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니면서 학내 공간 안에서 딱히 빈부 격차를 크게 느낀 적이 없다. 대학 안에서 돈을 쓸 곳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학생식당과 교수식당, 그리고 매점과 복사점. 자판기, 서점, 이발소 등에서만 돈을 쓸 수 있었다. 여유가 있는 학생이건 없는 학생이건 학교 안에서 쓸 수 있는 지출의 규모가 별로 차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학교를 다니면서 경제적인 박탈감이나 위화감을 심각하게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학은 사회와 다른 대안공간이기도 했다. 그 대안공간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게 실은 대학생활의 중요한 혜택 중 하나였다.
이대 ECC에 취재 때문에 갔다. 대학 공간이 상업화 되었다는 보도는 접했지만 실제로 그 현장을 본 셈이다. 문화적인 충격을 느꼈다. 1층은 여느 쇼핑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내 공간으로서의 차별성을 딱히 느낄 수 없었다. 대형 피트니스 센터가 있고 스타벅스, 고급 중국음식점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학생식당 옆에 있었고 양장점도 있었다. 강남의 예식장 옆에서나 볼 수 있는 화원도 있었다.
그 공간을 보니 숨이 막혔다. 대학의 학내 공간 자체가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분리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게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편의점 옆의 공간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학생들이 있었고 여유롭게 비싼 중국식당으로 들어가는 학생도 있었다. 자판기 앞에서 동전을 털어 커피를 마시는 단발머리 학생과 스타벅스 카페 라떼를 들고 명품 백을 맨 채 엘리베이터를 타는 학생도 그 한 공간에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다른 학생들과 자신의 지출 규모를 학교 안에서 비교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자리 잡은 것이었다.
그 상업화 된 공간에서 상대적 박탈을 느낄 학생들의 마음이 그저 안쓰러웠다. 그리고 거기서 느낀 박탈감이나 열패감이 어떤 식으로 표출될지 짐작됐다. 지금의 젊은 친구들이 왜 이 시스템에 대해 적응만 하려 하는지, 연봉에 민감한지 미루어 확대해석(?)할 수 있었다. 한창 이상적이어야 할 시기, 그리고 그 시기를 담보해주어야 할 대학의 공간에서부터 자본주의의 실체에 노출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은 결국 대학에서조차 ‘대안’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바로 자신의 자본축적 현황과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아는 선배 형에게 전화를 해 이 ‘촌스러운 충격’에 대해 횡설수설 했다. 형은 요즘 친구들은 그 공간을 ‘혜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혜택으로 받아들이는 이면에는 ‘다른 학교보다 좋다’는 그 우월감도 작용할 것이다. 교문을 빠져 나오는데 기운이 빠졌다. 이런 충격을 받았다는 거 자체가 이 사회의 부적응자라는, 혹은 아웃사이더라는 방증인 것 같아서였다. 그 무의식에는 어떤 열등감도 있을 테고 어떤 자존감도 있을 게다. 다만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 인간을 소외하고 누군가를 초라하게 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거부감은 아마 평생 버리지 못할 듯싶다.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탓이니 이를 어쩌시려나.
2008년 착공 당시 이대 총학생회가 반대시위를 했던 영상이 있어 첨부...
졸업하고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비싼 등록금 내고 그 덕에 대학교 건물 좋아지면
가장 혜택을 보는 이들은
학생이 아니라 교직원이라는 것...어차피 학생들은 졸업하고 나면 끝..
>
댓글
댓글 리스트-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올리 작성시간 12.06.30 굉장히 무례한 댓글을 다시네요. 이대 학생들이 다른 학교에 자랑할 거리를 기뻐한다? 학내에서도 이씨씨의 상업화를 비판하는 학생들이 넘쳐나고 원글쓴 분의 생각에 동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씨씨가 왜 자랑할 거리가 되는 지도 모르겠구요. 거기다가 님이 쓰신 마지막 문장은 본인 수준을 드러내는 것으로 밖에 안보이네요. 아랑에서 이런 댓글을 볼 줄이야.
-
작성자줄야근 작성시간 12.07.15 현기증이 나는 욕망의 지하공간. 건축가 선정단계부터 아니 사업추진 그 시작부터 좋은 건축물이 나오긴 어려웠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씁쓸해요.
-
작성자초코홀릭 작성시간 12.09.29 ECC가 '이대'건물이란 사실이 월영님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 건 아닐까요. 전 ECC가 외부인이나 교직원들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로 보이는데, 대학의 상업화와 기업의 개입에 대해 단지 '경제적 박탈감,우월감, 열등감' 이란 시선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먹는학생이 다른날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먹는 학생일 확률이 더크단 생각도 들구요. 까페문화는 이제 완전히 보편화되었는데, 커피 한잔사먹는 평범한 학생이 '다른 가난한 학생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스타벅스커피만 먹는 이대생'들로 보였다면 그건 월영님이 이대생에 대해 갖고있는 이미지는 아닐런지요...
-
답댓글 작성자초코홀릭 작성시간 12.09.29 대학마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시대적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아직 졸업하지 않은 저 스스로도 요즘 대학은 대학이아니라 기업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느낍니다. 건물 뿐 아니라 배우는 학문들의 경향조차 그렇죠.고등학생들이 환호하는 대학은 대기업을 빽으로 가진 학교, 돈을 바른티가 팍팍 나는 건물이 많은 학교가 되어버렸죠...그리고 대학들도 어떻게든 여기저기서 돈을끌어모아 필요이상으로 눈이부시고 멋있는 건물을 지으려고 혈안이 된 모습. 그 중심에 학생은 없습니다. 위의 리플중에 마파람분다 님의 이씨씨의 아이러니에 대한 리플이 참 흥미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