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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월에 대하여 ------ 마광수 에세이

작성자광마|작성시간16.01.17|조회수214 목록 댓글 0

4 월에 대하여 .................................. 마광수




4월이면 생각나는 시가 두 편 있다. 하나는 T. S 엘리엇의 「황무지」이고, 또 하나는 박목월의 「4월의 노래」이다. 「황무지」가 4월을 아주 비관적이고 음울한 어조로 읊고 있는 데 비하여, 「4월의 노래」는 밝고 힘찬 젊음의 계절인 4월을 노래하고 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이 얼마나 낭만적인 가사인가? 그러나 마지막 후렴구에 가면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라고 되어 있어 「4월의 노래」 역시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비정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 두 편의 시에서처럼, 나에게 있어서도 4월은 왠지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갖게 만들어주는 달인 것 같다. 엘리엇의 「황무지」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라일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따뜻이 해주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 마른 구근(球根)을 가진
작은 생명을 길러주며

흔히 4월은 봄의 시작이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달로 인식되고 있는데, 엘리엇은 이러한 통념에 감히 도전하여 얼핏 보면 다소 억지스럽기까지 한 표현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도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는 이러한 표현이 단지 시인의 기발한 아이디어 정도로만 느껴졌었다. 그러나 차츰 나이를 먹어가며 인생경험을 조금씩 늘려가면서부터는, 이 시구가 그저 ‘독창적’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설득력이 있고 보편타당성이 있는 진리와 같이 느껴지게 되었다.

엘리엇은 이 시구에서 탄생의 괴로움, 살아있음의 괴로움, 그리고 순환(또는 윤회)의 괴로움을 말해주고 있다. 차라리 겨울로 모든 것이 끝나버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왜 다시 봄이 찾아와 고통스러운 삶을 새롭게 시작하도록 만드느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겨울은 죽음을 상징하며, 봄은 탄생, 여름은 성장, 그리고 가을은 조락(凋落)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4월은 오히려 ‘잔인한 달’이며 과거에 대한 쓸데없는 미련과 추억을 불러일으켜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어주는 달이며, 치사한 욕망으로 사람을 들뜨게 만들어주는 달인 것이다. 엘리엇의 이러한 비극적 인생관은 <황무지>라는 시의 제목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4월은 계절로 보아도 확실한 어정쩡한 달이다. 봄은 봄이되 그리 따뜻하지 않다. 꽃샘바람이 불고 스산한 냉기가 아직 남아 있어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때가 4월이고, 춘곤증(春困症) 때문에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것도 4월이다. 겨울옷을 입기엔 너무 덥고, 그렇다고 경쾌하고 홀가분한 차림으로 다니기엔 너무 춥다. 나는 쭉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치며 지금까지 지내온 셈인데, 4월은 언제나 나를 약 오르게 하는 달이었던 것 같다. 3월초 새학기가 시작되면 봄이라고 하기엔 너무 춥다. 기온은 영상인데도 쌀쌀한 바람이 살 속으로 파고든다.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마치 새해를 맞는 기분으로 새학기를 시작하려다보면 영락없이 찾아드는 감기 몸살로 지독하게 고생을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4월이 되면서부터 이 ‘우울한 스산함’이 더욱 가중된다는 사실이다. 3월이 하도 춥고 불쾌한 날씨가 계속되니, 4월을 기다리는 마음에 불을 당기게 되는데 막상 4월이 찾아와도 신록이 우거지기엔 아직 어림도 없는 날씨고, 춥고 스산하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그러나 을씨년스럽고 삭막한 숲의 경치는 3월과 큰 차이가 없다. 따사로운 날씨, 상쾌한 산림의 정취는 1학기가 종반을 향해서 치닫는 5월 중순이라야 가능해진다. 그리고 6월 중순이면 벌써 무더워지기 시작하고 금세 여름방학이다. 물론 제주도나 남해안 지방 같은 곳이라면 4월에도 푸른 신록을 구경할 수 있겠지만 서울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래서 4월은 나에게 무척이나 얄미운 달이다.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산 것도 아닌, 반생반사(半生半死)의 상태 비슷한 달이라고나 할까.

이런 어정쩡한 상태로서의 4월은 인생으로 치면 사춘기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사춘기는 원래 가장 아름답고 활기찬 시절이지만, 요즘 우리나라 학생들의 사춘기는 청춘을 마음껏 구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어른 행세를 할 수도 없는 시기가 되어버렸다. 대학입시라는 압박 때문에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파리하게 메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 뛰어들기엔 아직 어리고, 그렇다고 어린이에 속하지도 못하는, 정말 어정쩡한 시기다. 그래서 요즘 사춘기 청소년들의 불안과 갈등이 점점 심해져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4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지금까지 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4월을 이야기했다. 4월은 확실히 잔인한 달이다. 그러나 어차피 일년 열두 달 가운데 1, 2, 3월 석 달 동안을 참고 살아왔는데, 4월에 갑자기 우리의 인생항로를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인생에 대한 무슨 특별한 의욕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멈출 용기가 없어서라도 이 4월을 지혜롭게 보내야만 한다. 4월이 춥고 고달픈 달로서는 마지막 달인 만큼, 4월만 잘 넘기면 5월 이후는 별 탈 없이 잘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는데 궁(窮)한 것의 마지막 극한 상황이 말하자면 4월이다. 조금만 참으면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우리를 반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4월을, 조금은 체념어린 태도로 관망하여 넘길 필요가 있다. 체념(諦念)이란 말은 얼핏 ‘단념’이나 ‘포기’를 뜻하는 말로 들리지만 원래는 불교에서 온 말로서 일종의 ‘달관된 허무주의’ ‘일체의 집착으로부터의 탈피’를 뜻하는 말이다. 당장 신경질적으로 자살해버리고 마는 것이 염세주의라면,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고 별다른 기대나 욕심을 갖지 않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허무주의다. 인생의 4월인 사춘기에 이런 허무주의적 체념을 체질화시키는 것은 장래의 시간들을 위해서라도 무척이나 필요한 일이다.

흔히들 “젊은이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야망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과도한 희망은 그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급격한 절망으로 바뀌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야망 역시 사람을 승부욕과 경쟁심으로 지치게 만든다. 미리 예방주사를 맞는 기분으로 자신의 젊은 기개를 약간 꺾을 필요가 있다. 부모들의 과잉애정, 과잉기대 때문에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뭐든지 지나치는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냉정하고 현명하게 설계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4월이다. 4월은 ‘꿈의 계절’이긴 하다. 그러나 그 꿈의 계절은 ‘잔인한 달’이요, ‘눈물어린 무지개’의 계절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마광수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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