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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행위에 대한 동, 서양 관점의 차이 / 마광수

작성자광마|작성시간14.12.16|조회수377 목록 댓글 0

배설행위에 대한 동, 서양 관점의 차이 ................................. 마광수

사람의 육체적 신진대사는 결국 먹는 것과 싸는 것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니 어쩌니 떠들어대봤자 그 점에 있어서만은 동물과 다름이 없다. 먹는 것이 더 중 요하게 여겨지고 싸는 것은 그보다는 덜 중요하게, 아니면 훨씬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사실상 먹는 것보다는 싸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변비증이 만병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이젠 누구에게나 상식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요즘 에는 먹을 걱정이 점차 없어지면서 미식가들이 늘어나 변비증 환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 는 형편이다. 예전에는 섬유질이 많은 거친 음식을 주로 먹었기 때문에 변비증이 별로 없 었으나, 요즘엔 조식(粗食)을 싫어하기 때문에 변비증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먹기만 하고 배설을 못할 경우에 몸 안에 남아있는 음식물 찌꺼기들이 각종의 독소를 뿜어내어 여러 가지 병을 유발시킨다. 배설행위를 즐거운 일로 보느냐 아니면 더러운 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시대의 문화풍토 가 달라질 수도 있다. 대체로 정신주의적 (또는 이성주의적) 풍토가 강한 환경에서는 배 설을 더러운 일로 여기게 되어 변을 보는 일을 될 수 있는 대로 기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변비증이 많아진다. 또 역으로 배설이 제대로 안 되면 정신주의적 문화풍토가 이루어진 다고 볼 수 있다. 그와 반대로 배설을 즐거운 일, 당연한 일로 여기는 환경에서는 정신주 의적 문화풍토보다는 육체중심의 문화풍토, 나아가서는 정신과 육체를 일원론적으로 파 악하여 ‘정리겸고(情理兼顧)’를 이상으로 하는 문화풍토가 이룩되는 것이다. 고대의 희랍시대에는 헬레니즘 문화의 전성기였다. 때문에 인간 중심, 육체 중심, 쾌락 중심의 문화풍토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도 연극의 목적을 자연스럽게 배 설, 즉 카타르시스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세 이래로 서구사회가 점점 금욕주의적인 정신주의의 풍토로 변해가면서 육체는 정신보다 더러운 것으로 간주되고 모든 배설행위 (대변 또는 정액 등)는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배설 기피의식은 더욱 악순 환을 가져와 정신주의와 이성주의의 방면으로만 서구 문화를 치닫게 했던 것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에 변소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특히 여성들 은 몰래 아무 데서나 배설을 해야 했기 때문에 변을 본다는 것이 크나큰 고통이었다. 18 세기까지 유럽에는 궁전에조차 변소가 없었다. 프랑스 문화의 대표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귀부인들은 궁전 복도의 후미진 곳이나 가로수 밑을 찾아가 대소변을 봐야만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 궁전이 가로수 길은 ‘신음의 가로수 길’이 라고 불리웠다. 루이 14세의 동생의 아내였던 엘리자베스 샤를로테가 하노버 선제후(先 帝候) 부인에게 쓴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자신의 대변이 얼마나 좋은 냄새가 나는지를 모르고 대변을 보는 사람은 결코 없 습니다. 부인의 병은 그 대부분이 대변을 보지 않기 때문에 연유한 것입니다. 의사가 부 인이 대변을 볼 수 있도록 만든다면 부인의 병은 곧 나을 것입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먹 은 결과로 대변을 본다든가 고기가 대변을 만든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대변이 고기를 만든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장 맛있는 돼지는 대변을 많 이 먹은 돼지입니다. 대변을 시원하게 보는 기분이란 부인을 참으로 놀랍게 할 것이기 때 문에…`… 행길이건, 가로수 길이건, 공원이건, 남의 집 문앞이건 눈치 볼 것이 없습니다. 