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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 야 기 들

개인 맞춤형 뉴스 어때요?

작성자1980|작성시간17.10.02|조회수2,911 목록 댓글 4

기자 생활 만 9년2개월. 얼추 10년.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이 업종을 관통하는 가장 큰 변화는 독자.시청자가 뉴스를 접하는 방식이 종이신문, 지상파 TV에서 온라인.모바일로 옮겨간 게 아닌가 싶어요. 제 또래, 특히 비 언론관련직군에 있는 지인은 더 이상 신문을 보지 않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저녁 8~9시 뉴스를 보지 않아요.


그런데 반대로 종이신문이나 지상파TV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합니다. 제가 기자생활을 시작한 2008년은 이미 온라인.모바일화가 엄청나게 진행된 시점이었거든요. 매년 신문.TV 시장은 망할 거란 얘기를 하곤 했어요. 물론 그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줄었지만 여전히 일정 부분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콘텐츠를 만드는 기자로선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같은 콘텐츠라도 무엇을 통해 보여지느냐에 따라 만드는 방법도 달라져야 하거든요. PC로 보는 온라인 기사를 만들어야 할지, 스마트폰으로 보는 모바일 기사를 만들어야 할지, 종이신문으로 읽히는 기사를 만들어야 할지, TV 9시뉴스로 보는 정제된 기사, 유튜브.팟캐스트로 보는 거칠지만 깊은 기사.. 어떤 곳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어려워요. 회사에선 다 하라는데, 말이 쉽지 그게 되나요.. 이것 저것 다 맞추려다보면 죽도 밥도 안되는 똥덩어리가 될 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묻습니다. '넌 어떻게 뉴스를 접하냐'고. 기자로서 제 최대 관심사는 사람들이 어디를 통해 어떤 뉴스를 접하느냐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의 결론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 독자.시청자가 파편화했다는 것입니다.


일단 사람들이 어떻게 뉴스를 접하는지를 한번 보죠. 어제 술자리에서 들은 따끈따끈한 얘기. 30대 서울 직장 여성인 친한 지인은 지면은 물론 더 이상 포털에서도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하네요. 전체 뉴스의 70%는 본인이 매일 들르는 폐쇄형 커뮤니티에서 본다고 합디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이 묶인 곳에서 퍼나르는 뉴스만이 이 사람이 접하는 거의 유일한 세상 소식이 된다는 거죠. 커뮤니티의 유대감 속에 여기서 분류된(sorting) 뉴스만 추려서 보는 거죠. 


60대 부모님은 또 다릅니다. 여전히 신문 두 개 이상을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서 부족한 실시간 뉴스는 틈틈이 보는 지상파 뉴스로 메웁니다. 다음 날이면 또 잘 갈무리한 내일자 신문으로 갈무리합니다. 60대 고령화 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커뮤니티 단톡방. 이곳은 또 다른 뉴스의 소비 창구가 되고 있습니다. 이곳을 통해 링크되는 소식에 대한 신뢰도가 꽤 높더라고요. 다단계라고나 할까요? 지인이 파는 '물건(뉴스)'이라 그런지 많이들 큰 의심없이 수용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뉴스 링크가 됐든 블로그가 됐든 말입니다. '가짜 뉴스'의 온상이 될 법도 했습니다.


