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현국이 SBS를 그만둔 이유 #3
2019년 4월, <빅이슈>를 촬영하는 A팀 현장은 여전히 힘겨웠다. 그 곳에 모인 연기자, 스테프, 보조출연자, 그 누구건. 드라마에 유무형으로 기여하는 모두가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었다. 방송 날짜가 길게는 열흘, 짧게는 고작 일주일 남은 상황에서 A4용지 35매 분량의 60분 짜리 드라마 대본 완본이 전달돼 왔다. 꼬박꼬박 매 주 두 권 씩이나. 그 대본들은, 우리가 결코 넘어서지 못 할 거대한 산이거나, 혹은 결코 메우거나 수습할 수 없는 어떤 커다란 구덩이처럼 보였다.
급박히 배우들의 일정을 확인하고, 촬영 장소를 섭외하고. 필요한 미술과 소도구를 준비해 지시하면서 현장에서 씬을 소화하기 위해 도움받아야 할 전문가들을 섭외해 스케쥴을 마련하고. 또 그 모든 스케쥴을, 촬영 현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수십 수백가지 문제들을 풀어가며 한치의 빈틈없이 소화해야만 편집, CG를 포함한 후반 작업 스케쥴을 맞추고 제 시간에 방송을 낼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은 일견 불가능해 보였다. 아니, 일견 그랬던 것이 아니라 사실상 항상 불가능했다. 대본이 늦다고 J작가님을 탓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대본이 늦는 문제를 떠나서, 제작 현장은 이미 처참히 망가져있었고, 이런 제작 일정을 소화하라는 건 그저 물리적으로 무리한 주문이었다. 나를 비롯한 스텝들은 이를 꽉 물었다. 우리마저 손을 놓게 되는 그 순간, 이 모든 불가능은 결국 불가능했음을 입증할 것이었다.
A팀이 풀리지 않는 스케쥴과 씨름하면서, 매 주 밤을 새며 ‘불가능’ 극복 수치를 경신하고 있을 무렵. B팀은 상대적으로 말랑하고 평온한 씬들을 촬영하며 유유자적했다. 그러던 한 날은, B팀을 이끌던 P감독이 내가 촬영하던 세트 현장에 고래고래 욕설을 하며 찾아온 일이 있었다. A팀에서 주진모 형님 분량을 촬영한 뒤 B팀에 제 때 넘겨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늦었다는 이유였다. 이화여대를 졸업했다는 P선배와 나는 회사에서는 두 기수 차 선후배 사이였지만 나이로는 내가 세 살 많았다. 물론 난 항상 그녀에게 깎듯한 존대를 사용했다. 그녀가 인격모독적인 개 썅욕을 박아대건 말건. 이런 식으로 왕따와 괴롭힘, 인격무시를 당하다간 정말 자살하겠구나 싶을 정도의, 고수위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건 말건.
P감독은 “야 이 개새끼야. 넌 일을 어따구로 배웠길래 이 지랄이야? 배우를 몇 시 까지 촬영 끝내서 넘겨주기로 했으면 그렇게 해야지. 너 땜에 B팀이 1시간이나 기다려야겠어? 어? 말 해봐 이 OO끼야!”하며 날 다그쳤다. 현장에 모여있던 70여명의 스텝들이 숨죽이고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게 한 작품을 함께 손발 맞춰 만들어가는 A,B팀의 수장이 보일 모습인가? 참담한 쪽팔림과 함께, 이글거리는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이를 악물고 답했다. “촬영분 확인 해 보시죠, 선배님. 마지막 커트 촬영한 타임코드 보시고 말씀하세요. 저는 제 시간에 맞춰서 찍고 넘겼습니다. 그리고 제 현장에서 말을 삼가시죠.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이 자리를 빌어, P감독의 태도에 대해 한 마디 지적하고 싶다. 야. X수X 감독. 내가 너 오냐오냐 하며 선배 선배 하고 대접해줬더니, 감히 나를 헐뜯고 깔봐?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로 사람한테 예의도 안 갖추고 지랄이야?
똑바로 살아. 어?
욕 해서 미안하다? 응? 고소 하려면 해라.
하지만 니가 나한테 박은 욕 중에 1/100도 안 돼.
넌 알거야.
-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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