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적당히 똑똑했고, 또 적당히 멍청했다.

[잠시만비공개]

“네가 남고 싶어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정규직으로 남을 수 있어. 좋은 기회도 많이 줄 거고. 그러니까 함부로 그만두지 마.”

6개월 장기인턴 한달 차, 내 자리는 기자직무를 경험해볼 기회도 적은 자리였고 여기서 6개월을 보내는 것보다는 혼자 공채준비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퇴사를 고민했다. 정규직 전환이라, 인턴을 지원할 때부터 그런 조건은 없었기에 전환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다. 6개월 간 기자생활을 체험하면서 용돈벌이나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부장의 그 말은 참 사람을 혹하게 만들었다. 공채합격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작은 회사지만 뭐라도 믿을 구석이 있으면 낫겠다 싶었다. 그만두지 않았다.

정규직 언급이 한번뿐이었으면 그냥 하는 말인가 했을 텐데, 부장은 정규직 전환을 지속적으로 언급했다. 거의 네가 더 좋은 회사에 합격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정규직이라는 식이었다. 사람 마음이 우습다. 그냥 공채를 위한 밑거름을 쌓는 차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 거였지만 막상 정규직 얘기를 들으니 욕심이 생겼다. 정말 기회가 있다면 잡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나는 조금 더 절실해졌고, 조금 더 일에 매달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에 에너지를 쏟았다. 이름만 인턴기자지 다른 직무가 더 많았지만 주어진 부분에서 성과를 냈다. 내 업무성과는 분명히 좋았다. 기자일이 아니었을 뿐.

정규직 얘기가 처음부터 없었으면 전환을 기대하지도, 그들의 평가에 연연하지도 않았을 텐데 막상 그런 얘기를 들으니 모든 일에 연연하게 됐다. 작은 실수에도 가슴이 철렁했고, 작은 칭찬에도 기뻤다. 100% 믿을 수 있는 말은 아닐 거란 생각을 못했던 건 아니다. 그걸 어떻게 부장이 해줘요하고 웃어넘기면 항상 그건 걱정 말라고 했다. 정규직 얘기를 처음부터 안 했으면 지속적인 정규직 전환 언급이 근거 없는 이야기였음을 깨달은 요즘 이렇게 속이 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 부서에서 애초부터 기회는 없었다.

불평을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아주 당연히 사기진작 차원에서 한 말을 멍청한 내가 마음 한 켠으로 믿어서 그런 거다. 내가 그만두면 귀찮으니까, 기자직무가 아닌데도 적당히 잘 해낼만한 사람을 다시 찾는 건 그들에게도 하나의 비용이니까 비용절감 차원에서 정규직 얘기를 했던 걸까? 6개월간 나를 충실한 인턴사원으로 묶어두려고? 이제 와서 인턴을 연장해라? 경험상 9시에서 6시까지 일하면서도 공채준비는 충분히 잘할 수 있고 전업 고시생을 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은 없다? 왠지 인턴을 시작하기 전보다 더 자신감을 잃고 갈 길이 막막해진 기분이다. 나 말고 다른 누구를 탓하기도, 명확히 뭐가 문제라고 말하기도 힘든 요즈음의 우울.

결국엔 내가 공채에 자신이 없어 그런 형태의 채용에 매달리게 된거고, 사리판단없이 적당히 부장님 말을 믿어버린 것이니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는 거지만 넋두리 하고 싶은 마음 ㅠ_ㅠ 부장님...첨부터 그런 말씀 안하셨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살포시 원망해봅니다 ㅠㅠ 명시되지 않은 전환은 흔한 격려나 사기진작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장기인턴 지원자분들을 아셔야 할 것 같구요. 물론 정말 기회가 생길 확률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정부가 인턴 월급의 절반을 지원한 자리일 확률도 많고. 요새 월급 100만원대 전후의 장기인턴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든 기분입니다. 결국 회사에겐 인턴도 잉여인력이 아니라 어차피 뽑아야할 필요한 인력인 경우가 많거든요...

[머먹고살지]

부장한테 충분히 불만을 얘기할 수 있는 상황 아닌가요? 정말 짜증이 솟구치네요.

[하루는]

사기진작 차원이라도 그런 말은 해서 안 되는거죠. 갑질 쩌네요. 님 토닥토닥

[곰냥]

토닥토닥...

[cs1131]

블랙리스트 만들어야

[트리처럼]

제 심정같네요 저는 대표가 직접 인턴뗏다고 하고 그달부터 월급도 다른 정직과 같았는데 이직하려고 경력증명서 떼러갔더니 떡하니 인턴기자라고ㅋㅋ담당자한태 물어보니 일 열심히해서 월급 올려준거라며 넌 인턴이라고^^^^^^^^^^^^^^^^^^^^^^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