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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 야 기 들

평범한 보통 기자의 하루 일과

작성자1980|작성시간16.12.16|조회수9,620 목록 댓글 16

*안녕하세요. 평화로운 뒷이야기들 게시판지기임다. 기자밥 먹고 있는 만큼 앞으로 언론 관련 구직자에 도움이 될 지도 아닐 지도 모르는 소소한 주위 얘기 틈틈이 올리려 해요.

여러분도 궁금한 거, 짜증나는 일, 좋은 이야기 있음 공유해 보아용. 아는 거 있음, 아니 모르는 거라도, 댓글 한줄 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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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뉴스타파나 디스패치 같은 데 말고, 그냥 평범한 보통 기자의 하루 일과에 대해 얘기할까 해요.

구직자나 기자 초년생이 많은 이곳 특성상 기자의 일과라면 대부분 노동법 위반 요소가 다분한 수습 기자 때의 사회부 생활을 떠올리게 마련인데요. 아니면, 방송기자? 역사의 현장에서 리포트하는 건 제가 봐도 멋있죠.

(최근에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자백'이란 뉴스타파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는데ㄷㄷ. 이게 진짜 기자인가..란 생각을..)

그런데 늘 그렇듯 현실은 다르죠. 기자라고 해도 맡은 분야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회사나 처한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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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전부터 국제부가 된 저는 아침 7시까지 출근해요. 새벽 6시엔 집에서 나와야 해요. (택시타도 6시 반 이전엔..) 늦잠으론 남부럽지 않은 탓에 매일 전쟁임다.

매주 2회 간밤 국제 경제 소식을 전하는 무슨 아침 생방송을 하는데 그땐 무려 새벽 6시까지 방송 원고를 마감해야 해요. 4시엔 일어나 준비해야 해요. 죽었다 깨나도 5시엔 일어나야 해요. 끔찍하쥬. 원랜 글쟁인데 회사에서 방송하라고 시켜요. 죽을맛.

방송 없는 날은 오전 7시부터 출근해 인터넷으로 외국 신문을 들여다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니 파이낸셜타임스니 뭐 이런 게 많아요.

국제부는 기본적으로 외국 뉴스를 한국에 전하는 게 본업이니만큼 빨리 읽고 아침부터 우다다다 기사를 써요.

유럽은 대략 8시간 미국은 16시간 빠르다보니 아침 7시면 유럽, 미국에선 이미 기사가 쏟아져 있어요.

급한 거, 중한 거 위주로 체크하면 8시쯤 돼요. 그때부턴 '일보(일일보고)'란 걸 써요.

오전 9시엔 회사 꼰대들끼리 수다를 떠는 편집회의란 게 열리거든요. 저는 우리 꼰대가 회의 때 이야기할 거리, 오늘 뭐가 중한지, 내일 신문에 뭐 쓸지 등등을 일보에 담아 보내요. 꼰대도 기자들 일보 읽을 시간이 필요하니 늦어도 8시 반엔 보내야쥬.

일보 보내고 꼰대 회의 준비하는 시간은 솔직히 좀 빈둥거려요.  막장드라마보다 재밌는 우리나라 정치 뉴스도 뒤적거리고, 소셜 네트워크도 보고, 바람도 쐬고. (이 글도 그때 거의 다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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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는 보통의 기자, 혹은 월급쟁이랑 비슷해요. 외신 모니터 하고, 기사 쓰고.. 오늘 쓰기로 한 거, 꼰대가 강조한 것들 내용 좀 더 뒤져보고.

꼰대들은 지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지면에 들어가기로 한 주요 기사는 가급적 오전에 써두는 게 좋아요. 지면용 기사는 오후 3~4시 마감인데 모든 꼰대들은 2시부터 닦달하거든요. 저는 졸음이 올 때고..

그러다보면 오전이 후딱 가요. 정오만 되도 하루가 다 간 것 같아요. 빠를 땐 새벽 4시, 늦어도 7시부터 업무를 시작하다보니 실제로 꽤 지쳐요.

점심시간은 11시반~1시반 사이. 유동성은 있어요. 언론사는 마감이 빡빡한 대신 점심시간은 덜 빡빡한 것 같아요. 대부분. 일 많으면 사무실에서 대충 때우고 일 없을 땐 밥도 먹고 커피도 먹고 수다도 떨고.

요샌 '혼밥(혼자 먹는 밥)'을 즐겨요.

꽤 오래도록 밖을 쏘다니며 사람 만나는 부서에서 일했어요. 그러다보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참 소중한 것 같아요. 물론 약속이 잡히면 반가운, 고마운 얼굴 보지만요. (주 2~3회꼴, 혼밥도 주 2~3회) 한달에 한두번은 밥 대신 사우나에 가는 여유도ㅎㅎ

1시반쯤 돌아와 5시 퇴근까지는 졸음과 싸우며 기사를 마감해요. 의욕 갖고 좋은 기사 많이 쓰자고 마음 먹으면 정말 바빠요. 필 받는 날은 달리고, 아닌 날은 좀 느슨하게..

