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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 야 기 들

맹모삼천지교, 불편한 갈등

작성자AndEnd|작성시간11.10.06|조회수837 목록 댓글 11

며칠 전 굶주린 배를 채우러 아침 겸 점심으로 동네 중국음식점에 갔습니다. 홀에 와서 먹으면 짜장면(아! 얼마나 쓰고 싶었는지!)을 2500원 이란 착한 가격에 준답니다. 


친구와 테이블에 앉아 짜장면 2개와 군만두를 시켜봅니다. 취업의 어려움을 한탄하고 있으니 한 아이가 가게로 들어섭니다. 가게 주인의 아이로 보이더군요. 아이는 이곳 저곳을 익숙한 듯 돌아다니며 관심을 보입니다. 제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오더군요. 장난을 치길래 친구가 좀 받아줬습니다.


불편한 장면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식사 중에 아이는 가게 안에서 혼자만의 놀이를 시작합니다. 카운터 용도로 쓰이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 전화 놀이를 하더군요.

"네. 그건 지금 안돼요. 그건 돼요. 네 빨리 갈게요."


아이는 전화로 짜장면 주문 받는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와서 아이에게 말을 걸더군요.

"아이고, 네가 주문 받았어? 뭐 받았어?"

"짜장면 두 개랑 군만두 하나."


주인은 아이의 행동이 귀엽다며 연신 칭찬합니다. 옆자리 친구도 아이의 행동이 귀엽다 합니다.

저는 살짝 이상한 걸 느꼈습니다. 맹모삼천지교가 생각납니다. 무덤가에 살았더니 곡소리를 흉내내며 울고, 시장 근처에 살았더니 장사꾼을 흉내내기에 서당 옆으로 이사해 공부를 시켰다는 맹자와 그의 어머니 말입니다. 


저는 아이가 전화로 주문받는 놀이를 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가 가게에 자주 놀러와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커서 중국집을 열겠구나. 아 그럼 아이에게 좋지 않을텐데.' 라는 생각을 한 겁니다.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그런 생각을 한 제가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아니 중국집 사장이 천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제 자신이 이상했습니다. 공부를 통한 입신양명과 신분상승이야말로 아이에게 필요한 미래라고 생각했던 것도 반성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제 머릿 속엔 '직업엔 귀천이 있다.'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큰 리어카로 박스를 주으며 동네를 돌아다니는 노인, 음식 배달원, 시장 상인을 보며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갈등은 아직도 진행중 입니다. 저는 아직 멀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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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1980 | 작성시간 11.10.07 에궁. 꽤 강력한 내적 갈등을 겪고 계시는 모양임다. 농담이었는데. 이런 생각 하실까봐 단순히 '부자가 되면 행복'한 게 아니라 '사회환원'을 내걸기도 했고요ㅠ
    이런 갈등이 지속되면 세상은 당최 알 수 없게 됩니다. 부자가 되든 안 되든,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일을 하든 안 하든, 놀든 놀지 않든 무의미하니까요.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란 전제 역시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가령 '타인의 삶을 앗아감으로써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이 사람의 행복을 앗아감으로써 다수가 행복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의 행복을 빼앗고 억압하는 게 옳을까요? 다수의 행복이 더 중요하니까?.. 어려운 문제죠ㅎㅎ
  • 답댓글 작성자1980 | 작성시간 11.10.07 많이 고민하시고, 또 적정선에서 나름의 답을 내시기 바랄게요.
    그 중에서 이론은 이론 차원에서, 현실은 현실 차원에서 타협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참고로 보통 '돈과 행복은 비례하는 게 아니'라고 고민하는 사람은 대개 돈이 넉넉히 있는 사람이더군요. 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람은 행복이 아닌 생존을 위해 돈을 필요로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돈을 벌어야 해요. 부호 혹은 삶의 초월자가 아닐 바에야 돈은 조금 넉넉히 있는 편이 낫죠. 마음먹기에 따라 좋은 일에도 많이 쓸 수 있고.
    참고로 저 역시 대개는 행복하지만 돈이 없으니 걱정거리는 늘더군요ㅠ 일시적으로나마.
  • 답댓글 작성자AndEnd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0.07 심각할정돈 아니에요. 하지만 근본적 고민을 잘 짚으셨네요. 돈과 행복, 그리고 어떤 종류의 행복이 좋은건지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까칠하게 댓글달아서 죄송해요
  • 작성자산타너구리 | 작성시간 11.10.08 어떤 부모도 자신의 아이를 방치하거나 방임하는 부모는 없을꺼라고 생각해요.예외도 있겠지만, 하지만 부모의 교육수준과 적극성 경제적 영향력이 많은 상황적 변수를 만들겠죠. 그렇게 생각하셨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중국집 가정의 여러 상황적 변수가 그런 환경을 만들었을테니까요. 가치판단 보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아버지는 아이에게 여러가지를 가르치고 아이는 배울테니까요. 어떤 교육보다도 중요한것 부모와 아이의 사랑하는 마음이겠죠.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말은 틀린말입니다. 이 세상은 분명 보이지 않은 귀천이 존재하고 그런 존재가 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을뿐인걸요.
  • 작성자산타너구리 | 작성시간 11.10.08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마음을 낳는것같아요.직업의 귀천은 존재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느냐가 더 우선인것 같아요. 저 사람은 천한 일을 하니 저 사람처럼 살지 말아야지라는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나도 저 사람처럼 온 몸을 던져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해 본적 있는가? 그동안 정말 편하게 살아왔구나 하는 자기 반성의 시간이 되면 더 본인을 위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돈이 없으면 분명 행복도 깨지고 사랑도 깨질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던지 땀을 흠뻑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은 참 아름다움이있습니다.그런 아름다움을 느끼실수있는 가슴이 먼저가되길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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