 되고 싶어하는 것
은, 연약한 여성일수록 오히려 더 아름다워 보이고 또 남성에게 보호본능을 유발시켜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이점(利點)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생각에 깊이 열중하여 페티시즘의 심리적 본질을 내 나름대로 우선 총괄해서 정리해
보려고 낑낑거렸다. 내가 갑자기 그러한 사념 속에 빠져든 것은, 어쩌면 여자와 같이 지낼
밤이 두려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논리나 이성보다 감성이나 관능이 훨씬 더 소중한 것이
라고 항상 외쳐대면서도, 막상 야한 여자를 앞에 놓고 보면 결국 비겁하게 이성(理性)이나
논리 쪽으로 발뺌을 해대는 게 나의 버릇이었다. 이성을 핑계나 방패로 내세우면서 허약한
육체에 대한 뿌리 깊은 열등감이 한결 가셔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고상한 지식인들이 하나같이 정신적 사랑만을 외쳐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
들 원시적 정력이나 건장한 육체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서 그렇다. 쇼펜하우어 같은 사
람은 평생 동안 여자의 속물근성을 증오하는 글을 써가며 독신으로 살았는데, 그가 정말
로 여자를 싫어했는지, 아니면 그의 ‘정력 없음’이 여자를 싫어하는 체하게 만들었는지 그
속사정은 사실 아무도 모른다.
정력(精力)…`…, 정력…`…, 그 우라질 놈의 정력! 남자는 역시 ‘정력’이었다. 살모사, 지렁
이, 굼벵이, 두꺼비, 해구신 같은 것들을 몬도가네식(式)으로 먹어서 변강쇠나 람보 같은
정력이 생겨날 수만 있다면, 나는 설사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의 비방(秘方)이 구더기나 송
충이나 회충, 촌충, 아메바라 할지라도 닥치는 대로 먹어대고 싶었다. 나는 점점 더 성욕
에 가속도가 붙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긴긴 밤의 방사(房事)에 대한 공포감으로부터 벗어
나기 위해서, 나의 두뇌를 그 알량한 ‘이성적 지식인’답게 이리저리 분석적으로 회전시켜
나가곤 했다.
(마광수 장편소설 <권 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