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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 야 기 들

[G서포터즈]리뷰4월-화장

작성자구분칠초간의고민|작성시간15.04.10|조회수315 목록 댓글 0

 



(출처 : http://blog.naver.com/gcinelove/220323962260)



부산영화제에서 화장을 보고 시사회에서 다시 봤는데, 남자주인공이 대사 없이 무표정하게 있는 컷의 길이가 이전보다 길어진 것 같았다. 감독은 이를 통해 세월을 드러내려고 했을까? 임권택 감독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거는 아니에요”

시사회에 모은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사회를 보던 정성일 평론가도 웃으면 한마디 거들었다. “관객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그것은 안성기라는 배우가 주는 힘입니다. 저는 사실 이전에는 안성기라는 배우가 대단히 모범적이고 성실한 배우지만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화장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나는 궁금했다.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감독은 ‘팔십 노인이 보는 사랑과 세월이라는 점을 영화를 보면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팔십 노인이 보는 사랑은 뭔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는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안성기라는 배우를 통해 그것을 드러내려 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죽어가는 아내를 옆에 두고도 다른 여자와 사랑을 꿈꾸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다. 잘못하면 남자주인공이 꿈꾸는 사랑이 추악하게 보일 확률이 크다. 또 관객이 그런 남자를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것을 잘 표현하려면 성실하고 모범적인 이미지를 가진 남성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영화의 기본 축이 무너지고 만다. 안성기라는 배우가  국민들에게 주는 이미지가 바로 그런 것이다. 

가정에 충실한 성실하고 신뢰감 있는 가장이 어느 날 다른 여자와 사랑을 꿈꾼다는 것을 통해 추은주를 보는 시선이 외설스럽지 않게 만들었다. 잘못하면 흔한 불륜드라마로 흐를 수 있는 스토리에 피와 살이 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만큼 화장은 배우의 연기가 빛나는 영화다. 

죽어가는 아내를 목욕시키는 씬이 특히 그렇다. 감독 스스로도 “내가 102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아름다운 씬이다”는 말을 할 정도다. 사실 나는 아름답다기 보다는 처절했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아내와 어떻게든 아내를 편하게 해주려는 남편이 마주한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사실 원래 이 장면은 여자 배우가 상반신만 드러낸 채 촬영을 했다. 촬영한 것을 보고 나서 감독은 여배우에게 말했다. “지금 찍은 것은 우리 영화에 잘 안 맞고, 주인공들의 감정에도 맞지 않다”며 여배우에게 용기를 내 줄 것을 부탁했다. 며칠 후 여배우는 다시 찍자고 했다.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찍은 이유가 무엇일까?

감독은 “이 영화에는 현실과 환상이 나온다. 현실 부분이 정교하지 않으면 환상 부분이 엉성할 수밖에 없고 관객들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고 했다. 즉 이 씬은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그래서 화장을 보고나면 서늘한 동시에 따뜻하다. 

주인공에게는 화장품 기업에 들어온 미모의 젊은 여사원과 죽음을 눈앞에 둔 아내가 있다.  아내는 이처럼 반대되는 삶의 다양한 층위를 관객 앞에 몸으로 드러낸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가 결혼하는 날 일부러 지방출장을 간다.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전화를 해 아내를 돌보던 처제에게 아내가 어떤지를 묻는다. 괜찮다고 한다. 남편이 곁에 있을 때 아내는 쉬지 않고 발작을 했고, 구토를 했었다.  남편이 있어서 더 병이 안 좋아진 걸까. 아니면 남편에게 더 의지하고 싶었을까. 남편은 묵묵히 아내의 몸을 정성스럽게 닦아내고 기저귀를 갈았다. 

그런 아내도 남편의 외도에 마음이 상한다. 남편이 병실에 남겨둔 와인을 마신다. 아내는 와인이 남편이 사랑하는 추은주가 사준 것임을 알고 있었을까. 죽어가는 몸이지만 아내는 알고 있었다. 술기운이 오르자 아내는 “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지”라고 소리친다. 

그게 아니라고 남편은 항변하지만, 남편 스스르도 그런 상황이 힘들다. 이런 삶의 모순된 결들을 드러내는 영화가 바로 화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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