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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건 꼭 공식 같은 게 없어서 함께 자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영화를 봐도 그것을 두고 한 사람은 사랑이라고, 한 사람은 우정이라고 칭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의 행위와 언사들은 사실, 마음만 조금 세게 먹으면 친구와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어서 두 사람 간의 오해와 갈등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랑이라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우리는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내가 그렇듯, 너도 날 사랑할 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엄연히 다른 이유다.
그저 친구 사이를 운운하는 썸머(조이 데샤넬)와 엄연한 연인 관계를 주장하는 톰(조셉 고든-레빗)이 현실 속의 실재 인물들이라면, 이는 필시 (여자가 보기에)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나 양다리라거나 하는 다른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일 게다. 전문 용어로 '어장 관리'라고도 부르는 현실 속 그녀의 행위는, 친구라는 허울로써 상대에게 접근하고 또 상대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므로 도덕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이든 영화든, 썸머의 행위를 두고 정말 그르다 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사랑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함께 자고 함께 살며 감정을 교류해도 우린 친구 사이라고 한다고 그녀를 bitch라고 욕할 수 있을까 하는 거다.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미성숙한 존재도 아니요, 성장 지체 장애인도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일반적인 의미의 사랑을 구걸하는 그와 다를 뿐이요, 이는 엄연한 개인의 선택임으로 오히려 존중받아 마땅하다. 썸머는 '우리는 친구다' 라는 사실을 그에게 반복적으로 주지시키면서 상대에 대한 예의도 충분히 갖췄다. 뿐만 아니라 톰 역시 아쉬운 대로 그녀의 방식에 일정 부분 동의하며 충분히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가? 정말 그녀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톰은 그 순간 돌아서야 옳았다. 톰이 썸머에 대해 아쉬워하고 분노하는 이유는 그가 썸머의 방식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소유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오점은 썸머가 일반적인 사랑의 의미를 깨달을 때 나타난다. 감독은 그녀가 그동안 그래왔던 것은 단지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운명 같은 상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썸머에게 있어서 톰은 말그대로 친구일 뿐이었고 수많은 물고기 중 선택받지 못한 물고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결국 감독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의 방식이 진짜 사랑의 공식이자 정답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쿨하게, 썸머는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사랑하며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물론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변할 수 있다. 그러나 '네가 옳았다'는 말 한마디로 500일 간 뜨거웠던 한 남자의 마음을 정리하려 드는 것은 그 남자에 대한, 그리고 일생에 한번쯤은 톰과 같은 뼈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을 관객들에 대한 굉장한 무례다. 그러니까, 이는 사랑에 대해 무책임하고 무지한 그녀가 낳은 대참사라고 할 수 있다. 슬기롭지 못한 이의 사랑은, 이렇듯 언제나 민폐를 끼친다. 아무리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지만, 그런 몇마디 말로써 넘어가기에는 홀로 남겨진 자의 고통이 너무 크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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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radiopia 작성시간 09.12.24 여주인공 이뻤지만, 남자 입장에서 여주인공 살짝 짜증났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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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그곳이멀지않다 작성시간 09.12.25 아 이 영화 재밌던데요. 여주인공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의 가이드>에 나오던 여주인공이더라구요~ 언제나 매력+엉뚱녀로 출연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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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憧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12.25 인정하긴 싫지만, 나 같아도 썸머와 일종의 거래(?)를 했을 듯.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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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2년안에결판낸다! 작성시간 09.12.25 우리나라에선 아직 개봉 안했죠? 시사회도 안했고? 얼른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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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1980 작성시간 09.12.28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썸머'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소유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소유하려는 건 고난을 자초하는 행동일 테니까요. 안좋은 결과에 따른 고통 또한 스스로 감내해야겠죠. 그리고 현실 속이었다면 그녀 역시 비슷한 아픔을 느낄 거라고 생각해요. 분명 자신과 맞는 한 '친구'와의 이별쯤은 됐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