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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성기론 ------ 마광수

작성자광마|작성시간16.02.14|조회수304 목록 댓글 0

배우 안성기론 ......................................... 마광수




영화배우 안성기는 나와 나이가 비슷하다. 나는 1951년생이고 그는 1952년생이다. 그래서 나는 국민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를 몹시 부러워했고 또 질투를 느꼈다. 그때부터 그는 벌써 스타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년한국일보 등 어린이 신문에 "꼬마 스타"로 자주 소개되곤 했다.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그와 동년배인 나로서는 샘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유명해진 인물이 자기와 비슷한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그 사람을 자기와 비교해 가면서 한숨을 푹푹 쉬게 마련일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화려하고 야한 세계를 은연중 동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 배우란 직업은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화려하고 야한 직업이었다. 그러니 내가 그를 몹시도 부러워했던 것을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지금도 역시 영화에 대한 꿈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건 영화가 역시 여러 예술 장르 가운데서 가장 직설적으로 인간의 본능적 정서에 어필하는 장르이기 때문일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비디오가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영화를 능가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영화에 대한 글을 꽤 많이 쓰고 있고, 내가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가지고 내 손으로 직접 영화를 한 편 만들어 보고 싶은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내가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것은 영화감독이 아니라 "배우"였다. 영화건 연극이건, 나는 작가나 연출가보다도 배우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아마추어 연극활동을 했는데, 그때 내가 주로 맡았던 것은 연기 쪽이었다. 대학원에 가서는 체면상 연출을 맡았는데, 그때도 나는 연기자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대학 선생이 되어 강의하는 것을 꽤 즐거운 노동으로 여기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예전부터 내가 갖고 있던 연기에 대한 미련 때문일지도 모른다.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일 역시 일종의 "1인극"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나의 꿈은 다시 한 번 연기자가 되어 보는 일이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내가 각본과 연출만 맡을 게 아니라 주연까지 맡아서 해보고 싶다. 찰리 채플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글쎄......내가 지금 너무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영화나 연극에서 연기자가 "왕"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관객들 앞에서 군림하며 한껏 폼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연출자나 기타 스태프들이 아니라 결국 배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모든 인간들은 다 "자기 과시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층심리의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욕구를 일종의 "노출증"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신을 마음껏 노출시켜도 전혀 제재를 받지 않고 오히려 그런 행위를 통해 돈까지 버는 사람이 바로 "배우"들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배우들이 신나게 노출하는 것을 힐끔힐끔 훔쳐보면서, 스스로의 노출욕구를 그저 대리적으로 충족시킬 뿐이다.

그래서 경제적 선진국일수록 배우나 가수들이 "스타"의 위치를 점령하고 있고, 정치가나 기업가들보다도 훨씬 더 큰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 먹을 걱정이 줄어들수록 성적 욕망이 고개를 들게 되고, 성욕의 대리 배설 장치라고 할 수 있는 놀이 또는 문화의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문화 예술가들 가운데 배우가 최고의 스타로서의 대우를 받는 것은, 성욕의 대리배설 방법 가운데 관음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관음증을 직접적으로 충족시켜 준다. 그러니까 관객들은 모두 관음자, 즉 "엿보는 사람"들인 셈이고, 관음증의 대상이 되는 영화 배우들은 일종의 "노출자"들인 셈이다. 소설가나 화가, 음악가들도 본능을 노출시키면서 희열을 맛보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간접적 노출"을 즐길 수 있을 뿐, 직접적으로 그들의 맨몸뚱이 그대로를 노출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배우는 가장 행복한 예술가요, 성적 쾌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직업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쨌든 안성기는 행운아 중의 행운아라고 볼 수 있다. 우선 배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행운아이고, 배우 중에서도 일류 배우로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행운아이다. 아역 배우로 출발해서 성인 배우로까지 성공한 예는 극히 드문 법인데, 안성기는 그런 기적 중의 기적을 이룩해냈다. 특히 그는 한때 반짝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배우가 아니라 수명이 오래 는 배우로서의 자리를 이미 굳혔기 때문에 더더욱 행운아일 수밖에 없다. 그가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 자신의 자질과 노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에게 어떤 "운명적인 힘"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의 부친이 영화인이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서도 그는 운명적 혜택을 크게 누린 사나이라 하겠다. 또 그는 대학에서도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고, 다른 배우 지망생들처럼 악전고투 끝에 영화 배우로 데뷔하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그는 우연히 영화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이러한 경로가 그로 하여금 더 "의연한 연기"를 가능하게 해주지 않았나 한다. 데뷔 과정이 복잡하면 할수록 그 배우는 더 기를 쓰고 "스타"가 되려고 노력하게 되기 때문에, 자치하면 오버 액션에 빠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역 배우로서의 안성기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가 1965년에 출연한 <얄개전>에서였다. <얄개전>은 내가 아주 재미있게, 아니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이었기 때문에 영화 역시 관심 깊게 보았다. 그런데 그때 주인공 "두수" 역할을 맡은 안성기의 연기는 수준급이었다. <얄개전>을 끝으로 안성기는 영화계에서 일단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안성기도 역시 다른 아역 배우들이나 이른바 천재소년들과 마찬가지로, 한때 반짝였다가 스러져버리는 "소모품 스타"가 돼버린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안성기를 스크린을 통해 다시 만나본 것은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였다. 1980년도라고 생각되는데, 그는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빼어난 성격 배우로서의 자질을 보였고, 그래서 거뜬히 재기할 수 있었다. 그 영화에서 안성기는 중국집 배달부로 나왔는데, 어눌하고 고지식한 성격의 밑바닥 인생 역할을 썩 훌륭하게 소화해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영화가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너무 부연 설명이 많았고, 안성기를 비롯하여 여관 심부름꾼과 이발소 종업원으로 나온 그의 친구 두 사람의 성격이나 표정이, 지나치게 과장되게 묘사되고 있었다. 안성기의 연기 역시 지나친 오버 액션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안성기의 탓이라기보다는 감독의 실수였던 것 같다. 어쨌든 안성기는 이 영화 출연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체로 우리 나라에서는 특이한 성격의 역할을 맡으면 연기파 배우로 성공하는 예가 많은 것 같다. 이를 테면 벙어리 역할이라든가 정신 박약아 역할이라든가 아니면 미욱한 촌놈 역할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역할들은 과정적인 연기를 합리화시켜 주기 때문에, 배우의 입장으로 보면 소화해내기가 오히려 편하다. 사실 평범하고 조용한 성격의 역할을 소화해내기가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관객이나 평론가들은 배우가 특이한 성격의 역할을 맡아 그것을 적당히 소화해내면, 그 배우의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해 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때도 나는 안성기가 계속 단순한 성격 배우로 머물고 말 것 같은 인상을 받았었다. 아마 그때 그런 느낌을 가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김진규나 신성일 등 과거의 일류 스타들과 비교해 볼 때, 확실히 안성기는 빼어나게 잘생긴 미남은 못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성기는 영화팬들의 예상을 뒤엎고 스타로서의 위치를 확보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가 주연한 작품들이 흥행면으로나 작품성면으로나 속속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는 "연기파 배우"의 이미지와 "가장 매력적인 남성"으로서의 이미지를 함께 구축해 나갔다.

