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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 야 기 들

참 오랜만이다.

작성자파괴마왕|작성시간12.11.10|조회수1,659 목록 댓글 5

가입한 지 10년을 채우네요. 오랜만에 들어오기도 했고요.

 

한 번도 이 카페 이름을 신경써서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새삼스럽네요. 아 나도 언론인을 꿈꿨구나, 그랬었지. 참 예뻐요. 꿈꾸는 카페라. 그렇게 난 꿈만 꿨구나. 너무 오랫동안 꾼 꿈이라 이젠 낯설군요.

 

고교 졸업자의 90%, 대학 졸업자의 95%가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 채 교문을 나선다고 당시 언론에서 봤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래서 전 참 뿌듯했어요. 중학생 무렵부터 제 꿈은 한결같이 언론인이었거든요. 친구들도 부러워했었고, 직언을 서슴치 않는 주변인마저도 언론인과 꽤 적합한 성품이라며 적성을 확인시켜주었죠.

 

사람이든 법인이든 내가 내민 사랑을 거절당한 경험이 평생 없어서 MBC의 오늘날의 모습이 반가운 건지도 몰라요. 아, 나 저 곳에 들어갔어도 퇴사당했거나 신천교육대에서 유예된 생활을 하고 있겠구나.

 

고지식하게 KBS와 MBC만 쓴 게 패착의 이유 중 하나겠죠. 형법에 '인식있는 과실' 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설마 떨어지지 않겠지. 다른 직업을 가질 리가 없어! 인생을 만지고, 걷고, 숨쉬고, 좌절하는 어느 순간순간 단 한 번도 언론밖의 세상을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더란 말입니다. '과실'이 맞아요. 그래서 형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의 일선에서 탐욕의 상징이라 비판했던 은행원이 돼 영혼없이 여신이네, 대출이네, 결산이네 챗바퀴를 돌듯 살고 있습니다.

 

서른을 넘기고 보니, 인생은 호기심 때문에 산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리포팅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불편하고, 내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검은 경제가 자기들 밥그릇을 과하게 넘지 못하게 하며, 위정자들이 위선일지언정 고개숙여 대국민사과를 하는 모습을 그려보는 호기심에 그해가, 다음 해가, 2020년이 궁금했어요. 지금은 그저 선동렬, 이순철 사단이 과연 어떤 성적을 낼까, 찬호형님은 그냥 해외리그에서 마무리하는 게 더 멋있었을 것 같다, 현진이가 내년에 20승 했으면 좋겠다. 너무 평범해서 졸릴 것 같은 호기심만 간직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제 막 가입하신 분들,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품위유지업종 중 하나로 여겨 이 곳에 들어오신 분들은 상관없지만, 저처럼 평생 이 길만 바라보신 분들. 다른 바닥에선 준비기간동안 소홀했던 인맥은 취업과 동시에 복구가 가능합니다. 연락하고 만나면 되니까요. 허나 이 길에서 이탈한 분들은 간절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복구가 어렵습니다. 느슨해진 인맥보다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제가 그러하고, 이 길에서 만나 지음이라 여기는 많은 그/그녀들이 그랬습니다.

 

하물며 연애/결혼 또한 자존감 회복을 전제로 가능한 일일 따름입니다. 경제양극화가 삼포세대를 양산했다면 언론인을 꿈꾸다 실패한 이들에겐 더 많은 걸 포기하게 합니다.

 

그 열정 가득하고 치열했던 20대가 무색할 정도로 무표정하고 무심한 아저씨가 모니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넋 나간 푸념이지만, 이 글을 보는 10대, 20대 초의 친구들이 10년 후에 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았으면 해요.

 

어두운 하늘, 별안간 외계인이 침공한다 해도 놀랄 것 없다고 생각하는 서른 초반의 아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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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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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mitiamo | 작성시간 12.11.11 혹시 제가 아는 분인가 해서 놀랬습니다.ㅋㅋ
  • 작성자민들레홀씨 | 작성시간 12.11.11 앞에 마주앉은 듯, 너무너무 진심이 느껴져요. 고마워요. 쭉 가려고요 저. 조금만 더...
  • 작성자1980 | 작성시간 12.11.12 금융은 이론상 현재의 규모 경제를 만들어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 살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고 있어요. 물론 파생의 도가 지나쳐 모든 사람을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지만.. 그곳이 금융계든 언론계든 무관하게 영혼 있는 사람과 영혼 없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혼 있는 금융인/금융 전문가가 되시기 바랄게요(^.^)!
  • 작성자홍준 | 작성시간 12.11.12 이 글을 보고 나니... 세상 일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지금 저는 꿈을 향해 전진하렵니다.왜냐하면 이제는 정말로 후회하고 싶지 않거든요 25년이란 세월을 살면서 '나는 안돼 포기할래' 하고 그만둔 일만 벌써 10번이 넘습니다 그동안의 제 인생은 정말로 거지 같았습니다 이제부터 3년은 기자시험준비에 매진하고 싶고 더이상은 뒤돌아보았을 때 좌절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비록 10년 뒤에 기자가 되지 못하고 다른일을 하고 있더라도 지금만큼은 최소한 3년만큼은 죽도록 열심히 살아보고 싶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결의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작성자sweet_ | 작성시간 12.11.14 공감가는 부분이 참 많은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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