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서포터즈]리뷰 - 파스카
김상민
(출처: http://blog.naver.com/gcinelove/220176710743)
종편을 보던 동생이 웃으며 말했다.‘불륜만 다루면 무조건 시청률이 뛰는 게 현실이야’라고.
맞는 말일까? 텔레비전 드라마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거 같다. 일단 불륜 드라마라는 걸 대대적으로 알리고, 불륜 코드도 과장되게 넣는다. 나이차가 20살 넘게 나는 남녀의 사랑이라든지. 이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런 것을 좋아하는 시청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재미만 있으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호흡 한 번하고 생각 좀 해보자. 금지된 사랑이 불륜만 있는가? 모든 사랑을 칼로 무 베듯 한 번에 재단할 수 있을까? 사랑은 굉장히 주관적인 감정인 탓에 당사자가 아무리 절박하게 얘기해도 제3자는 공감하기 힘든 게 사실인데.
이런 문제의식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영화가 있다. 파스카다. 40대 여자가 20년 연하의 남자와 사랑하는 이야기다. 물론 가족들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집에서 냄새나는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보기 싫은데, 19살 차이나는 애인이라니. 누가 봐도 혀를 찰 노릇인데, 가족은 오죽할까. 자칫 자극적이고 삼류 스캔들로 흐를 위험성이 큰 영화를 감독은 살려낸다.
두 사람이 사랑을 이루려면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너무 많다. 그 과정에서 지치고 상처입고 결국 파국을 맞을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에게 감독은 힘을 준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잃을까 봐 두려워. 맞서 싸워야 할 게 너무 많은데”라고 남자 주인공이 절규를 할 때 관객의 마음에는 파도가 친다.
이들처럼 치열하게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면, 사랑을 쉽게 말하지 못하리라. 이해인 수녀는 시를 통해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새하얀 민들레’라고 했다. 겉만 보면 새하얗고 평화롭지만, 속내는 그렇지 못하다. 가시덤불을 이겨내려고 온 몸에 상처를 입었음이 분명하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다.인드밴드를 다룬 영화를 보면, 생활 터전을 지키려고 음악에 더 몰두하는 뮤지션들을 통해 삶의 고통과 무분별한 자본의 논리가 어떻게 삶을 황폐화하는지를 알 수 있다.
파스카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결코 쉽게, 한 순간에 오는 게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주인공들의 정서가 삭막하지는 않다. 아픈 고양이를 보살피고, 자신들도 어렵지만 고양이를 위해 모든 정성을 다 쏟는다. ‘지 할 일이나 잘하지, 참 별 걸 다 신경 쓴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고양이를 볼 때 주인공들이 어떻게 변하는 지를 보라.
자신보다 더 어려운, 한낱 외로운 들짐승에게 애정 어린 눈을 주고, 정성을 쏟을 때 두 사람의 얼굴에는 꽃이 핀다. 그 꽃으로 벌과 나비가 날아들어 꿀을 뿌린다. 그렇다고 받아들이기 힘든 사랑을 억지로 관객들이 이해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냥 지켜보라고, 추운 겨울날 아무 말 없이, 웅크리고 있는 둘을 보다보면 뭔가 느껴지는 게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양이와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고, 성장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관객은 어느새 머릿속에 박혀있던 불륜이라는 선입견을 다시 보게 만든다. 세상이 모든 사랑을 불륜과 불륜이 아닌 것으로 재단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맞지 않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용기를 넣어주는 영화다.
연극 연출로 시작했던 감독은 문제의식이 깊고 진하다. 실존적이며, 늘 본질적인 것을 깊이 들여다보는 점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으로 자기만의 확실한 색깔을 지닌 여성감독이 되는 것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