5시쯤 퇴근이니 좋지 않냐고요? 저녁 있는 삶 아니냐고요? 그렇진 않더라고요. 4~5시에 일어나서 일 달리다보니 6시쯤 집에 오면 벌써부터 졸려요. 실제 9~10시면 뻗더라고요. 가끔 약속이 있거나 해서 자정 넘어서까지 안 잘 때도 있기는 한데 다음날 고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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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국제부여서 국제부 일과를 얘기했지만 다른 기자들의 일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시간과 형태와 형식만 다를 뿐.

이곳보다 좀 더 큰 언론사, 방송사, 주간지, 뉴스타파 같은 곳은 하나의 아이템으로 며칠, 몇주, 몇달씩 심층취재하기도 하겠지만, 대개의 기자는 매일 할 일 -지면을 막고 일상적 발생기사 커버하고- 하면서 짬짬이 심층취재해요. 정신없쥬.

취재를 끝내지 못해 묵혀둔 아이템이, 당장 급한 일에 쫒겨, 귀찮아서, 타이밍 놓쳐서 끝끝내 빛을 보지 못하는 일도 많은 것 같아요. (대부분인가?ㅎㅎ)

취재와 기사에 의욕을 가지자면 한도끝도 없어요. 그래도 솔직히 언론정의고 나발이고 직장인이기에, 휴식도, 자기 시간도 필요해요. 그렇다보니 적정 선에서 타협하기 마련이에요. 그게 맞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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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보통의 직장인'과 크게 다를 거 없죠?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죠 뭐.

좀 다른 게 있다면, 업무 시간이 좀 달라요. 계속 바뀌기도 해요. 저 같은 일간지 기자는 일요일에도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월요일에 신문이 나오니까요. 그럼 금요일에 쉬냐? 그렇지도 않아요. 금요일엔 남들 다 일하고 사건도 생기니 금요일에도 취재해야죠. 토요일에도 무슨 일이 생길 지 알 수 없죠. 그러다보니 저 같은 경우 사실상 6.5일씩 일했던 것 같아요.

국제부에 와보니 한주씩 번갈아가며 금토를 쉬던가 토일을 쉬던가 해요. 난생 처음 온전한 주5일제(당직 빼고)를 하는데 신통방통하네요. 그래도 직장인과 주간 바이오리듬이 다른 건 매한가지죠.

불편한 건 있어요. 주말에 친구들과 1박2일 놀러가려고 해도 이것저것 조정해야 해요. 그래도 사실 넓게 보면 월~금 일하는 '보통의 직장인'이 그렇게 많지는 않더라고요. 다들 그렇게 사는 거죠.

방송기자도 다르진 않아요. 아나운서나 PD는 더 그렇고. 9시 뉴스 기자가 생방송 잡혔으면 10시까지는 사실상 일해야겠죠? 큰 사건 터지면 갑자기 출동도 해야겠죠? 이게 멋져보일 수도 있지만 가족 생기고 뭐 하고 하다보면 참 끔찍한 일이기도 해요.

제가 7시 출근이 빠르다고 불평하는데 제가 하는 방송의 PD는 6시까지 출근이에요ㄷㄷ 또 드라마PD 동생을 보면 뭐 밤낮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또 아나운서 분은 제가 7시에 와보면 이미 화장 다 하시고 원고 외고 계시더라고요. 방송은 거짓부렁이고 내용도 없다고 비하해 왔는데, 방송이란 걸 경험하고나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누가 더 빡시네 다투는 건 별 의미는 없을 것 같고요, 그냥 직업이 그런 거죠. 하다 보면 다 익숙해지더라고요.

다만, 기자는 늘 현장에서 뛰어야 하고, 24시간 경찰서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고, 수습기자는 인권이고 나발이고 없고, 이런 걸 언론정의랍시고 당연시 여기는 건 이제 좀 없어져야지 않나 싶어요. 열정페이니 뭐니 지적질이란 지적질은 다 해 놓고 정작 지네들이 '열정페이'를 강요해서 되겠어요?ㅎㅎ


ps. 벌써 오후 세시 다 돼 가네요. 방금 졸음과 사투하며 지면용 마감했는데 여러분도 이거 보구 잠 좀 깨셨으면 이제 공부(일) 마지막 스퍼트 달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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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비각 | 작성시간 17.01.09 ㅋㅋㅋ 꾸르잼잼잼
  • 작성자Onward | 작성시간 17.01.10 감사합니다! 현직에 계신 분이 해주시는 말씀이라 그런지 더욱 재미있네요!
  • 작성자네맘에들때까지 | 작성시간 17.02.02 이런 현직 선배님의 글 너무 좋아요~ 정말 잘봤습니다! :)
  • 작성자그너머에 | 작성시간 17.02.14 공감도 되고 (특히 꼰대들의 아침 회의 ㅋㅋㅋ) 재밌게 읽었습니다^^ ㅋㅋ 담에 또 올려주세요 ㅎ
  • 작성자imseoyeonn | 작성시간 18.01.31 ㅋㅋㅋㅋㅋㅋ 우리 꼰대라니ㅋㅋ 귀엽네요.. 주말근무나 야근하면 수당은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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