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뒷 이 야 기 들

공돌이, 공순이를 만나다

작성자1980|작성시간10.03.25|조회수1,099 목록 댓글 13

얼마 전에 공장 근로자들을 사석에서 만났답니다. 소위 말하는 '공돌이(공순이)' 말예요.

저 역시 군대 대신 소위 방산업체라고 하는 공장에서 3년 정도 근무했기 때문에.. 반가웠죠.

 

'라인' '잔업' '2·3교대 근무' '특근' '불량' 이런 얘기들은 저를 추억에 젖게 해요.

군대 얘기는 몰라도 공장 추억은 주위에 별로 공유할 사람이 없어서 아쉽답니다.

 

모처럼 만에 이쪽 세계와 만나니 일단 무척 반가웠답니다.

그렇다고 공장 얘기를 하진 않죠. (이쪽 세계에서는 공장 일 얘기하면 쪽팔린 거예요ㅋㅋ)

 

나이트에서 논 얘기, 잘 나가던 얘기, 친구 잘 나가던 얘기 이런 게 최고죠.

다른 공장 친구도 오고 금새 왁자지껄해 졌답니다.

뭐 저는 그때부터 꿀단지가 됐어요. 그분들의 입담을 당해낼 수가 없었거든요.

 

-나 오늘 나이트에서 만난 남자네 집에서 자다 왔는데, 지금 전화번호 바뀌었다. 열받는다.

-그걸 가만히 있냐, 지금 그 남자네 집 때려 엎으러 가자. (다음날 진짜 가기로 했음)

-난 힐로 찍을테니 넌 핸드폰을 뽀개버려라. (실제 그 친구한테 전화해서 욕 한 바가지 함)

-나 지금 저기 종업원 마음에 든다. 그러냐 내가 가서 폰 번호 따 오겠다. (진짜 따옴)

 

뭐 이런 얘기들.. 제 얘기도 했답니다.

 

-착한 것 같은데 재미는 없어 보이네요. 옷이 그게 뭐예요.. 처음 봤을 때 솔직히 깜짝 놀랐어요.

-나중에 동대문 같이 가요. 제가 옷 잘 고르니까. 서울 갈때 연락할게요.

-기자라고 하길래 연예인 많이 보고 멋있을 줄 알고 기대했는데 별로네요.

-먼 데까지 왔는데 우리 얘기만 해서 미안해요. 재밌었어요. 담에 또 봐요.

 

그리고 그들은 다른 술자리로 떠나고 전 서울로 왔죠.

 

---

 

제가 이 얘길 왜 하냐고요. 그냥 갑자기 예전 생각도 나고, 또 요즘 생활과 너무 대비돼서 좀 즐거웠어요.

가식과 위선이 난무하는 세상에 있다가, 오랜만에 솔직한 세계에 와서 당황스러운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들의 솔직함.. 그리고 그 속에 있는 그들의 따뜻함.. 진실함..

 

얘기를 들어보면 그 친구들 나름대로 사연 있고, 어려움도 많아요.

친구간 의리, 결혼, 가족 얘기 등등.. 그에 비하면 저는 그냥 복에 겨운 한 사람.

참 은연 중에 '삼성은 시스템은 잘 갖춰졌는데 무노조라 싫다' 같은 제 관심사 얘기도 했었네요.

 

그런데 그런 건 술자리 안주감이지 결코 우울한 느낌이 아녜요. 88세대 처럼.. 사실은 더 우울한 것일 수도 있는데.

아랑 뒷이야기들에서 하는 하소연들.. 이들 세계에서는 그저 시시껍절한 얘깃거리도 안 된다고 하면 정확하겠네요.

 

거기 갔다오고 나니 요즘 복잡하던 마음이 (이상하게도) 다시 가뿐해졌어요.

뭐 인생 별 거 있나요.

 

너무 똑똑하셔서 우울하신 분들, 위선을 벗고 좀 더 솔직해져 보세요.

김연아·박태환처럼 먼 곳만 보시는 분들, 그냥 주위도 한번 보세요.

 

요는 누가 더 대단하냐는 게 아니라 누가 더 즐겁고 행복하냐는 거니까요.

 

ps. 이 글, 공돌이(공순이)를 비하하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저 같이 어설픈 소위 '지식인'들을 비하하려는 거죠ㅎㅎ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그곳이멀지않다 | 작성시간 10.03.29 저도 1980님 글만 봤을 때 공대나왔으리라 생각못했어요 ㅎㅎ 워낙 말랑말랑한 글을 잘쓰시기에~
    '많이 아는 척'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덩달아 '많이 알고 있는 척'하며 묻혀 있다가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을 만나면 참 편하고 좋더라구요. 그래서 두루두루 만나보며 사는 게 좋은 거 같아요.
  • 답댓글 작성자1980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3.30 공대 안 나왔어요; 여기서 공순(돌)이는 공장 단순 노무직이에요. 공대생이 아니라ㅎㅎ;
  • 답댓글 작성자그곳이멀지않다 | 작성시간 10.03.31 보통 군대대신 방산업체 가는 분들이 공대분들이 많아서 넘겨짚기 했나봐요 ㅎㅎ
  • 작성자Dual | 작성시간 10.03.30 근데 취재가신거에요? 궁금하네요^^
  • 답댓글 작성자1980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4.01 겸사겸사요. 평택에 'ㅆ'자동차 회사가 있거든요. (자비로ㅠ)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