여론 주도적인 기자 선후배 중에선 팟캐스트를 즐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디다. 전 사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요. 김어준의 팟캐스트 정도만 알고 있어요. 지상파 라디오를 대체하는 느낌일까요. 여기도 거칠고 여과없는 얘기가 오가지만, 그게 또 '셀링 포인트', 즉 인기의 비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IT 종사자의 뉴스 소비 방식도 또 달랐습니다. 더 이상 수박 겉핥기식의 콘텐츠에 목을 메지 않았습니다. 그 콘텐츠가 어느 경로를 통해서건, 좀 더 전문적이고, 내게 맞는 깊은 정보를 찾아 헤매는 듯했습니다. 온라인 뉴스가 아니라 전문가의 블로그가 이들에겐 더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가 되는 거죠. 지인 간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어떨까요. 언론직군인 만큼 우선은 많은 뉴스를 소화합니다. 지면 비중은 5% 미만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꼰대들은 어떤 기사를 선호하나'를 생각하는 주요 지표가 됩니다. 그런데 실제 관심사는 네이버나 다음 같은 주요 포털이 내민 기사를 위주로 봅니다. PC든 모바일이든. 일부 온라인화한 꼰대들은 기사 역시 포털 맞춤형이 되기를 주문합니다. 깊은 내용보단, 당장의 클릭수를 늘릴 수 있는 그런 콘텐츠. 개인적으론 지면에 목 매는 꼰대보단 낫지만 너무 여기에 치중해도 기자로서의 자긍심에 좀 스크래치가 갈 수 있어요. 속된 말로 '어그로 끄는' 기사, '제목 장사'하고 정작 내용은 없는 기사를 양산하는 방식이니까요. 짧은 기사라도 최소한의 혼은 담고 싶은데.. 어디선가 본 <슬로 뉴스>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플랫폼 같았어요.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뉴스를 많이 접하는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 '친구'가 동종업계에 많다 보니 동종업계 지인이 링크하거나 소개하는 뉴스는 저와의 연관성이 큰 편이더군요. 아주 개인적으론 유튜브도 보기 시작했습니다. 뉴스를 접한다기보다는 시간떼우기 성격이 강하지만, 잘 편집된 유튜브 영상은 흡인력이 있더군요. 뉴스로서도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여튼 플랫폼을 고민하는 기자직군이다보니 여러 경로를 통해 뉴스를 접하지만 제게도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나이, 세대별로 일정한 패턴은 분명 있었습니다. 보통의 미디어라면 여기에 타겟팅이 필요하겠죠. 그러나 전 연령대, 성별, 계층을 넘나드는 공통된 형태는 없어지고 있고, 앞으로 사라자는 속도도 더 빨라질 것 같았습니다. 60~70대를 겨냥했다면 종이신문에 힘을 싣고, 30~50대를 위해선 포털 등을 기반으로 한 PC 온라인 뉴스, 20~30대라면 모바일 기반 온라인 뉴스. 10~20대라면 팟캐스트나 유튜브, SNS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거죠. 어느 것 하나에만 집중해도 특정 소비층만 잡으면 생존할 수 있는 구조.


