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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 야 기 들

기자 정신은 집어 치우자.

작성자Zenon|작성시간12.10.02|조회수3,461 목록 댓글 10





직업의식이 소실된 기자 정신은 성립할 수 없다.




  기자는 쉽지 않은 직업이다. 힘있는 직업도 아니다. 언론이 정부, 의회, 법원에 이은 제 4의 권력 기관이니 해도 

그건 엄밀히 말해 언론사에 해당하는 문제지 기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 공화국'의 수장 대열에 언제

짤릴지 모르는 일개 계열사 사장이 명함을 내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자에겐 사실 어마어마한 연봉도, 대단한 권력도 없다. 그래도 한 기자가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비리를 터뜨릴 때 

사회는 열광한다. 치열한 기자 정신으로 사회 주류가 미처 보지 못했던 어둠 속에 전구를 들이댈 때 한 생명이 빛을 본다. 

판사에게 명판결이 있고 경찰에게 미제 사건 범죄자 검거라는 쾌거가 있다면 기자에겐 특종이 있다. 


  우리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그 가치관에 세상을 투영시켜 사회를 이해한다. 그럼 그 세상은 누가 보여줄까.

바로 언론이다. 극단적으로, 우리는 언론이 아니면 세상을 볼 수 없다. 크게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될지 작게는 어제 잠실 구장에서 누가 홈런을 쳤는지 어찌 됐건 언론을 통해 아는 것이다.


  우리는 당연시하며 그러한 '사실'을 전달 받지만 그 '사실'을 위해 기자는 때론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진 기자 정범태는 4.19 전날 고대생들의 피습 현장을 찍기 위해 정치 깡패의 위협을 몸으로 받아내야

했고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는 독재정권의 언론 통제 지침을 폭로해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이들의 기자정신에

충실했던 개인적 열정은 각각 4.19 혁명의 도화선, 언론 자유 쟁취라는 사회적 파급효과를 낳았다. 



멕시코의 세 기자는 마약 조직을 취재하다 그 조직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플라스틱 가방에 담겨진 채 발견됐다.


  일반적으로 기득권의 부패에 저항했던 기자들의 구명 운동은 사회의 폭넓은 공감을 얻지 못해왔다. 적확히 말하면,

대중은 무관심을 택했다. 기자정신을 좇아 취재에 성공했을 때의 보상에 비해 억압받는 비용이 큰 경우도 한 두번이 

아니다. 별 중요하게들 생각지도 않는 건설사 비리를 한 기자가 폭로해 대중은 '그렇구나'하고 넘어갈 때, 건설사 측은

실제로 '죽일듯이' 기자를 겁박한다. 이런 경우가 한 두번 반복되면 내 몸을 챙기게 되는 건 자연의 이치다. 나를 포함해

설령 당신이라 한들 특별한 사정이 있진 않을 것이다.


  기자 정신을 간택해 나가긴 어려워졌다. 생존을 하려면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던 옛 시절에 비해 요즘은 '조금만' 

걸어도 내 몸, 내 가정 하나 쯤은 충분히 부양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자 정신이 다 뭐냐, 그보다 층위가

낮은 직업 의식조차 찾기 힘들다. 앤더슨 쿠퍼같은 존경받는 기자는, 내가 아는 한 없다. 반면 까이는 기자는 좀 과장하면

하루 한 명씩은 나온다.  



기아 비극의 참상을 누구보다 잘 알려주는 이 사진(퓰리처상 수상,1994)은 케빈 카터에 의해 촬영됐다. 

그러나 케빈 카터는 왜 아이를 구하기 전에 사진부터 찍었냐는 비판에 직면했고 언제나 기아 문제를 고민하며

마음아파해 하던 그는 결국 죽음을 택했다. 한 개인의 최선이 대중의 최선과 항상 일치하진 않는다.



  요즘 뉴스 댓글은 '기자 까기'가 스포츠 비슷한 양상이다. 기사의 질이 낮고 틀린 정보가 부지기수라는 말이다. 오보의 

수가 셀 수 없이 많다. 매체가 다변화되면서 인터넷, 모바일 등 여러 별의별 언론들이 나와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친구들이

있는데 사정은 주류라고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최다발행부수 일간지가 피의자 사진을 바꿔 내는 결정적 오보를 낸 뒤 보상

등 모든 책임을 지겠다 공언했지만 그 피해자는 무책임한 언론사의 수습 행위를 질타하며 소송을 준비 중이다. 추석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 기자는 폭행 사건을 보도하며 한 개그맨을 사회의 쓰레기로 만들어버렸다. 해당 개그맨과 부인이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지만 이미 기자에 의해 만들어진 '쓰레기' 이미지는 결코 쉽게 희석되지 않는다.


