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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 야 기 들

해병대 공보실장의 욕설 파문 그리고 기자직에 대한 회고

작성자Zenon|작성시간11.07.16|조회수1,233 목록 댓글 8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기사를 클릭한다.

 

여느 대중처럼 나는 대부분의 기사를 '읽지' 않고

'소비'한다. 3~4개의 기사를 읽어도 결국엔 주어 술어는

같고 수식어만 다른 거기서 거기인 기사다.

 

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해병대 공보실장이 기자에게 욕을 했다나?

지금까지 용케 버티고 있는 해병대 사령관이 사의를 표했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공보실장이 말바꾼 사실을 sbs기자가 '보도'했을 뿐인데

그걸 갖다 직접 전화를 걸어 '개xx'라는 욕설을 한

공보실장의 무식한 행태에 심히 불쾌했다.

 

그런데 덧글은 더 가관이었다. 첫 베플이 "기자 이 ㄳㅄ들아"로

시작되었고 두번째 세번째 베플도 "우리가 니네 편 들어줄 줄

알았냐 이 ㄳ들아"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엇이 기자로 하여금 대중의 적이 되게 했을까?

덧글을 적어 이 방향은 분명 잘못된 흐름이고 공보실장이

잘못한 게 맞다고 덧글을 제법 달았는데 아무리 논리적이어도

감정적 파토스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몇 번 덧글을 쓰다

옆에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나비, 유희열에게 "사랑과 욕정 구분 못하는 더러운 수컷"'

 

오만 생각이 다 든다. 나비가 유희열에게 '사랑'이라는 핑계로

금전을 혹은 몸을 갈취당했나? 유희열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클릭해보니 나비가 뮤지컬에 나오는 대사를 유희열 앞에서

보여주었단다. 나도 모르게 기자욕부터 나왔다.

언론사를 보니 TV리포트라는 곳이었다.

 

언로는 말같은 말이 오고가는 길이라는 뜻이 깃들어있다.

그래서 그 직에 종사하는 인을 언론인이라 부르고

그 말을 전하는 이를 기자라 한다.

 

근데 요즘은 말같지 않은 말을 전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졌다.

일부 보수 진보 언론들 역시 자극적 제목을 쓰고 짜맞추기식

기사를 제법 쓰긴 했지만 그래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기자는 어렵다. 그렇기에 더더욱 소신이 있고 능력이 있고

확신이 있어야 한다. 보도를 할 때도 언론의 자유만큼이나

책임을 생각하여야 한다.

 

일련의 덧글들을 보며, 기자에 대한 일련의 대중인식을 보며

그 옛날, 소위 규모가 작더라도 '주류와 다른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주류의 형식적 완성도'를 지키겠다는 내 당찬 각오가 과연 얼마나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지 자문한다.

 

어렵다. 힘들다.

그렇지만 할 거다. 입사를 하든, 벤처를 하든, 1인 언론을 하든.

 

1993년 10.10 오전 10시에 위도 서해페리호가 침몰하며 292명이 사망, 54명이 부상당했다.

그 때 모 신문은 위도 옆의 식도에 살던 어선 선장을 인터뷰했다. 그 때 그는 선장 백운두 씨가

배에서 빠져나와 자기혼자 도피했다고 얘기했다. 언론의 추격전이 시작됐고 검경이 선장을 쫓았으며

여론은 선장을 매도했다. 그런데 10일 뒤 백선장은 선장실에서 죽어 있었다. 언론사는 '유감 표시' 한줄로 때웠다.

 

시사저널 남문희 기자는 이 사건이 100%사실이라는 보장이 없었기에 보도하지 않았다.

지금으로 치면 해병대 총기 난사를 연대장이 했다고 누가 말한 걸 전 언론사가 받아 쓰고

난리가 났는데 한 언론사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렇게 하기는, 지금도

그렇지만 정말 어렵다. 사실 했다가 나중에 아닌 걸로 밝혀져도 한 번 욕먹으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잡지는 덜 팔렸다. 압박도 컸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기자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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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銀狼 | 작성시간 11.07.16 큰 도둑은 벌하지 못하고 작은 도둑만 벌하는 것이 대한민국 사법부. 큰 나쁜 놈에겐 찍소리 못하고 작은 나쁜 놈은 죽을때까지 매질하는 것이 대한민국 언론. ㅡ 이라고, 헌정사 이후로 민중들의 실망이 쌓여 온 것 아닐지 걱정해 봅니다.
  • 작성자Acts 29 | 작성시간 11.07.16 최일구씨 말씀이 생각나네요. 'You are not alone!!'
  • 작성자1980 | 작성시간 11.07.18 '기자는 어렵다'는 한마디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론사나 기자의 개개인의 질이 낮아졌다기보다 독자/시청자가 매체를 접근하는 방식이 변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구조적 부작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의 언론이 또 그리 '정의'의 편이었고, '훌륭했다'고 믿기진 않거든요.
    대안을 생각하고 싶은데 (당연한 얘기지만) 저로썬 떠오르질 않네요ㅎㅎ
    ps. SBS의 보도가 욕 먹을 만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실제 보도는 보지 않았습니다만, 이 글만 보면 SBS 기자는 자신이 욕 먹었고, 기분이 나빴고, 다분히 보복의 느낌이 듭니다. 반대로 기자가 말 바꾸고 욕한 걸 보도하자면 끝도 없는 현실 속에서 설득력이 영..
  • 답댓글 작성자1980 | 작성시간 11.07.17 사실 제 출입처의 상황으로만 유추해 본다면 오히려 공보실장에 측은지심이 듭니다. 자신이 욕 먹은 게 '공익'에 반하는 행동, 곧 보도할 만한 내용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 작성자스스슥 | 작성시간 11.07.20 '나는 7ㅣ자다'라는 프로가 있었음 좋았겠다. 라는 생각 잠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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