궁극적으론 개인마다 개인에 맞춘 뉴스를 공급하는 플랫폼이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요즘 인공지능(AI) 관련 얘기가 많은데 AI가 하루에도 수만건에 달하는 뉴스 중 자신의 취향에 맞거나 자신의 관심사에 있는 뉴스를 모아 모아서 전달해준다는 거죠. 당장은 어렵지 않을까 해요. 네이버가 AI를 활용해 이런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는 걸 봤는데 아직 정확도는 높지 않더라고요. 참고 수준이지만 앞으로 계속 발달하겠죠. 제가 최근 유튜브를 즐겨보는 이유도, 유튜브 모회사인 구글이 기존 검색 이력 등을 활용해 제 관심사 관련 영상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필요한 분야의 뉴스를 제 취향에 맞게, 좋은 기사를 중심으롷 잘 정리해 보여준다면, 전 그게 유료라 하더라도 구매할 의향이 있습니다. 커뮤니티를 통해 뉴스를 본다고 한 지인 역시 자신에 필요한 뉴스를 모아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사 볼 의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 돈을 낼 진 모르겠지만요. 홍보업계에선 이를 클리핑(clipping)이라고 해서 고객사에 서비스해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엔 지면 편집자, 데스크, 포털 메인 화면 편집자가 대중이 알아야 할 뉴스, 잘 읽힐 뉴스를 선정해 소개해줬다면, 이젠 본인 스스로가 큰 부담 없이 그런 편집자가 되는 거죠. 과거엔 DJ가 틀어주는 노래를 들었다면, 지금은 멜론에서 스스로 플레이리스트를 지정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대부분은 뉴스 자체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독자 개개인으이 복잡한 선택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클릭과 흐름을 분석해 그에 맞는 기사를 보내주는 '소비자 중심의 혁신'이 있어야겠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기사는 늘 독자를 상정해서 쓰는 콘텐츠이지만, 좀 더 세분화하고 전문화한 콘텐츠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자동차 기사를 쓴다면 과거엔 '차를 사려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기사로 충분히 전문화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BMW를 타다가 벤츠로 갈아타려는 사람'을 위한 기사가 필요한 거죠. 더 세분화하면 BMW 528i를 타다가 벤츠 E300 4매틱을 사려는 사람에게 맞춰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BMW 528i를 타는 40대 남성 독자는 뉴스를 통해 528i의 중고차 가격을 파악하는 동시에 자신의 직장 관련 뉴스를, 본인이 사는 동네의 부동산 동향 등 정보를 받게 한다는 거죠. 그러려면 콘텐츠 역시 BMW 5시리즈 세부 모델별 기사를 따로따로 만들 필요가 있겠죠. 그러려면 빅데이터도 필요할테고요. 과거엔 이런 기사나 콘텐츠를 모아 클리핑하는 건 시간과 돈이 들었지만, AI가 발전할수록 그런 기사를 알아서 선별하는 로직은 발전해 나갈 겁니다. 그런 세분화한 콘텐츠를 만드는 게 문제일 뿐이죠. 그런 콘텐츠도 상당 부분 업무 자동화를 통해 만들어낼 시대가 곧 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개별 기자로서 뭘 준비해야 하느냐.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지식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단 특정 분야에 전문화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또 그 콘텐츠의 경중을 판단할 수 있고, 그걸 누가 읽을지 상정해 플랫폼에 앉힐 수 있는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을 듯해요. 요컨데 개인 맞춤형 뉴스를 만들 수 있는 기자가 돼야 한다는 거죠.


기자지망생 분들께선 다소 먼 미래의, 동떨어진 얘기일 수 있겠지만.. 당장 업계에 진입을 해야 이런 변화에 맞춰가든 도태되든 할 수 있으니까요.. 일단 이쪽 업계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면 누구나 반드시 고민해야 할 주제인 것 같아요. 언론사 대부분은 여전히 뉴스 콘텐츠와 플랫폼의 방향성을 두고 우왕좌왕하고 있으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에 맞는 콘텐츠를 고민해서 회사의 정책에 휩쓸리지 않고 훌륭한 기자, PD, 아나운서로서, 훌륭한 콘텐츠 제공자로서, 활약할 수 있을 테니까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면, 굳이 완고하면서도 미래가 어두운 언론사에 입사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참신한 콘텐츠로 승부하는 것도 정답일 수 있습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언론사 대부분은 낡은 방식을 차용하지만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갖고 중간 플랫폼으로서의 역할, 취재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정도만 더 일하면 충분히 제 몫을 다 하는 50대 기자는 종이신문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도 일평생 잘 먹고살 여지가 있습니다. 30~40대면, PC나 모바일 방식의 인터넷 뉴스만 잘 써도 그 세대의 뉴스 소비 방식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20년 정도는 수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30대는 이 방식만 따라하다간 금새 도태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주위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에 맞춰 본인의 뉴스 전하는 방식도 바꿔나가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맥락없이 주저리주저리 떠들었슴다. 지망생으로선 일단 입사가 중요하겠죠. 그러나 입사 이후에도 불확실한 미래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뉴스를 어떤 방식으로 접하고 있으며, 난 그에 맞춰 어떤 콘텐츠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계속 하고 앞으로도 해야 할 문제일 것 같습니다.


ps. 추석 연휴 당직 중 주절주절.. 즐거운 추석 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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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넬빠 | 작성시간 17.10.02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작성자Pippi | 작성시간 17.10.13 생각해볼만한 주제네요. 물론 먼 얘기겠지만..
  • 작성자행복지금 | 작성시간 17.11.06 뒤늦게 봤지만 정말 염두해둬야 할 얘기라 고맙습니다!!
  • 작성자someon | 작성시간 18.02.06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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