  학생 시절 책을 읽으며, 펜을 잡으며 몇날 며칠을 밤새 했던 그 고민, '어떤 기자가 될 것인가' '어떤 기자 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를  반문하며 채찍질했던 지난 날의 절박함과 그 거창한 사명감이 요즘처럼 흔들린 적이 없었다. '특종은 우연이든, 의지에 의해서든 끈질긴 노력과 남다른 예측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선배의 말은 내게 경전이기보다 부끄러움을 들게 하는 반추 역할을 한다. 직업의식이 존재한 다음에야 기자 정신도 성립된다. 직업 의식도 지킬 수 없을 거라면, 기자 정신은 집어 치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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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토미핸슨 | 작성시간 12.10.03 네, 복합적인 일이고 팩트만 남은 사건이지요. 잘못된 정보라고 한 부분은 제 실수입니다.하지만 제논님이 쓰신 글에서도 댓글의 부가 설명이 없었으면 마치 사진 하나 잘못 찍어 순교한 기자로 계속 남았겠지요 그리고 링크 된 글의 중간 제목에 <“비판이 일었다. 결국…목숨을 끊었다”가 결정적인 논리적 비약> 이란 문장이 있는데 님이 쓰신 글도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원인을 단정지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사실 누구도 알 수 없죠. 그렇다면 인용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구요.특히 주제가 기자정신을 말하는 것이었다면 더욱 말이죠.
  • 작성자토미핸슨 | 작성시간 12.10.03 마치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 같은 제 첫 댓글이 너무 공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 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Zeno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0.03 제 글의 주제의식과 관련된 부분이기에 상술하지 않을 수 없네요. "1994년 4월에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으나 비판과 비난은 계속 이어졌다. 두 달 후에 케빈 카터는 유서를 남긴 채 차 안에서 배기가스를 연결해 자살했다" 이 대목은 핸슨님이 인용하신 그 기자가 직접 쓴 문장입니다. 제가 쓴 문장도 이 문장과 동일한 구조이고요. "A라는 일이 일어났고 얼마 후 B라는 일이 일어났다"라는 문장은 기사에서 강력한 인과관계를 주장하지 않지만 개연성을 드러내고 싶을 때 흔히 쓰는 문장입니다. 예를 들면 "성수대교 사고로 딸을 잃은 A씨는 연신 술에 취해 지냈다. 이후 그는 죽음을 택했다"라는 식이죠
  • 답댓글 작성자Zeno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0.03 외국의 칼럼, 사설, 더군다나 케빈 카터를 잘못 인용하는 세태를 지적한 (핸슨님이 인용하신) 비판글조차 팩트를 나란히 기술한 것이고 관련 문헌을 찾아봐도 카터는 친구에게 죽기 전 사진 관련해 괴로움을 토했다는 내용 등이 나옵니다. 저 개인적으로, 어떻게 저 대목이 '사진 하나 잘못 찍어 순교한 기자'로 과장될 수 있는지 의아하네요. 'A때문에 B가 일어났다'와 'A가 일어났고 이어 B가 일어났다'는 결코 동일하지 않습니다. 복합적인 이유를 다 기술해야 팩트 A, B를 나란히 기술할 수 있다면 본문에 언급한 정범태, 김주언 기자 일도 언급할 수 없고 인용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Zeno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0.03 4.19혁명의 도화선, 언론 자유 쟁취가 저 둘 때문에 일어난 것만은 아니니까요. 핸슨 님이 팩트 관련 부가 설명해주신 것은 읽는 독자들이 사안을 좀 더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이고 고마운 일이지만 저의 글을 '흔히들 오해해서 쓰는 인용구' 취급하며 쉽게 잘못된 정보라고 단정하신 부분은 나름의 국내외 팩트 체크를 했던 저로선 아쉬운 부분입니다. 글쓰는 입장에서 그런 부가 설명을 다 첨부하면 그건 글이 아니라 부가설명이 본문보다 훨씬 긴 주석 백과사전밖에 되지 않습니다. 4.19 혁명의 원인, 케빈 카터의 전 생애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것은 제 글의 주제의식에도 맞지 않고요. 답변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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