부끄러운 쪽은 대변을 보고 있는 쪽이 아니라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쪽이니까요. …`… 대 변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저의 의견에 부인이 찬성해 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내용의 간곡한 당부의 편지가 씌어질 정도로 당시의 귀부인들은 위엄을 지키느라고 병까지 걸릴 정도로 대변을 참았던 것이다. 될 수 있는 대로 배변의 횟수를 줄이려다 보 니 지독한 변비증에 걸리게 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신체적 증상과 정신적 증 상, 이를테면 우울증, 히스테리 등이 그 시대의 모든 문화행태를 도착적인 것으로 굴절시 켜 버렸다. 변을 더럽고 추악한 것으로 여겨 변보기를 싫어하거나 부끄럽게 여기게 되면, 이중적 자기 은폐나 자기기만 등의 정신 상태가 되기 쉽고 강박적 신경증을 초래하게도 된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인간은 심리적 방어 메커니즘 때문에 스스로의 고통을 오히려 미덕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게 되어 극단적 금욕주의자나 정신주의자가 되기 쉽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초자아라고 명명한 것이 이드(id), 즉 본능적 욕구를 지나치게 억압하 기 때문에 빚어지게 되는 것인데 그 부작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광신적 신앙이나 편 집광적 결벽증, 또는 민족이나 종교 등의 명분을 내세우는 집단적 사디즘 등이다. 이러한 중세기의 편집광적 금욕주의의 부작용과 그 이면에 깔려 있는 갖가지 은폐된 추태들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잘 그려져 있다. 또한 광신적 국가주의의 대표적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서구 사회의 육체비하(卑下)주의 (특히 배설행위를 중심으로 하는) 의 살아 있는 증거물인 것이다. 프로이트의 학설은 그의 이론이 유럽인들에게만 적용되는 특수한 병적 정신 상태를 설명 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다른 문화권에는 적용이 곤란하다는 점에서 현재 비판받고 있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특별히 배설의 문제, 즉 성기를 통한 배설과 항문을 통한 배설에 신경 을 썼다는 것은 이러한 서구 사회의 육체 멸시, 배설 천시(賤視)의 사조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모든 성인들의 병적(病的) 심리현상이 유아기 때의 거세공포 심리와 구강성욕의 불 만족, 그리고 배변을 통한 항문성욕의 불만족 등에 기인한다고 설명하였다. 어린아이일 때는 정액을 배설할 수 없으므로 주로 소변이나 대변의 배설을 통해서 성욕을 충족시키 게 되는데, 유아기 때 아무 곳에서나 자유롭게 배변을 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훈련받는 사람은 성장한 뒤에도 그러한 심리적 억압이 잠재의식에 남아 있어 여러 가지 증상이 초 래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광적(狂的)인 수집벽이라든가 수전노적 성격, 극도의 윤리주 의 등이 그것이다. 배설물 자체에 대한 유아의 태도는 어른과 아주 다르다. 즉, 유아는 자기의 배설물에 대 해서 하나도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배설물을 자기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사 랑한다. 그런데 육체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부모가 그 유아에게 배설행위 가 천한 것이요 숨겨두어야 할 것이라고 계속적으로 주입시켜나갈 경우 유아에게는 이 른바 항문 콤플렉스가 생겨나게 된다. 서구에서는 배설의 문제가 줄곧 무언가 천한 것으로 인식되어 온 것과는 반대로, 우리나 라와 중국을 대표로 하는 극동문화권에서는 옛부터 배설의 문제를 지극히 중요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요강이 어느 방에나 비치되어 있게 마련이었고 예전에는 침을 뱉는 타구 까지도 중요한 생활의 필수품이었다. 중국에서는 호화스러운 문양으로 꾸며진 예쁜 변기 (요강보다 더 커서 대변까지도 함께 처리할 수 있는)가 시집갈 때의 중요한 혼수품 목록 에 끼어 있었고, 대변이건 소변이건 다 그냥 방 안에서 보았다. 의학적으로도 배설의 문 제를 극도로 중요시한 것이 바로 한방의학의 이론이다. 