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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이 야 기 들

첫 탈락

작성자👡|작성시간20.08.22|조회수11,943 목록 댓글 9


엄밀히 말하면 첫 탈락은 아닙니다. 

인턴은 서류에서 매번 탈락했으니까요.


언론고시를 준비하겠다고 마음 먹은 건 올해 1월이었습니다. 어느새 준비한지 7개월이 넘었네요. 오래 준비하신 분들은 비웃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전 이 7개월이 참 길게 느껴졌습니다.


PD, 작가, 공기업 준비, 편입 준비 등등.. 끊임없이 방황했습니다. 그래서 2020년 새해엔 내가 잘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꿈을 하나 가져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기자를 선택했습니다. 일단 기자가 멋있었습니다. 남들한테 설명하기에도 그럴듯한 직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글쓰는 거 좋아하니까 한 번 도전해볼만 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다른 건 차차 공부하면서 실력을 쌓자, 그런 안일한 생각이었습니다. 덕분에.. 자기소개서 쓰는 게 참 고역이었습니다. 서류에서 매번 떨어지는 것도 '기자'라는 직종에 대해 막연한 환상만 가지고 덤벼서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덤벼보니 왜 고시라고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좁은 채용 문, 까다로운 채용 절차, 고난이도의 상식시험... 뭐 하나 쉬운 게 없고 뭐 하나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집에선 얼른 공무원 준비하라고 다그치는데, 꿈을 향해 달린다는 이상 말곤 보여드릴 게 아무것도 없으니 마음만 자꾸 조급해졌습니다.


그러다 운이 좋았던 건지 관심있던 언론사 서류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인턴도 떨어지는데 설마 공채가 되겠나 싶어 기대하지 않고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벼락치기로 필기시험을 봤습니다. 시험 문제는 생각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필기복원방 확인해보니 역시나 가망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필기는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합격했습니다. 정신없이 썼던 논작이 변수였나 싶었지만 그런 생각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또 갑자기 현장실무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산 넘어 산이란 게 이런 건가 싶었습니다. 아랑의 각종후기방에서 3,4년 전 후기를 읽어보고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장실무는 상상 이상으로 막막했습니다. 어떻게 취재했는지, 뭘 썼는지 기억도 잘 안 납니다. 뒤로 이어졌던 실무 면접은 더 막막했습니다. 후기방이나 채용사이트를 둘러봐도 뭘 어떻게 하는지, 면접관이 어떤 내용을 물어보는지 년도마다 달랐습니다.(심지어 그것도 15년 이전의 내용들이었습니다.) 면접장에 들어서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졸업하고 제대로 된 회사면접을 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 면접을 본 게 벌써 몇 달이 지났는데도 그때의 제 대답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해집니다. 생각해보면 편하게 입고 오라고해서 편하게 입고 갔는데, 저만 이상한 복장이었던 것도 같고요. 건방진 말투, 고집스런 태도, 엉뚱한 대답.. 저라도 절 안 뽑았을 것 같습니다. 돌아서고 나오는데 왜 그런 이상한 말만 하고 나온건지 후회되더라고요. 심지어 면접 도중 '현장실무에서 상당한 고득점을 받았다'고까지 하셨는데 떨어뜨린 거면 정말 면접이 완전 마이너스였다는 거 아닙니까. 한동안 멘탈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상한 면접태도가 업계에 소문 나서 아예 이 일은 할 수 없게 되는 거 아닌가...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생각은 멈추지 않고 듭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나는 누구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하는가' 등등.. 면접을 잘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원이라도 다녀야하는지도 고민됩니다.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지방에 사니 필기시험 한 번 보러 왔다갔다 하면 교통비로만 10만원이 깨집니다. 이젠 어디서 살아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와중에 코로나까지 재확산되니 더 머리가 복잡합니다. 언론고시 준비하시는 분들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시겠죠. 다들 자신을 알아봐주는 직장을 만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신문 읽는데 또 갑자기 면접에서 내뱉었던 제 멘트가 떠올라 괴로워져서 푸념글을 써봅니다. 차마 모든 언시생들 힘내시라는 말도 못 쓰겠네요.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이라도 보시며, 좋아하는 간식 거리라도 챙겨드시며, 이런저런 스트레스 조금이라도 덜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두서도 없고 영양가도 없는 하소연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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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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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천최 | 작성시간 20.09.20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해보세요~ 조금만 침착하게 면접에 임하시면 좋은 결과 있으실 것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9.25 면접은 봐도봐도 늘 어렵네요. 단단히 준비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ㅠㅠ 감사합니다!
  • 작성자올 때 메로나 | 작성시간 21.10.13 끝까지 정독했습니다. 초시인데 실무까지 가신 게 너무 부럽고 대단하세요! 저는 지금 공기업 인턴으로 일하면서도 기자가 생각이 나길래 왜 내가 기자가 되고 싶어하는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서론이 길었네요 ㅎㅎ 아무튼 글쓴님! 너무 면접 흑역사만 생각하지 마시고, 재정비하시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셔도 좋을 것 같아요. 보아하니 충분히 기자로서의 능력이 되실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이 또한 기자가 되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고 정진해나가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건승하세요 :)
    ps. 올해 졸업한 것도 그렇고, 지방에서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 제 상황과 넘 비슷해서 차마 지나가지 못하고 댓글 쓰고 갑니당 총총
  • 작성자떵쟁 | 작성시간 21.11.26 준비를 해보다 놓았다가 그래도 괜히 한번 서류 써보고 했는데 덜컥 합격하니 딱 작성자분처럼 눈 앞이 캄캄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준비해놓을 걸 싶고. 교통비 부분도 너무 공감돼서 솔직히 붙을리 없는데 시험보러 가야하나 까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니 교통비 숙박비 날리고 경험하고 오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종이와펜 | 작성시간 22.12.10 졸업하고 바로 첫 직장이시죠?20대 나이가 부럽네요. 살짝 시련은 있었지만, 그래도 님은 아직 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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