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좋은 글, 예쁜 시

어둑어둑한 시간에

작성자세오|작성시간26.06.19|조회수14 목록 댓글 0

어둑어둑한 시간에

 

서문곤

 

식지 못한 빛의 껍질이

어둠의 속을 더듬다

제 모양을 잃어버린다.

 

하늘은 뒤집힌 잔처럼

무언가를 쏟았으나

무엇을 비웠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나는 가장 늦게 남은 가장자리에서

익지 않은 침묵을 깨물며

흐르지 않는 시간을 삼킨다.

 

기다림은

형태를 버린 채

틈이라는 이름으로만 남아

발목 근처를 서성인다.

 

잡히지 않는 것들이

손금 속으로 스며들어

지워지지 않는 방향을 만든다.

 

어디선가

꺼지지 못한 불의 잔향이

자기 자신을 잊은 채 흔들리고

그 미세한 떨림이

이쪽의 어둠을 조금씩 밀어낸다.

 

그러나 그것이 빛인지

이미 식어버린 흔적인지

끝내 구별하지 못한 채

 

나는 접히지 않는 밤의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아직 오지 않은 쪽으로 기운다.

 

어둑어둑하다는 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도착하지 못한 것들이

잠시 머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