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를,
편리함의 방편으로써만이 아니라
놀람이라는 수단으로써도 만난다.
편리함의 방편으로써 만날 때
우리는 세계를 지배하기 위하여
정보를 탐색한다.
놀람이라는 수단으로써 만날 때
우리는 세계에 응답하기 위하여
감상을 더욱 깊게 한다.
편리함의 언어는 힘이요,
놀람의 언어는 시(詩)다.
더 큰 힘을 부리기 위하여
지식을 넓히고자 할 때,
이 세계는 우리에게 낯설고
이상한 것이 되고 만다.
반면에 이 세계의 가치를
더욱 가깝게 감상하기 위해 얻는 지식은
사물과 우리의 조화를 발견하는 길이 된다.
정보에 둘러 싸여 우리는 외롭지만,
감상 속에서 우리는 모든 사물과 더불어 있다.
-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3:5
인간의 필요에 따라, 그 욕망에 맞춰서
익충(益蟲)이니 해충(害蟲)이니 나누는 행위마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존중하기보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원하는 대로만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이라.
내 마음대로, 내 원하는 대로
세상을, 만물을 통제하고 다스리려는 마음은
피조물임을 인정하기보다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 마치 창조주처럼
행세하고자 하는 불신앙이라.
세상을 자기 욕망대로 재단하려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하고,
하나님을 없다 부정하며 외면하다
공포 속에 휩쓸려버린 영혼은
여전히 유혹자의 속삭임에 속아
오늘도 진화의 헛된 꿈을 꾼다.
조금 더 발전하면, 더 진화하면
완전해지리라, 영원해지리라!
그러나 유혹자는 거짓의 아비.
달콤한 유혹은 더 큰 고통만 안겨주고
결국 멸망으로 이끌어 가리라.
죽음의 문턱에서야 후회하며
짐승처럼 울부짖으리라.
울며 탄식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