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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 야 기 들

재밌는 세상

작성자1980|작성시간11.06.24|조회수1,593 목록 댓글 24

기자 만 2년11개월째. 사람 만나는 폭이 좁았던 예전과 달리 온갖 군상을 본다. 재밌다. 다니는 ‘토양’이 척박해서일까. 개중에는 소위 타락한 사람도 많다. 세상을 바꾸겠다며 철두철미한 기자정신으로 무장했던 수습기자가 어느덧 진상 기자로 변해 있다. 철두철미한 정신이 타락도 더 철두철미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심하진 않다. 그럴 자격도 없고. 그냥 현실이 그렇다. 재밌다.

 

그러고보니 특종을 하는 ‘우수한’ 기자라는 사람을 보면, 사명감이나 의지보다는 집요함.끈질김이 특징인 호사(好事)가도 많다. 외곩수적인 면도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지나쳐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일종의 변태성향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똑똑한 변태랄까. 때론 내가 취재하는 것보다 그들을 지켜보는 게 더 재밌다. 그들을 취재하고 싶다. 왜 기자를 했으며, 평소에는 뭐 하고 사는지. 멋들어진 언론 인터뷰 말고 그냥 뒷골목 가라오케 같은데서 그들의 ‘속사정’을 들어보고 싶다.

 

반년 전 모 대기업 로비에서 중학시절 날 무던히도 괴롭히던 친구를 만났다. 자기는 별 거 아닌데 소위 일진에 어울려다니며 아이들을 괴롭히던 친구. 힘없고, 작고, 반항 안(못)하는 난 괴롭힘 대상까진 아니었다. 심하게 때리거나 하진 않았다. 뭐랄까…. 그냥 심부름만 좀 했다. 그런데 그 친구, 멋있어졌다. 그때도 생긴 거 하난 괜찮았다. 대기업 명찰을 달고 나니 더 있어보인다. 듬직하다.

 

직장 동료와 걷던 그 친구, 나랑 눈이 마주쳤다. 우린 서로를 인식했다. 난 어쨌든 반가운 마음에 ‘어-’라며 손을 반쯤 올렸다. 그러나 그 친구, 1~2초 만에 시선을 피했다. 재밌다. 어엿한 사회인이 된 만큼 과거는 잊고 싶은 걸까. 지금도 2인자답게 좋은 후배이자 나쁜 선배일까. 아니면 겉도 속도 다 변했을까. 그의 놀라운 변화에 박수 3회. 그러고보니 난 왜 반가운걸까.

 

‘출입처’라는 이름으로 주 1~2회 기자실에 들르다보니 그 뒤로도 몇차례 더 마주쳤다. 그런데 그냥 계속 모른체 했다. 참 어색한 관계다.

 

얼마 전엔 자신감 넘치는 변호사도 만났다. 사시 패스하고 변호사 딱지 달고 놀기는 좀 놀았나보다. 밤문화 얘기가 청산유수다. 그런데 이게 왠일. 얼굴 속에 고교시절 찌질했던 ‘범생’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과거를 꿰뚫어 보는 심미안이라도 생긴걸까. 담배를 태우는 모습도 왠지 어색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말해주고 싶었다. “그냥 과거 공부하던 때로 돌아가세요. 안 어울려요”라고.

 

요샌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 강남, 종로의 휘황찬란 길거리도, 압구정 부띠끄도 지난다. 하의실종 패션이 유행은 유행인가보다. 여름이 다가오는 것 같긴 하다. 눈이 즐겁다.

 

아. 얘기하려는 건 그게 아니다. 스쿠터란 게 최고시속이 60㎞다. 물론 내가 다니는 길도 법정 최고시속이 60㎞다. 아무런 문제 없다. 그런데 내 스쿠터의 속도를 답답해 하는 차들을 곧잘 본다. 시내는 대개 막히지만 가뭄에 콩나듯 길이 뚫려 있을 땐 클랙션을 울리기도 하고, 상향등을 켜며 나를 긴장시킨다. 난 법의 틀 안에서 최고속도로 잘 달리고 있는데.

 

물론 나도 차를 탈 때 법정속도를 지키진 않는다. 카메라 있을 때 빼곤. 그런데 스쿠터 입장에 처하고 보니 왠지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로 나가도 최고시속은 110㎞인데 왜 200㎞가 넘는 차들은 없어서 못 파는 걸까. 과속딱지 세수 확충을 위해설까. 재밌다.

 

세상은 부조리하다. 조화롭지 않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그래서 재밌다. 판에 박히지 않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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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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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1980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7.03 뭐. 나쁜 놈은 지옥 가기 바라는 심정?ㅋ
  • 작성자브라보 mylife | 작성시간 11.07.02 판에 박히지 않은 게 재밌긴 하죠ㅋ you are still rock star!! ㅋㅋ
  • 답댓글 작성자1980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7.03 thx
  • 답댓글 작성자銀狼 | 작성시간 11.07.04 a
  • 답댓글 작성자브라보 mylife | 작성시간 11.07.04 관사를 빼먹었군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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