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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이별을 위한 실천적 지침들 : 미련을 버리는 일에 관하여

작성자갈라파고스군|작성시간13.11.28|조회수2,140 목록 댓글 13




이별은 괴롭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매몰차게 당신을 밀어낸 그 사람에게도 어쩌면 그럴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끝내 누군가를 외면해버린 당신에게도, 밤이면 문을 두드리는 고독과 미련이 한동안은 낯설 것이다.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하다 보면 이별의 고통을 견뎌내는 자신만의 방식을 체득하게 된다. 술에 취해 잊고, 친한 친구에게 위로받는다. 카카오톡 프로필과 상태 메시지를 바꿔놓고, 페이스북과 싸이월드 메인도 갈아치운다. 때로 일에 몰두하고, 잡생각이 들지 않도록 몸을 혹사시킨다. 그리고 천천히. 다른 사랑을 찾는다. 우리는 흔히 그렇게 이별한다.

실은 이별은 통시적 사건이다. 이별은 점찍을 수 없는 연속적 일상을 버텨내는 과정 안에서 겨우 완성된다. 이별은 싱글매치로 결정되지 않는 승부이며 차라리 패넌트레이스에 가깝다. 당신의 뇌리에 남은 이별의 순간은 그토록 사랑했던 누군가가 담담히 꺼낸 이별의 첫 마디. 혹은 오후 볕이 내리쬐는 카페 한 구석에서 무정히 식어가던 커피 한 잔. 누군가의 눈물과 울부짖음, 이 모든것을 외면하며 돌아선 곧게 뻗은 등줄기로 기억될 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장면들은 이별의 시작일 뿐이다. 본 게임은 뒤에 찾아온다. 어느 늦은 밤 당신은 이미 기억에서 지웠다고 생각했던 그의 전화번호를 되누를 지 모른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그녀와의 추억에 발걸음을 멈추고 한 동안 욱신거리는 가슴을 짓누를지 모른다. 당신은 아직 이별하는 중이다.

유행가. 영화와 드라마. 잡지와 소설. 사랑으로 충만한 통속적 자극의 홍수 속에서 더 이상 그, 또는 그녀를 떠올리지 않게 될 무렵. 당신은 겨우 이별했다. 그 때 까지 당신의 삶은 여전히 지리하고 고통스러운 이별의 도상에 있다. 이별을 빨리 완성하느냐 마느냐는 몇 가지 변수들에 따라 결정되곤 한다. 두 사람이 얼마나 오랜 기간 만나왔는지. 당신을 위로할 친구나 가족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새로 사랑할 사람이 금방 나타나는지, 등등. 하지만 가장 큰 변수는 미련이다. 당신은 여전히, 그 사람을 원하고 있는가. 미련을 버리지 않고는 다시 시작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별이라는 긴 여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면 가장 먼저 미련을 버려야 한다.

미련의 본질은 '앞으로 이만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이토록 마음이 잘 맞고, 나를 잘 이해하며, 내 욕심에 부합하는 상대. 함께 있는 일이 이토록 편하고 즐겁고 행복한 그런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이별을 건강하게 완수하려면 이러한 미련이 모순됨을 받아들여야 한다. 바로 그 사람이, 당신이 이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모든 헤어짐에는 이유가 있다. 성격 차이건, 금전적 문제이건, 가족의 반대건 오해가 겹친 끝에 맞은 파국이건.

행복의 순간은 광속으로 추억이 되어간다. 추억은 기억 안에서 다듬어지고 정제된 결정체다. 간사한 뇌는 고통스러웠던 추억을 풍화시키고, 행복했던 순간만들이 남아 점차 미화된다. 이별의 과정에서 옛 일을 자주 반추하는 일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 사람과 만나고 사랑에 빠질수 밖에 없었던 이유보다, 이별이라는 필연에 직면하게된 이유에 집중해야 한다.

다른 모순도 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고, 어쩌면 지금도 사랑하고 있을 그 사람은, 더 이상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장이 바뀌어도 문제는 같다. 당신은 그 사람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이별하기로 결심했다. 당분간은 서로가 곁에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별을 결심하게 만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곪아 갈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연인은 차라리 곪은 조직을 도려내는 편을 택했다. 생채기에서 피가 멎고 딱지가 앉을 동안 고통스럽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각자의 인생에서 발라내고 나서야 살 것 같아서였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있지만 연인 관계를 잇자면 두 사람 모두의 마음이 필요하다.

미련은 일상을 병들게 한다. 이제는 내 손을 떠나버린 관계를 더 어찌 해 보려 해도 가시덤불 안에서 헤엄치는 일이나 다름 없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도 가시만 더 깊숙히 몸에 박혀 다치고 피 흘릴 뿐이다. 덤불을 벗어던지듯 미련을 버려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이별은 서로를 위한 최선이었음을 믿자. 혹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먼저 말하라. 다시 시작하자고. 물론. 거절당할 위험은 감수해야 하겠지만. 단, 그런 뒤 당신의 이별은 조금 더 연장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덧. 일전에 이별을 겪다 너무 힘들어 기분 정리할 겸 썼던 글입니다. 위로가 되실런지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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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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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여진구진짜.. | 작성시간 13.12.25 글 멋있다
  • 작성자rose | 작성시간 14.01.02 글 공감되요~이별한지 얼마안되서 그런지 처음 보고는 눈물도 쪼금 났어요 그 이후로도 가끔 와서 이 글 봐요~꼭 그 후의 어떻게 다시 전개되느냐보다는 이별의 원인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게 힘든 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좋은것 같아요. 새해가 되어서 슬픔은 졸업하렵니다.
  • 작성자인중을 긁적거리며 | 작성시간 14.09.25 잘 읽었습니다. 모든 사랑은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 떠오르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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