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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유 게 시 판

[서울의 봄 / 실제인물은 누구?] 당신도 누군가에겐 전두환, 하나회일 수 있다

작성자그렇구나|작성시간23.12.04|조회수1,001 목록 댓글 0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라는 말을 나는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반대로 생각하는 분께는, 지금 한창 극장가를 달구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싶다.
 
이 영화의 결말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열광할까? 물론 영화가 잘 각색됐고,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서 그런 면도 분명있을 것이다.
 
그런데 본인은 서울의 봄을 두 번이나 보면서 생각했다. 이건 인간다큐라고.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결론적으로,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들은 모두 잘 먹고 잘 살았다. 고급진 표현을 쓰고 싶었지만 이 말이 딱이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을 본 분들이라면 동의하실거라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극 중 전두광은 대통령을 두 번했고, 노태관도 대통령을, 그 외의 인물들도 국회의원을 하며 죽을 때까지 잘 나갔다.
 
 
그.런.데
 
이 신군부 세력을 막으려 했던 진압군들은 어떻게 됐을까?
 
예상하는 대로 비극의 결말이 많았다.
 

 
장태완 수도방위사령관은 당시 실제로 보안사 특수수사대의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전역 지원서를 강제로 쓴 다음에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풀려난 뒤에도 가택 연금을 당했다.
 
장 사령관의 비극은 가족 전체에게로 번진다.

영화 속 나온 '공부 잘하시는 아드님'의 이름은 장성호다. 장성호는 81년 서울대학교 자연대 수석 입학을 하는데, 이듬해 1월에 낙동강 근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장태완 사령관은 쿠데타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있었는데, 완성하지 못하고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장 사령관이 사망한 후 부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쿠데타 이후 강제 개편을 당한다. 그런데 88년 10월에 행방불명이 되고 실종 139일 만에 경기 의정부 아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당시 장태완 사령관은 정 사령관이 자살을 택할 인물도 아니고, 정황도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유족들은 고인의 명예가 회복되고 사인이 정확하게 밝혀지면 묘비명을 새기겠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의 묘비에는 묘비명이 없다.
 

 
마지막까지 정 사령관 곁을 지켰던 김오랑 중령은 실제로 현장에서 죽음을 당했는데, 당시 그의 가족들은 이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동료 장교들이 지속적으로 항의를 하자, 나중에 가족들에게 소식이 전해지는데 이에 부인 백영옥씨는 충격으로 시신경이 마비돼 실명된다.
 
이후, 백영옥 씨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90년 12월에 신군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한다. 그런데 갑자기 소송을 포기한다.
 
그리고 이듬해 6월, 백영옥 씨가 봉사활동을 하던 건물 아래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이 된다.
 
죄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승승장구하고, 되려 그 반대의 사람들의 삶은 비극으로 끝났다. 이 사실에 영화를 본 관객들은 분노를 했고 심박수 챌린지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현재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조직이나 정치질이 존재한다. 크든 작든 말이다.
 
영화 속 전두광은 이런 말을 한다.
 

저기 저 안에 있는 사람들 자기한테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해서 있는기라

그렇다.
 
인간은 대부분, 대체로 이득이 의해 움직인다.
 
극중 이태신과 같이 원칙의 편에 서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원칙의 편에 선 순간, 공공의 적이 되기 십상이다. 특히나 타인들에게 이득이 될 무언가를 내어줄 무언가가 없다면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도의적인 것에 기대 사람들이 원칙의 편에 서주길 바란다면 너무 순진한 발상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 순진한 발상을 나는 2020년도에 했었다.
 
본인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기자가 된 후, 그 속에서 벌어진다.
 
영화가 흥행해 이태신 등 원칙의 편에 섰던 이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하지만, 그전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이처럼 나의 고백이 늘 그랬듯 묻힐 것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지만 기록해보고자 한다.
 


 
각 언론사마다 다르지만, 우리 회사는 군대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었다. 타 언론사도 우리 회사 문화가 이상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취재의 기본도 모른 채 법원이라는 곳에 투입된다. 전임자도 본인을 두고 출산휴가를 가게 된 것을 계속 미안하게 생각했다.
 
정말 힘들었지만, 그 과정은 생략하려 한다. 요점은 그것이 아니니까.
 


 
문제는 내가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낸 후, 시작된다. 이제 친해진 취재원들도 생기고 단독도 곧잘 가지고 오니 같은 팀 여자 선배가 본인을 시기 질투하기 시작한다.
 
그 여선배는 나보다 7년이나 선배였다.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과 행동을 다른 선배들에게 퍼뜨렸다.
 
그것이 돌고 돌아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여기서 혹자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럼 더 윗사람에게 말하면 되지 않냐, 앞서 말했듯 군대문화이므로 나는 국장과 다이렉트로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말한다고 해도 이제 1년차인 내 말을 믿을까, 7년차인 선배의 말을 믿을까. 무엇보다 다른 선배들은 모두 그 여선배의 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를 얼마나 오래봤다고 나의 편을 들겠는가. 그리고 나와 직접 대화도 별로 나누지도 못했던 상황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여선배의 평소 성품을 알릴 수 있는 선배는 출산휴가간 선배였다. 선배라인에서는 여자가 그렇게 두 명이었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들은 모두 카더라를 믿었다. 그런 문화였다.
 
실제 다른 팀의 한 선배는 내게 몰래 그 선배 원래 그러니 조금만 더 버티라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날 내쫓으라고 국장을 압박하듯 나를 제외한 우리 팀은 모두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무일 없는듯 되려 스승의 날에 쿠키도 직접 구워 선배들에게 선물해 봤고, 서운한거 있으면 말씀해달라고도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렇게 나는.... 마음의 병만 얻었다(지금은 괜찮지만 덕분에 공백이 너무 길어져 버렸다ㅎ) 내가 오랜시간 마음의 병으로 힘들어한 것 자체가 그들이 실제로 그런 일을 범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토록 원했던 기자가 됐지만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다른 곳에 경력으로 지원하려고 해도 나에 대해 좋지 않게 얘기를 해서 채용될 수도 없었다.
 

 

 
 
반면 회의에 들어오지 않은 팀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모두를 아울러야할 팀장은 현재 한겨레 기자로, 그 여선배는 세계일보에서 일하고 있다. 같은 팀은 아니지만, 헤럴드경제도 있다 (이름도 다 밝힐 수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면, 일개 소장이었던 전두환을 왜 아무도 막지 못했을까? 지위가 더 높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말이다.
 
 

극 중 참모총장(이성민 역), (좌측) 정승화 계엄사령관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하나회를 견제하기 위해서 수도방위사령관과 특전사사령관을 '비하나회'로 임명하긴 했지만, 문제는 사령관은 부대를 직접 움직이지 않는 다는 점에 있다.
 
그 밑의 사단장이 실질적으로 움직이는데, 부대를 직접 움직이는 이른바 대령급, 중령급은 사실상 하나회가 모두 장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장태완 수도방위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직속 부하에 의해 체포된다.
 
그렇다. '하나회' 라는 조직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극 중 전두광의 첫 대사는 다음과 같다.

세상은 그대로야


영화를 보고 욕만 하고 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회사에서 어떤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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