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 마광수
죽음의 문제는 우리를 늘 괴롭히며 따라다닌다. 그래서 인간은 윤회니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개념들을 만들어 죽음 이후의 세계를 가정해보려고 애써왔다. 나 역시 죽음이 두렵기
는 마찬가지지만,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은 이렇다. 즉, 인간의 죽음이나 개나 소의 죽음
이나 별다를 게 없지 않나 하는 것이다. 동물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토록 태연히 무관심할
수 있는 인간이, 유독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만 그토록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담론들을 생산
해낸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역겹고 혐오스럽다.
하긴 불교에서는 동물의 윤회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윤회를 믿을 수 있을 만한 증
거가 없다. 인간이나 동물이 윤회를 한다면 식물 역시 윤회를 해야 할 것이고, 우리가 짓는
죄업에 따라 내생(來生)의 운명이 결정된다면 설사 채식만 한다고 해도 살생의 죄를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전생의 기억에 대한 증거라는 것들 역시 우리의 유전인자 안에 포
함되어 대대로 내려온 ‘윤회에 대한 소망적 사고’의 결과라고 본다. 죽었다 깨어난 사람들
이 목격하고 왔다는 사후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죽음은 무조건 괴로운 것이고, 값진 죽음이란 있을 수 없다. 시인 이상(李箱)이 아무리 두
고 두고 기려진다 해도 그는 비명횡사한 불행한 청춘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死)의
의미를 캐거나 사후의 세계에 대해 가상적 희망을 갖기보다는 평균수명을 연장시켜나가
도록 애써야 한다.
언젠가는 늙지 않는 약이 나올 수도 있고 평균수명이 1,000살 정도로 연장될 수도 있다. 그
러려면 우리는 과학의 힘에 의지해야 하고, 과학 가운데서도 ‘마음의 과학’에 관심을 기울
여야 한다. 인간은 복잡한 컴퓨터와 같아서 입력된 대로 움직인다.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
가 육체라는 하드웨어와 만나 우리의 인생을 조절해나간다.
어찌보면 죽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퇴치시켜야 할 대상이다. 영생은 현세에 구체적 쾌락
의 형태로 찾아와줘야지, 내세에 가서 육체적 쾌락을 뺀 영적 쾌락으로 찾아와봤자 아무 소
용이 없다. 스웨덴의 심령학자 스웨덴보르그가 영적 체험을 통해 다녀와 기록해놓은 ‘천상
의 세계’는, 내 보기엔 오직 답답하고 권태스러운 중세기적 신본주의(神本主義) 사회에 불
과할 뿐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살아 있을 때의 고통’을 따질 수밖에 없다. 죽음 자체를 논하다 보면
자칫 현학적 신비주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돌연한 병사(病死)나 사고사
(事故死 )는 막아야 한다. 또한 늙는 것도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런 현실적 노력이 구체적
으로 이루어지다 보면 죽음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고 최소한 고통스런 죽음, 억울한 죽음을
방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죽음을 없애는 과학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현실의
구체적 고통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