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교수의 사상 ................ 남승희 (문화평론가)
세간에 널리 퍼진 '야한 얘기 하는 교수'라는 통념을 걷어내고 들여다보면, 마광수 교수의 작품과 사상 세계만큼 일관성 있게 문학론과 인생론, 문명론과 미학과 철학이 통일된 체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 없다.
1. 문학론
마광수 교수의 문학론은 음양 사상과 한의학에 뿌리박고 있으며 그의 카타르시스론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는 한의학의 개념에 가까운 것이다. 동양철학과 한의학에서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마음의 병을 몸으로 고치기도 하고 몸의 병을 마음으로 고치기도 한다. 몸의 병을 마음으로 고치는 것이 바로 문학이며, 이것이야말로 문학의 효용이며 본령이라고 보는 것이 곧 마광수 문학이론의 골자라고 나는 주장한다.
마광수 교수의 대리배설 이론은 적극적인 운명 창조로 나아간다. 마광수 교수의 카타르시스론은, 정신의 정화만 신경 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는 다르다. 인간의 인생을 움직이고 바꾸는 동력으로서 문학은 기능할 수 있다.
2. 인생론과 미학
문학 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로 같은 힘을 가질 수 있다. 이 시대의 예술인 영화,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도 역시 인간의 잠재의식을 끌어냄으로써 즐거움을 선사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직 예술 취급을 못 받고 있는 패션이나 기타 생활에 활력을 주는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나르시시즘과 자신의 개성을 존중하는 페티시즘은 개인의 인생을 바꾸는 중대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원리가 개인의 운명뿐만 아니라 민족이나 문명의 운명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마광수 교수에 따르면 여성은 성심리적으로 마조히스트이며, 이 점을 긍정하고 즐길 때 행복한 성생활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차별이 아니다. 남녀관계는 음양관계, 상호보완관계에 있는 두 주체의 관계이며,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옮길 때 사디즘 마조히즘으로 풀이하게 되지만, 프로이트의 개념과는 다르다. 페미니즘의 사회 구조를 바꾸려는 방법론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는 충돌하지 않는다. 여성은 한쪽에서는 남녀평등을, 또 다른 한쪽에서는 마조히즘의 충족을 구현할 수 있다. 마광수 교수의 성담론은 위대한 실용주의다.
3. 문명론
삶의 일차적인 부분인 먹고 살기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때, 인류 문명은 생겨난다. 코코 샤넬은 이렇게 말했다. "사치품이란 필수품에 대한 욕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필수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마 교수에 의하면 문학은 사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명이란 것 자체가 바로 사치라는 점이다. 조르주 바따이유는 <저주의 몫>에서 앞으로 생길 엄청난 잉여를 처리할 방법은 전쟁 아니면 생활수준의 향상이라고 말한다. '생활수준의 향상' 부분을 책임지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백남준 역시 자본주의의 잉여를 처리하는 방법은 예술밖에 없다는 얘기를 한다. 재미나게도 똑똑한 사람들은 다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인류는 어떻게 많이 생산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소비할 것이냐에 따라 흥망이 결정될 것이다.
4. 그러므로 더 잘 살기 위해 -- 쾌락을 긍정
그러므로 우리는 더 잘 살기 위해 어떻게 잘 낭비할 것인가, 어떻게 잘 인생을 예술로 채울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이에 대해 마광수 교수가 제공하는 처방으로는 대표적으로 성애론과 몸의 상품화 긍정, 개인의 자유와 창조성 강조가 있다.
한국은 성관련 산업은 많이 발달해 있지만 겉으로는 엄숙주의를 고수하는 이중적인 사회다. 성욕과 이와 관련된 욕망을 분출할 곳은 음지로 한정이 되어있고 양지에서는 마치 그것이 없는 듯이 행동해야 한다. 따라서 욕망을 세련되게 분출하는 법에 일반적으로 서투르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이나 여타의 예술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독창적인 산물을 내기 위해선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현이 꼭 필요한데, 늘 그것이 사회적으로 억눌려있어 제대로 뻗어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광수 교수의 성애론은 근본적으로 인간해방으로 나아가며, 근대화와 맥락이 닿아있다. 귀족이 아닌 민중이 쾌락을 위한 성을 추구하며 즐겁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게 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최근의 일이다. 이는 근대화로 인해 시작된 것이며 산업화와 요즘엔 탈산업화로 인해 현실화되고 있다.
5. 그러므로 더 잘 살기 위해 -- 개인의 자유와 창조
마광수 교수가 그동안 누누이 주장해온 것은 솔직함이고, 자유다. 개인이 자유롭게 자기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고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라야 진짜 창조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전체와 집단을 내세우며 개인을 억누르며 따라서 독창적인 업적이 나오기 어렵다.
한국은 개인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기 때문에 지적 저작권이 보호되지 못 하며, 따라서 높은 수준의 예술작품이(광고, 패션 포함해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자본주의는 더 이상 적당히 베껴서 대량생산하고, 적당히 광고하여 대량소비를 부추겨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건 갈수록 불가능해지는 단계에 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개인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산업발달은 없을 것이다.
6. 그러므로 더 잘 살기 위해 -- 근대화
지금처럼 서구사회가 획기적인 물질문명을 개화할 수 있었던 근저에는 기존의 관습과 신분제, 종교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는 자본주의 상도덕의 힘과 과학기술의 힘과 함께 모든 인간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획기적인 발상의 이념이 있었다. 그동안의 역사를 보면 자본주의 태동과 함께 다수 민중의 권리는 현실적으로는 급락했었으나 물질문명의 개화와 함께 결론적으로는 확실히 신장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마광수 교수는 한국이 아직 서구 18 세기의 계몽주의나 합리주의에도 미처 도달하지 못한 사회라고 강조한다.
7. 철 학
그러나 마광수 교수가 기초하고 있는 동양철학의 육체관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영향을 주고 받는다. 뿐만 아니라 마음보다 몸이 더 먼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물질문명을 낳은 서구사회의 철학이 도리어 물질문명과 어긋나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반면에 동양철학이나 마광수 교수의 사상이 훨씬 더 유연하게 현대의 물질문명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요즘 동양 트렌드가 세계적으로 형성되어 젠스타일이니 웰빙이니 하는 자잘한 트렌드들을 일으키는 것이다.
동양철학은 몸과 마음을 아울러 다스리면서 동시에 절제라는 덕목을 익히도록 자본주의 신민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 마광수 교수의 사상은 성과 쾌락과 자유와 창조, 민주주의를 아울러 통일된 문학론과 성애론, 인생론과 철학, 문명론을 펼쳐보이고 있다. 문학의 효용에서부터 다품종소량생산 시대의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이념과 문화까지, 어쩌면 만개한 이 시대 물질문명의 새로운 단계를 준비한다고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