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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 야 기 들

필기 때 활용하면 좋을 철학 노트

작성자Zenon|작성시간12.06.11|조회수2,397 목록 댓글 5




필기 때 인용 혹은 예시로 쓸 때 철학은 좋은 재료가 됩니다. 해서, 정리해놓은 것을 한 번 올려봅니다.

여기 쓰는 말들은 직접 인용도 있고 제 생각을 담아 풀어 쓴 내용도 있습니다. 






글 마지막 부분은 일기입니다.




I. 자유에 관하여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 자유란 설령 그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소중하다. 왜냐면 자신의 바람대로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


* 토크빌은 민주사회에선 자유가 억압되지 않는데도 평등 제일주의로 흐르고 이것이 냉소적 개인주의와 결합함으로써

   다수의 횡포를 방치하고 여론 뒤에 편안히 앉아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전체주의다.


* 위 토크빌 견해에 밀은 동감을 표한다. 관습, 여론의 압력이 개인의 자유에 더욱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가령

   파업한 MBC 노조에 비판적인 사람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글을 쓰고 싶어도 자신에게 쏟아질 여론의 압력이 우려돼 의견을 표출하지 않는다. 결국 침묵하게 되고 이 때 (파업 정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자유는 위축될 수 있다.


* "미개인들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독재이더라도 정당한 통치가 된다"라고 밀은 생각했다. 어이가 없을 것이다. 나도 

    어이가 없지만 동인도 주식회사에서 근무한 밀의 이력을 알게 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다수가 효용성 차원에서 일정 부분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책임을 강요할 순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제한 못한다.

  첫째가 양심의 자유, 둘째가 기호추구의 자유, 셋째가 결사의 자유다.


*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유이한 길은 경험과 토론이다. 특히 토론은 경험의 해석에 꼭 필요하다.


*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적어도 너는 상식적 수준에서 그에 논쟁하여 제대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 확실하다고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안도 다시 토론된다면 될수록 좋다. 


* 절제된 양식이 필요하긴 하나 때에 따라서 논쟁의 당사자 모두에게 예절을 요구하는 것은 소수가 통설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가 돼버린다고 밀은 보았다. 그래서 진중권은 독설, 빈정, 인신공격 스킬을 사용한다.


* 각자의 개별성은 발휘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칼뱅의 말은 버려라. (칼뱅은 "의무가 아닌 것은 모두 죄악"이라 말했다)


* 별종들이 시대의 획일성을 거부하고 파격을 보이는 것만으로 인류에게 큰 봉사다. 즉 밀은 또라이도 배격해선 안 된다고

   본 것 같다. 갈릴레오도 당시엔 또라이 취급을 받았고 여러 혁신가들 또한 당대엔 그러했으므로 타당하다.


* 훔볼트는 "인간 발전의 필수 조건은 자유와 상황 다양성"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 밀은 "정치 평등과 교육 평등이 다양성을

   없앤다"고 보았다. 신분제를 옹호하는 측면의 발언인가?


* 타인이 보기에 그게 설령 이익이 된다한들 그의 뜻을 무시하고 강제했을 때 발생하는 손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지나쳤다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 마약을 하더라도 몰래, 모르게 하면 상관없다. 


* 국가는 교육을 통제해선 안 된다. 다만 배려해야 할 뿐


* 개인은 최소한의 사회적 감당 몫을 빼고는 더 자유로워야 한다. 국가는 시민에게 교육의 의무와 가족부양능력 심사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개인의 자유가 아무리 나쁜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그것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선택이 제한되었을 때의 경우보다 무조건 낫다.


..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밀은 이 둘을 바로 경험과 토론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예전엔 토론을

자주 하지 않았다. 귀족은 아랫것들인 상민들과 말섞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고 성골은 또 진골을 무시했다. 왕과 토론하는 건 더

어려웠다. 밀이 말한다. 토론이 됨으로써 '정의'라 여겨지는 것들, '옳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끊임없이 도전받아야 한다고.


확실하다고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안조차 토론이 되면 될수록 더 나아질 수 있으며 그래야 시민들의 자유로 신장될 수 있다고.

주위를 둘러보라. 우리는 자유로운 듯 하지만 완전히 그렇진 못하다. 단 한 번도 검증되지 않았거나 아주 오래 전 합의된 제도,

규율, 규범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이 모든 것들은 다 토론장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 위대하고도 힘겨운 작업은

몇몇 별종들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며 이들이 보이는 파격성과 획일성 거부는 인류에겐 큰 봉사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양심적

병역거부) 그렇다. 인간은 끊임없이 도전받아야 하며 그럴수록 자유로워진다. 


당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자유는 오직 자유롭지 않을 자유 뿐이다.



II. 정의에 관하여 - 분배와 소유권을 중심으로


<정의론>


 존 롤즈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Anarchy, State, and Utopia)>


로버트 노직




존 롤즈의 견해.


