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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상영한 때와 곳은 어디일까요?

작성자스마일|작성시간07.01.19|조회수62 목록 댓글 0
한국에서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영화를 상영한 때와 곳은 어디일까요?
한국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상영되었던 때에 대해서는 한국영화사를 연구하는 학자들마다 여러 가지 다른 견해들이 있습니다. 그 범위는 1897년에서부터 1905년 사이에 걸쳐 있는데요, 예를 들면 영화사연구자 박누월은 1904년, 이청기는 1903년, 이영일은 1903년, 조희문은 1890년대 후반을 주장하는 등 연구자들은 각자의 증거를 기반으로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대중들을 위해 상업적으로 영화가 상영된 최초의 기록을 거론할 때에는 최근 대부분의 학자들이 합의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903년 6월 23일자 황성신문의 아래와 같은 광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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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門 內 電氣會社 機械廠에서 施術하는 活動寫眞은 日曜 及 陰雨를 除하는 外에는 每日 下午 8時부터 10時까지 設行되는데 大韓 及 歐美各國의 生命都市 各種 劇場의 絶勝한 光景이 具備하외다. 許入料金 銅貨 十錢

(동대문 내 전기회사 기계창고에서 보여주는 활동사진은 일요일과 비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상영되는데, 조선과 구미 각국의 생명, 도시, 각종 극장의 뛰어난 풍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입장료 구리돈 10전)

신문기사에 광고를 낼 정도까지 진행된 것을 보면 이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가 상영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짐작을 할 수 있게 하지만, 그것은 짐작일 뿐이고 명확한 자료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위의 기사가 최초의 대중상영의 기록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공인된 세계 최초의 영화상영 기록이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2월 10일 그랑 까페에서 <열차의 도착>이라는 영화를 대중들에게 보여주었던 때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10년이 채 되지 않은 때에 조선에서 영화가 상영이 된 셈이겠지요.

그렇다면 왜 전기회사가 영화상영을 했을까요? 이 전기회사는 한성전기회사(Seoul Electric Company)로 당시 서울시내(서대문-홍릉)에서 전차업을 운영하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당시 운영의 초기단계에 있었던 전차의 편리성을 홍보하고, 전차 승객을 유치하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후 이런 식의 비정규 상영관에서의 영화상영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흥행관행은 1910년을 전후하여 정규적인 상설관으로 정착됩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계기로 일본인의 조선 진출이 활발해졌으며, 1910년경에는 경성의 남촌을 중심으로 상당한 규모의 거주촌을 형성하였는데요. 이러한 일본인 관객을 주 대상으로 하여 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상설 영화관들이 1910년대 초반에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죠. 이런 극장들로는 경성고등연예관(1910년 2월 개관), 대정관(1912년 11월), 황금관(1913년 1월)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12년에는 마침내 우리가 잘 아는 우미관이 조선인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고, 1918년 단성사가 영화 상설관으로 재개관하면서 우미관과 단성사가 서울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흥행을 양분하게 됩니다.

참고자료
이효인, 한국영화역사강의 1, 이론과 실천, 1992
조희문, 한국영화의 쟁점 1, 집문당, 2002
이영일, 한국영화전사, 도서출판 소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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