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 어디에서도 끝나지 않으며, 어디에서도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태초부터-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여기에 있어 왔고,
끝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때까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실 애초부터 시작이나 끝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삶 자체이다.
형태는 변하더라도, 육체는 변화하고, 마음은 변한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특정한 육체의 특성,
특정한 마음의 상태, 특정한 태도의 변화를 의미하며,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형태, 그 육체, 그 관념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그대는 집을 이사한다.
예전 집에 너무나 익숙해져있다면, 집을 이사하는 일이 매우 힘들 수 있다.
그 오래된 집이 자신의 존재, 자신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에
그대는 자신이 죽어간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대는 단지 집을 바꾸는 것뿐이고, 그대 자신은 동일하게 남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 사람,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한 사람은 영원히 끝없는 과정을 알게 된다.
삶은 시간을 초월한, 시간을 뛰어넘는 하나의 과정이다. 죽음은 그것의 일부분일 뿐이다.
죽음은 끝없는 부활이며, 삶은 또 다른 부활이다.
삶은 낡은 형태를 버리고 오래된 건물을 없애고 답답한 구조물들을 없애도록 도와서
그대는 끝없이 흘러가고, 또다시 새롭고 젊어지며, 순결해질 수 있다.
오쇼의 <농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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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사리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