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올바른 해석 ........ 마광수
< 마조히즘적 쾌락에의 동경 >
-- 김소월의 <진달래꽃>
< 진달래꽃 >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시는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마다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1922년 [개벽]에 발표된 이래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애송되어 온 대표적인 한국 현대시 중의 하나다.
지금의 <진달래꽃>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고려가요 <가시리>의 전통을 잇고 있는 대표적인 이별의 노래'라거나 '이별의 슬픔을 체념으로 승화시켜 극복하고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의 노래'라는 것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또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정서인 '한(恨)'을 이 시에 도입시켜 설명하기도 하고,'애이불비(哀而不悲)' 또는 산화공덕(散華功德)' 등의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을 심리주의 비평의 방법으로 해석해 보면 휠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여성의 잠재적 심리가 이 시에 내재해 있는 것이 드러난다. 겉으로 드러난 언어의 해석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무의식의 자연스러운 노출의 측면에서 이 작품을 바라볼 때 더욱 적나라한 인간의 본성과 사랑의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여기에는 문학이 아름다움이나 교훈의 제시로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억제된 본능의 대리배설 작용에 의해서 쓰여진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진달래꽃>에는 마조히스트(masochist)로서의 여성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런 원망없이 보낼 수 있고,또 님이 가시는 길에 꽃까지 뿌려 드리겠다는 인고적(忍苦的)이고 도덕적인 여성 심리가 아니다. 사회적 윤리와 도덕적 억압때문에 겉으로는 드러낼 수 없으나,잠재적으로 더욱 강한 충동적 정열을 가지고 숨어 있는 여성의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러한 면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시의 제목인 '진달래꽃'이 주는 선정적인 느낌과,그 꽃을 님이 가시는 길에 뿌려 놓을 테니 '밟고 가시라'는 상징적 행동이 보여 주는 관능적 이미지이다.
님이 죽어도 떠나겠다니 말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냥 보낼 수는 도저히 없어 이 시의 화자(話者)는 진달래꽃을 뿌리겠다고 했다. 그 꽃을 님이 밝고 가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겠다는 것이다.
옛부터 '꽃'은 아름다운 여성의 심벌이 되어 왔다. 게다가 진달래꽃은 선명한 붉은 빛을 지닌 꽃이니 더욱 농염하고 섹시한 여성의 심벌이 될 수 있다. 만일 '개나리꽃'이라고 했다면 이 작품이 그토록 강렬하게 본능적인 욕구의 표출로서 읽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시의 주인공인 여성 화자는 님과 헤어지더라도 '밟히고' 싶어한다. 그렇게만 되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겠고 따라서 죽어도 눈물 아니 흘릴 수 있겠다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헤어지는 마당에도 마지막까지 님과의 결렬하고 비정상적인 교합(交合)을 꿈꾼다. 이별이 그렇게 서러운 것만도 아니다. 꽃이 되어 님에게 마음껏 밟히고 싶은 심정이나 님에게 일방적으로 버림받는 다는 것이나, 모두 다 마조히스트로서의 피가학적(被加虐的) 변태 심리를 충족시켜 그녀를 황홀경에 이르게 해주기 때문이다.
마조히즘(masochism)이란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작헤르 마조흐(Sacher Masoch)가 쓴 소설<모피(毛皮)을 입은 비너스>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 소설의 주인공이 이성으로부터 신체적, 정신적 학대와 고통을 받음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은 이상성욕(異常性慾)의 성도착증(性倒錯症)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심리학자 크라프트 에빙은 그러한 종류의 성도착자를 마조히스트, 그러한 성도착증을 마조히즘이라 이름붙였다.
마조히즘은 이성한테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학대를 받을 때 성적 쾌감을 느끼는 심리 상태를 말하는데, 이를테면 폭행, 매질, 짓밟기, 바늘로 찌르기, 밧줄로 옭아매기, 언어적 모욕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마조히즘이란 직접적인 성적 쾌락의 탐닉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자신의 극기적 수련이나 금욕적 생활을 통하여 최고의 기쁨을 느끼는 종교적 고행까지를 포함한다.
마조히즘이 성립되려면 그 반대의 입장, 즉 이성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고통을 가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 거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사디스트(sadist)이고, 그런 증상이 사디즘이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사디스트는 마조히스트와 성행위를 함으로써 비로소 만족을 취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마조히스트는 사디스트에 의해서만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해석해 보면 매정하게 떠나는 님은 사디스트요 버림받은 여인인 이 시의 화자는 마조히스트라고 할 수 있다.
마조히스트인 이 시의 주인공은 버림받아도 좋으니 제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밟아 달라고 님에게 호소한다.
도대체 이런 심리가 어떻게 해서 가능할 수 있을까? 마조히즘은 일체의 자기 주장이나 능동적인 결정권을 포기함으로써 얻어지는 포근한 안식감과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타자에게 완전히 자기의 몸을 맡겨, 그에게 노예와 같이 철저하게 복종만 하는 데서 얻어지는 쾌감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무언가에 소속되어야 안심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스스로 이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기보다는 누군가가 자기를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잠재적 심리를 갖고 있다.
사디즘이 능동적인 것이라면 마조히즘은 수동적인 것이다. 수동적인 자아 포기가 좋은 것이라면 반발할 사람이 많겠으나,기독교인 경우를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에서 '순명(順命'을 강조하여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복종만이 구원에 이르기는 길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마조히즘이야말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감이요 안락감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기독교의 고행주의자들은 채찍질을 통해서 그들의 신념을 가다듬으며,수녀들은 기도할 때 납작하게 엎드림으로써 신에 대한 복종심을 나타낸다.
마조히즘은 '자궁회귀 본능'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우리들은 어려운 현실적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곧잘 과거로 돌아가고픈 무의식적 충동을 느낀다. 노래 가사에도 "어린 시절의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내용의 말이 많이 나오는데, 어런 시절의 고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 영원한 안식이 보장되었던 곳은 바로 어머니의 자궁이다.
자궁속에서 우리들은 아무런 노력이 필요없었다. 포근한 양수에 둘러싸여 그저 수동적으로 어머니에 의해서 영양을 공급받으면 그만이었다. 현실의 실제 상황을 인식할 필요조차 없었고, 자기 스스로 미래를 타개해 나가겠다는 의지조차 필요 없었다. 그러므로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것은 곧 마조히스트들의 종국적인 희망인 '모든 결정권을 포기한 상태에서 얻어지는 편안함'과 상통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궁회귀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 어느 정도 마조히스트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진달래꽃>의 화자를 여성으로 본 것은 남성보다도 여성들이 더 마조히스트로서의 요소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해방론자들은 극력 반대할 지 모르겠으나,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권위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남성에게 복종하고 싶어하는 심성을 지니고 있다. 강력한 힘을 가진 남성에게 소속될 때 여성은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노예처럼 학대를 받더라도, 자기의 의지에 의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 모면되기 때문에 그녀는 행복한 것이다.
<진달래꽃>에 나타나는 여성 화자의 잠재심리는 성적 마조히즘과 정신적 마조히즘이 복합된 형태이다. 꽃으로 상징되는 자기 자신 또는 자신의 성기를 밟아 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성적 마조히즘이요, 님이 자기를 버리더라도 그것을 고맙게 감수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것은 님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자기는 무조건 복종만 하겠고 그것이 오히려 즐겁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마조히즘이다.
《마광수 저 : <문학과 성>(철학과현실사)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