그가 이렇게 대 스타로서 부상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우리 나라 영화계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다. 단순히 얼굴만 팔아먹는 배우보다는 중후하고 진지한 연기를 통해 좀처럼 싫증을 주지 않는 배우를 키워낼 수 있는 역량을, 이제는 우리 영화계가 갖추게 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바람불어 좋은 날> 이후로 나는 안성기가 나오는 영화를 여러 편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1980년대의 한국 영화 중 우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가 주연으로 안성기를 캐스팅했기 때문이었다. < 깊고 푸른 밤> <어우동> <황진이> <달빛 사냥꾼> <겨울 나그네> <기쁜 우리 젊은 날> <고래사냥> <무릎과 무릎 사이> 같은 영화들이 내가 감상한 작품인데, 특히 <겨울 나그네>가 나에겐 가장 인상 깊은 영화였던 것 같다. 친구의 애인(이미숙)을 가로채다시피 하는 다분히 계산적이고 음흉한 성격의 인물로 출연한 안성기는, 나로 하여금 그가 가장 적역을 맡았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그것은 <깊고 푸른 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처럼 애인에게 지극 정성을 바치는 순정파 청년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약간 악역에 가까운 역할이 안성기에게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어쨌든 안성기의 악역은 어느 영화에서든지 극히 자연스러웠고 안정감이 있었다. 어떤 역할을 주더라도 그는 무난하게 잘 소화해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의 연기가 대부분 특이한 성격 배우로서의 범주를 크게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그는 연기 하나만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겨울 나그네>나 <깊고 푸른 밤>에서처럼 독특하면서도 복잡한 캐릭터를 가진 주인공 역할이 더 어울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약간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보여 주었다. 물론 감독이 영화를 코믹 터치로 이끌어 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안성기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선량한 인간의 특성을 보여 줄 수 있는 덤덤하면서도 차분한 연기를 창출해내는 데는 실패했다. <달빛 사냥꾼>에서도 안성기는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애처가로 나온다. 그렇지만 그는 그 작품의 후반부에서 아내를 강간한 악당들을 추적하여 복수의 칼을 휘둘러대는 집념의 사나이로 변신하는데, 그 부분에서부터 안성기의 연기력이 빛을 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더라도 그는 역시 배우의 특별한 연기력을 요구하는 역할, 즉 다시 말해서 약간 괴팍스런 성격의 역할을 맡아야만 빛을 발하는 연기자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배우의 성공이 연기력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연기력보다는 얼굴 마스크가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안성기는 미남 배우는 아니지만 그의 얼굴이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분위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팬을 확보하게 된 것 같다. 그러한 안성기의 마스크는 그의 연기에 상승 효과를 준다. 약삭 빠르고 빈틈없는 영악한 사람이기보다는 어딘가 헐렁하게 빈틈이 많은 사람같이 보이고, 때로는 조금 멍청하게도 보이는가 하면, 한없이 착하고 상냥하게도 보인다. 그러나 때로는 마음 깊숙한 곳에 날카로운 칼을 품고 있는 음흉한 야심가로도 보이기 때문에, 그저 심상한 호인으로서의 인상에 악센트를 더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가 될 수 있었고, 어떤 역할이든지 그럭저럭 잘 소화해내는 배우가 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선량함"에 "내면적인 악마성"이 겹쳐질 때, 그 배우는 관객들의 정신을 뽑아 놓을 수 있다. 특히 남자 배우의 경우가 더욱 그러한데, 그 까닭은 여성 관객들이 새디스틱한 남성의 이미지에 깜빡 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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