"정의는 사회의 제 1덕목이다. 효율적이기만 해선 안 된다. 왜냐면 정의란 사회 협동체의 이득과 부담 분배 기준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배분적 정의) 자연 상태에서 약자들에 대해 합의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가언적 합의) 결국 정의는 사회제도 내에서 윤리, 의무를 할당하는 방식 제시해야 한다."


롤즈의 말은 그렇다. 정의는 엄청 중요하다. 그런데 세상을 보면 양극화돼 있다. 부자는 배불러 죽고 가난한 자는 못먹어 죽는다.

과연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저렇게 사는 것에 대해 합의를 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약자들의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

메시가 축구를 잘해서 돈을 벌고 어떤 이는 몸이 불편해 돈을 잘 못 번다면 메시는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벌어들인 재화를

나눠야 한다. 결국 사회는 그러한 재화, 권리, 윤리, 의무를 분배해야 한다. 합당한 방식으로. 그게 롤즈의 생각이다.


그럼 롤즈를 비판하는 노직은 어떻게 생각할까.


로버트 노직의 견해.


우리는 소유권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남는 것은 각자가 만든 생산물을 어떻게 교환하는가의 문제이다. 결국

정의론의 과제는 교환의 기준을 정하는 '공정한 가격'을 만드는 것이다. 칸트도 말했잖아. 개인은 단순한 수단이 아닌

목적이라고. 자유에 대한 개인의 절대 권리 인정해야 된다. 메시가 축구 잘하는 건 그의 소유권에서 나온 건데 왜 남을 신경쓰나.


딱히 어려운 말은 없으니 다음으로 넘어간다. 요약하면 롤즈는 재능으로 인해 얻은 자산은 나눠야 한다고 보았고 노직은

나눌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이민정은 자신이 이쁘다 해서 그 이쁜 얼굴 통해 벌어들인 돈을 남에게 줄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나눈다 한들 그걸 어떻게 나누냐는 말이다. 롤즈가 얘기한다.


존 롤즈의 견해.


먼저 무지의 베일이란 걸 만들어야 한다.(veil of ignorance) 여기선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 타고난 재능, 심리 성향 모른다고 가정한다. 공정한 합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배경인 것이다. 쉽게 예를 들면 이 세상을 게임이라고 치자. 우리는 게임기 전에 캐릭터를 선택해야 한다. 캐릭터들의 특색은 다양하다. 잘생긴 애, 이쁜 애, 돈 많은 애, 노래 잘 하는 애, 멘사 가입할만큼 머리 좋은 애, 올림픽 메달 딸 만큼 운동 잘 하는 애 등등. 우리는 이 중 어느 캐릭터로 플레이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 우리는 각자 나눌 것이다. 이쁜 애는 돈을 좀 덜 주고 키를 작게 한다든가, 머리좋고 집도 잘 살고 외모도 좋은 능력치를 가진 애는 세금을 50%를 매겨버린다든가. 또 몸에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애에겐 많은 복지 혜택을 미리 준다던가.


이런 식으로 나누면 불평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게 롤즈의 생각이다. 여기서 롤즈가 부의 불평등 문제를 핵심으로 본 것이라고 알아차렸다면 당신은 매우 높은 이해도를 가진 것이다. 다시 노직의 견해를 들어보자.


로버트 노직의 견해.


노직에 따르면 무지의 베일은 말이 안 된다. 일단 상황 설정 자체가 문제가 많다. 아니 대체 가치관, 성격, 성향까지 다 쓸어담아 버린다면 그게 어떻게 개인일 수 있겠는가? 무지의 베일이란 게 결국 태어나기 전에 협의한다는 상황을 가정하는 건데 자기가 어떤 성향도 가질지 모르는 그 사람들이 무슨 개인인가? 이것은 집단발상이다.


그리고 아무리 공평하게 나눠도 생각을 해봐라. 부귀영화 다 준다 해도 태어나면서부터 소아마비 걸려 일찍 죽는 캐릭터를 대체 누가 선택하겠나? 타인과 구별될 수 없는 개인은 허구다. 옛말에 목욕물 버리다 아기까지 버린단 얘기가 있는데 네가 딱 그 꼴이다. 재능도 개인에게 소유권이 있고 역사의 전개 과정은 집단에서 개인으로 발전해 왔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지 마라.



그래도 롤즈는 물러서지 않는다. 무지의 베일을 통과한다면 성공, 실패할 때를 대비할 수 있기 때문에 불평등이 최소화된다. 물론

노직의 비판은 이해한다. 하지만 정의의 원리를 수립하기 위해서 너처럼 가만히 손가락 빨기보다 나처럼 좀 고민을 해보라고

롤즈는 말한다. 소유권만 보장되면 불평등은 어찌되든 상관없느냐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롤즈는 정의의 원칙을 만들었다.


제1원칙. 가장 광범위한 기본적인 자유들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모두가!

