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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상념(想念)

작성자세오|작성시간26.06.11|조회수30 목록 댓글 0

비 오는 날의 상념(想念)

 

서문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오래전 떠나신 아버지를 생각한다. 오늘처럼 조용히 내리는 비는, 잊고 지내던 기억까지도

조심스레 불러낸다. 마치 오래 묻어둔 마음을 다시 꺼내 보라는 듯, 빗소리는 끊임없이 내 안을 두드린다.

 

아버지는 6.25전쟁 뒤끝 1.4 후퇴 때, 함경남도 함흥에서 혈혈단신으로 피난 내려오셨다. 가족도, 기댈 곳도 없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낯선 땅에 뿌리를 내려야 했던 그 시간을 나는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그곳에서 어머님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2남 2녀를 키워내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이라기보다 하나의 긴 인내와 책임의

기록에 가까웠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일하는 사람이었다. 새벽 어스름 속에 집을 나서고,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시던 모습.

가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은 뒤로 미루는 것이 당연한 듯 살아오셨다.

그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러던 아버지가 위암으로 쓰러지셨다. 이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병환으로 고생하셨다. 점점 야위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천주교회를 다녔던 어머님과 나는 상의 끝에 아버님을 돌아가시기

전 본명을 ‘베드로’라고 하여 세례를 받는 ‘대세’를 치렀다.

그리고 결국, 내가 군에 있을 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그 사실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 한구석에 깊이 남아 있다. 마지막을 곁에서 지키지 못했다는 것, 살아 계실 때 제대로

해드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해서,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버지의 장사를 치르던 날도 비가 내렸다.

하늘은 그날도 말없이 젖어 있었고, 나는 그 아래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비가 슬픔 때문이었는지, 뒤늦은

후회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의 풍경은 지금까지도 흐릿해지지 않는다.

 

돌아가신 지 44년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빈자리는 여전히 내 안에서 젖어 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술 한잔하시고 ‘나그네 설움’과 ‘타향살이’를 읊조리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때는 몰랐던 그 외로움이 이제야 가슴 깊이 와닿는다.

 

오월은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

나는 여전히 아버지께 해드린 것이 없다는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그 마음은 시간이 흐른다고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더 또렷해진다.

 

아마도 이 비는,

내가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의 무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비를 바라보며, 늦은 그리움을 조용히 삼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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