중국 한의학의 원조라 불리는 한대(漢代) 장중경(張仲景)의 명저 『상한론(傷寒論)』은, 주로 대변이나 소변을 통하여 병사(病邪)를 배설시켜 버리는 처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사제(瀉劑)가 처방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한 가지만 예시해 보면, 대승기탕 (大承氣湯)이란 약이 있는데, 이 처방은 글자 그대로 기를 승하게 하여 모든 것을 쾌통시 킨다는 뜻이다. 한의학에서는 기의 개념을 매우 중요시한다. 만병이 모두 기의 부조(不 調)로 인하여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기(氣)가 꽉 막혔을 때 큰 병증이 생기므로 '대승기탕(大承氣湯)'이라는 약 이름이 생겼다. 크게 기를 통하게 하여 병을 낫게 한다고 되어 있는 이 처방의 내용은 사실 간단 하기 짝이 없다. 즉, 후박(厚朴), 지실(枳實), 대황(大黃), 망초(芒硝)의 사미(四味)가 전부 인데 후박이나 지실은 기의 순환을 좋게 해주는 약이고 대황과 망초는 쉽게 말해서 설사 약이다. 대승기탕은 급성 폐렴, 장티푸스, 고혈압, 우울증, 정신분열증, 파상풍, 식상(食 傷) 등에 두루 쓰이는데, 단순한 설사약이 육체나 정신의 여러 가지 병을 말끔히 다스려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만큼 옛 사람들이 배설을 중요시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서양의 고대의학에도 설사약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설사약은 주로 육체 의 병을 다스리는 데만 쓰였다. 정신의 병을 육체를 다스려서 고친다는 것을 서구인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특히 중세기 암흑시대의 의술은 정신병 치료에 주로 기도나 ‘마녀 사냥’ 등의 원시적이고 미신적인 방법을 썼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카타르시스라는 말을 설사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정신 과 육체를 일원론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그 말을 다만 비유 적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양의학에서는 육체와 정신은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 문에 육체를 다스려도 정신이 나을 수 있고, 정신을 다스려도 육체가 효과를 볼 수 있다 고 믿었다. 동양철학에서 기(氣)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데, 우리가 보통 말하는 기분의 뜻도 되고, 육체적 신진대사의 의미도 된다. 또는 에너지라는 뜻도 된다. 한방의학에서의 기 는 혈(血)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되어 혈이 음식을 통해서 공급받는 영양소를 의미한다 면, 기는 그 영양소를 가지고 육체의 신진대사를 활발히 운행해 나갈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말한다. 아무리 영양상태가 좋아도 기가 약하면 병이 생기는 것이니, 이를테면 비만증이나 각종 의 신경성 질환들이 그것이다. 기는 한의학에서는 주로 기분(氣分)의 뜻으로 많이 쓰인 다. 그래서 기가 소통되지 못하고 울체되면 갖가지 병증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곧바로 정신적 기울증(우울증)이 되기도 하고 육체로 전이되어 변비, 소화불량, 심장병 등이 되 기도 한다. 한의학에서는 병의 원인을 주로 기(氣)에 있다고 보는데, 말하자면 정신적인 원인이 모 든 병을 초래한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대승기탕 같은 처방을 보면 육체의 불순물들을 사하(瀉下)시켜 정신적인 병까지도 치료하고 있다. 그러니까 정신이 육체의 병을 만들었 지만 거꾸로 육체를 치료하여 정신을 고칠 수도 있다는 일원론적 치병(治病) 철학인 것 이다. 한방의학에서의 기의 개념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의 의미와 연결된 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카타르시스를 ‘축적된 감정의 배설’의 의미로 썼다면, 이것은 한방 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바로 ‘기(氣)가 울체(鬱滯)된 것을 소통시키는’ 것이 될 것이 다. 희로애락 등의 칠정(七情)이 울결할 때 가지각색의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을 소도(疏導)시켜 주는 것이 바로 해울(解鬱)에 의한 치료법이다. 시원하게 똥을 눈다는 것 은 그래서 단지 육체적 청소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청소의 의미까지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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