제 2원칙. 그 불평등은 모든 사람들, 특히 최소수혜자에게 이득이 돼야 한다.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공직직위들에 대한접근기회가 있어야 한다.



사실 두 명은 더 많은 말을 했지만 이 정도만 이해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롤즈는 요즘 대세인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공동체주의 선구자 역이기도 하다. 노직은 1938년에 출생해 1968년 하버드대 정교수가 된 인물이다.

지금까지 했던 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롤즈는 소득 재분배를 통해 시민들의 평등한 삶에 관심을 기울였고

노직은 소유권 보호를 통한 시민들의 자유로운 삶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이 글은 일기를 써놓은 게 있지만 너무 길게 써놓아서 생갹합니다.




III. 알아두면 좋을 철학 용어들


1. '반증 가능성'


칼 포퍼는 무엇이든 사이비가 아닌 주장들은 '반증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주창한다. 따라서 '열린 사회'란

모든 주장과 반론들이 치열하게 토론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포퍼가 요즘처럼 음모론이 횡행하고 명예훼손, 

사실에 대한 진위여부가 불확실한 현실에 살았다면 위의 주장을 고수했을지는 모르겠다.


2. 실증주의


모든 걸 과학적으로 입증하자는 거다. 콩트가 창시자다. 한 마디로 하면 증거 제일주의이며 이 지점에서 종교, 형이상학

신화는 완벽하게 배격된다. 콩트는 다섯 가지를 전제했다.


1. 모든 현상엔 일정한 법칙 존재

2. 모든 현상은 예측 가능

3. 완벽한 계량화 가능

4. 주관적 측면은 무조건 배제

5. 물리학으로 환원 가능


하지만 언론고시 필기는 일정한 법칙도 없고 예측 가능하지도 않다. 난 그냥 느낌가는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3. 공리주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바로 '선'인 공리주의다. 


여기엔 세 가지 전제가 있다.

1. 모든 인간은 쾌락을 추구한다. (이 쾌락은 육체적 쾌락에 한정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

2. 행복은 수치화가 가능하다.

3. 행복을 추구할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4. 변증법


헤겔에 의해 제시된 변증법이다. 사실 '정반합, 정반합' 말만 줄창 듣고 이해는 제대로 안 되는 대표적인 수사 중 하나다.

변증법은 형식 논리와 달리 모순과 대립을 긍정한다. 예를 들면 형식논리는 이렇다.


1. 삼각형은 삼각형이다.

2. 삼각형 아니면 삼각형이 아니다.

3. 그러므로 삼각형은 삼각형이 아닐 수 없다. (3.8각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변증법은 모순과 대립을 오히려 중요한 요소로 보고 긍정한다.


1. 왕은 위대하다. 폭정해도 위대하니 까불지 마라. (정)

2. 엿먹어라. 왕이면 다냐. (반)

3. 백성 눈치 보는 공화정 탄생 (합)


정과 반이 합쳐져 합을 이루며 역사는 전진한다는 게, 바로 헤겔 변증법의 요체다.

하지만 헤겔은 이런 변증법적 진보는 유럽에서만 달성됐다고 얘기하며

그 자신의 지적 편협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5. 구조주의 


인간이 구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선험적 구조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뜻이다.

즉, 인간이 구사하는 모든 단어들은 실제로 사물을 직접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전체 구조 안에서 다른 단어들에 의해 규정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바나나는 그 자체로는 하나의 사물로 규정될 수 없다. 반드시 바나나를 수식하는

'노란' 혹은 '과일' 혹은 '길다' 라는 어휘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 다른 단어들에

규정되는 것이다.



6. 라드브루흐의 공식(die Radbruchsche formel)


독일의 법철학자.  법이 정당하지 못한 법이라 하더라도 최대한 지켜야 한다고 라드브루흐는 생각했다.

하지만 나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나치 법을 지키며 사람들을 학살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라드브루흐는

생각을 바꾼다. 법이 정의의 수인한도를 도저히 감내할 수 없을만큼 부정의할 때는 법의 지위가 박탈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라드브루흐의 공식이다. 


7. 아랑


여러 뜻이 있지만, 굶주린 사람이란 뜻으로 뭐든지 탐내는 사람을 뜻한다. 




쓰다 보니, 너무 길게 되었네요. 시간도 어느새 1시간이.. 글의

목적은 읽히는 것인데 걱정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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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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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1980 | 작성시간 12.06.12 카페명 '아랑'은, 꼭 이런 뜻은 아니랍니다..ㅎㅎ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Zeno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6.15 고맙습니다. 당분간 독서 일기를 올릴 예정입니다^^
  • 작성자초록태양 | 작성시간 12.06.14 우와...그런데...그림이 깨졌나봐요~!! 엑스박스에요 !! ㅋ-ㅋ
  • 답댓글 작성자Zeno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6.15 지금 봤네요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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