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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적 도덕주의를 우려한다 / 마광수

작성자광마|작성시간15.01.14|조회수293 목록 댓글 0

위선적 도덕주의를 우려한다 .............................................. 마광수

나의 소설 『즐거운 사라』에 대해 검찰이 음란표현물로 규정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는데 대하여 나는 심한 우려와 두려움을 느꼈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우려는 우 리 사회가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개방화, 자유화, 민주화로의 행보를 멈추고 급격하게 위선적 도덕주의의 보수화로 회귀하는 징후가 아닐까 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 두려 움은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문학예술이 문단의 전문비평가나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지지 않 고 사법적 판단에 의해 작가를 구금시킬 수도 있다는 어이없는 발상을 하는,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논리가 우리 사회 일각에서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에서 오는 공포감에 서 비롯되는 것이다. 『즐거운 사라』는 덧없는 것의 화려함과 ‘순간에 충실하기’에 빠져들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고 외치며 행동하는 신세대들의 가벼운 삶과 의식을 추적한 작품이다. 물론 그것을 표현하는데 성(性)은 아주 중요한 매개가 되고, 그래서 나의 작품에서 성적(性的) 표현이 많이 나타나고 솔직했던 것은 사실이다. 『즐거운 사라』의 주인공인 ‘사라’라는 여대생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인 물 중의 하나이다. 사라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개성이고, 지금 여기의 현실이다. 나는 이 소설이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정말이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의 현대문학이 이광수 이래로 고수해온 도덕적 전통이 한국 소설을 정체시키고 답보 시켜온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위선적으로 고착된 도덕주 의와 경건주의, 그리고 문학작품을 통해 작가의 인격이나 가치관을 저울질해보려는 태도 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사회적 입지를 위축시켜 그들을 이중인격자로 만들어버리기 쉽다. 문학이 근엄하고 결벽한 교사(敎師)나 사제(司祭)의 역할, 또는 혁명가의 역할까지 짊어져 야 한다면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은 잠식되고 만다. 작가들은 저마다 살아온 배경 이 다르고 가진 생각과 세계관이 다르다. 그것의 다양하고도 창의적인 문학적 표현은 마땅 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발상은 우리 사회를 획일적 윤리기준에 묶어두려는 독선적 이고 전체주의적인 발상에 다름없다. 『즐거운 사라』에 씌워진 음란물이라는 혐의를 벗 기려는 나의 노력은,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지키기 위한 싸움인 것이 다. (1992) (★ 윗글은 1992년 10월 29일 내가 쓴 소설 『즐거운 사라』의 외설 혐의로 구속되기 직전, 『중앙일보』에 입으로 불러 송고한 글 전문이다. 이 글은 내가 구속된 다음 날,「위선적 도덕주의를 우려한다」라는 제목으로 『중앙일보』에 게재되었다. 원래 내가 붙인 제목 은 「문학은 근엄하고 결벽한 교사나 사제(司祭)가 아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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