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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강해(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2) 막1:14-28

작성자하늘 군대|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2

                      막1:14-28

 

예수님의 부르심

본 훼퍼는 ‘부르심 그 자체가 은총이다’ 고 했습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생동안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낚다가 물거품처럼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사라질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그들은 인류의 스승이요, 1세기 역사의 주역들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를 위대케 합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이 말씀은 옛 생활의 청산과 새 생활의 결단을 촉구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반드시 죄악된 삶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식 하나 없이 늙어가는 한 村夫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세상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노예 백성으로 민족의 슬픔과 한을 품고 살 수 밖에 없는 슬픔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가장 위대한 목자요, 장군이 되었습니다. 또 다윗은 이새의 말째 아들로 양똥이나 치며 형들의 심부름이나 하다 죽을 한 시골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주권자요, 메시야의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소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소망을 두고 부르십니다. 고기를 낚는 어부는 고기를 낚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낚는 어부는 사람에 목적을 둡니다. 고기를 낚는 삶은 먹기 위해 고기를 잡지만, 사람을 낚는 삶은 사람을 살리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낚는 어부인데도 불구하고 고기를 낚는 어부가 되어 양을 낚는 데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양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안 잡힐려고 도망다니게 됩니다. 바다의 눈 먼 고기도 잡으려고 하면 안 잡힐려고 도망가는데, 말똥말똥 눈 뜬 사람을 잡으려고 하는데 도망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 낚는 어부는 낚는 데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제자 양성을 실패하는 것은 양을 낚는 데만 관심을 두지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양을 사랑하고, 돕고, 살리는 데 관심과 목적을 둔다면 양들은 가라고 떠밀어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양을 낚는 데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돕는 데 관심과 목적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모두 제자 양성가가 될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며 고기를 낚는 생활은 멋이 있고 낭만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탁 트인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는 모습, 이 얼마나 멋있고 낭만적입니까? 그리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함으로 인해서 오는 성취감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멋과 낭만을 가지고 고기를 잡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기를 잡습니다. 오늘도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쌍눈에 쌍불을 켜고 고기를 잡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삶의 터전으로 나갑니다. 사람들은 일생동안 먹고 살기 위해 반복하여 그물을 던집니다. 이는 참으로 피곤하고 권태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직장을 옮겨 보기도 합니다. 멀쩡한 차를 팔고 새 차를 구입하기도 합니다. 건수를 만들어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불러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면 똑같이 권태감과 무의미한 삶이 계속됩니다. 

김 안드레 선교사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나오는 40, 50대 직장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나도 앞으로 저런 사람이 된다고 생각할 때 미칠 것만 같아 일찍 선교사로 가고자 결단했다고 소감 발표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대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설레임이 있습니다. 비전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몇 달 다니다 보면 대학이 단지 직업 양성소 같아 허탈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 무거운 가방을 들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도서관으로 가야 합니다. 여기에 무슨 대학 생활의 낭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생활이라고 늘 지겹고 피곤한 것만은 아닙니다. 보너스를 타서 자기 아내와 자식들에게 선물을 사들고 집에 갈 때 기분이 좋습니다. 적금통장을 만들어 조금씩 조금씩 모아가는 기쁨도 있습니다. 모은 적금을 타서 아파트를 장만하고, 자가용을 사는 재미도 있습니다. 첨단 가전제품을 사 놓고 문화 생활을 즐기며 사는 재미도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재벌이 되어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기쁨도 있습니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장학금을 타고, 교수님이나 동료로부터 인정을 받는 재미도 있습니다. 친구를 만나 잔디밭에 앉아 떠가는 구름을 보면서 함께 김밥을 먹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처럼 고기를 낚는 삶에도 나름대로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삶은 근본적으로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이 없는 삶은 잘 먹고, 잘 산다 할지라도 행복이 없습니다. 설령 있다 할지라도 그 행복은 상대적입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보지만 비전이 없습니다. 과중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40대에 요절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면 고기 낚는 어부는 의미가 없고 소망도 없으니 빈둥빈둥 놀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여 장학생이 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돈도 벌어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돈을 벌어 집도 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삶의 수단이 되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은 어떠합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는 한마디로 목자로서의 부르심입니다. 그런데 목자의 삶은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알다가 모를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내 마음 나도 모릅니다. 변화무쌍합니다. 그래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 變化無雙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그물을 매일 손질해야 합니다.

일반 학문은 몇 년 묵은 노트를 가지고 가르쳐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목자는 매일 새롭게 말씀을 영접해야 합니다. 말씀이 나의 무의식의 세계를 지배할 때까지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노동을 감당해야 합니다. 새벽잠을 깨워야 합니다. 양들로부터 배반당하는 슬픔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아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픔이 있고, 십자가가 있지만 분명한 삶의 방향과 의미가 있습니다. 소망과 비전이 있습니다. 건강한 삶을 享有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벅찬 감격으로 삽니다.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영원히 빛난 삶을 살게 됩니다. 다니엘서 12:3절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인간의 위대함과 풍요로움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데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의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두고 계실 뿐만 아니라 소망 가운데 키우십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여기에는 너희가 나를 따르기만 하면 사람을 낚는 어부로 키워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없고, 우리가 결심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꾸준히 예수님을 배울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키워 주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썩어 없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벧후1:4).

 

셋째, 예수님을 좇는 제자들(18,20).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18,20).”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좇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좇는 생활이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 자신을 위한 삶에서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삶을 살 것을 결단했습니다. 그들은 실로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용기’란 진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고생 없이 자라서 좀 나약하고 용기가 부족합니다.

성경 공부하는 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물어 봐서 하겠다고 합니다. 또 선배들이나 동료들이 한 마디 하는 말을 듣고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성경 공부를 포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겁장이들은 사명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시대를 구원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들을 쓰십니다.

 

넷째, 말씀의 권세자 예수님(21-28).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습니다.

이는 그 가르치는 것이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고 권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박사들이요,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가르침은 권세가 없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형식적이고 위선적이었으며, 낡은 가죽 부대처럼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의무적으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뭇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까다로운 유전보다는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회개의 복음, 사죄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욕의 바다, 허무와 절망의 바다, 죽음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생들을 어찌하든지 구원코자 하시는 상한 목자의 심정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양들의 인생 문제로 늘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과 회개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사람들의 심정을 움직였습니다. 이를 볼 때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듣기 좋은 은혜와 축복 등의 말씀이 아닌 회개의 복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이 귀신들린 자는 평소 서기관들이 말씀을 전할 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발작하여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며, 또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고 오히려 반발하며 예수님과 관계성을 맺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예수님은 발작하는 귀신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과 귀신을 분리해서 보십니다. 예수님의 싸우는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니요, 더러운 귀신, 악령 곧 사단입니다.

이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27).”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 있는 새 교훈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귀신까지도 순종시켰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세력을 파하고 제어하실 수 있는 영적인 권세가 있습니다. 귀신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 권세와 말씀,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입니다.

결론:사람은 누구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단 한 번 밖에 없는 이 고귀한 인생을 값지게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단 한 번 뿐인 인생을 보람 있게 보낼 수 있습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좇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제자들에게 큰 소망을 두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제자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위대한 사명인이 될 소망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두신 소원은 원대했습니다. 그들은 약점과 허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손에 들어 갔을 때 거친 베드로가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생애를 맡겨 위대한 사람들로 빚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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