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읽었던 것이 대학교 1학년 때 무렵이었다. X세대라는 카테고리로 젊은 사람들을 묶어두려던 그 시절. 대학문화가 상업문화와 조금씩 만나며 소위 운동권 주도의 대학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그 시절이었다. 선배들은 민가를 가르쳐주려고 애썼지만 대중가요의 멜로디가 더 살갑게 느껴졌던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 술만 마시면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선배들이 지겹기도 했던터라 그들의 던졌던 화염병 무용담이 진실인지 궁금해 과거가 이리저리 자료들을 뒤적거리던 중에 만났던 책이 바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었다.
그러나 여기서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이번 주에 서평 하는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니라 박일문의 소설<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었다. 소위 말하는 80년대 운동권 후일담 소설. 박일문은 80년대 살아남은 운동권들이 성에 탐닉하는 상황을 그려 당시에 가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책에서 처음 브레히트의 이름을 들었다. 소설의 제목은 브레히트의 시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리고 잊혀졌던 브레히트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것은 김광규의 시집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김광규의 시는 매우 쉬운 언어로 쓰여있으면서도 현실의 뒷부분을 예리하게 풍자하고 역설하는데 한국시단에서 가히 군계일학이었다. 그를 통해 시어의 화려함보다 시어의 조탁성보다 시어가 가진 도구로서의 힘에 더욱 매료될 수 있었다. 그의 시는 내게 복음과 같은 것이었다. 평범한 언어로도 현실을 후려칠 수 있다는 사실.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다른 시선이라는 것. 그에 대한 자료를 모으다보니 이 시인이 브레히트의 시집을 번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그런 과정을 거쳐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김광규의 시가 브레히트의 그늘 아래서 자랐음을 알 수 있었다.
박일문은 80년대 학생운동세대들이 살아남은 90년대의 슬픔을 말한 것이었고 브레히트는 2차대전에서 살아남은 지식인들의 슬픔을 말한 것이었다. 박일문의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공허한 심리를 극복하지 못하지만 브레히트의 시집에는 그것조차 사치로 느낄 정도의 자괴감이 묻어있었다. 박일문의 소설은 소설적 재미는 있었지만 묵중한 감동을 주거나 뇌리에 오래도록 남지 않았다. 하지만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내 평생의 책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는 책이 되었다.
전자의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혹은 자신을 변명하거나 혹은 애써 자위하며 억지의 희망을 만드는 반면 후자의 현실과의 싸움과 대결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고 좌절의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브레히트가 의도한 가정기도서 연작처럼 나는 그의 시들을 읽고 시에 대한 인식이 세상에 대한 시선이 한층 달라졌음을 경험했다. 그것은 바로 진실한 언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힘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언어의 힘이 내 자신을 내세우는데 필요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한창 시를 공부한답시며 온갖 종류의 시집을 필사하던 그 무렵. 나 역시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간절하고 절박한 욕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한 언어를 쓰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잘 포장되고 잘 가꾸어진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 욕망은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허영이었으며 사치였다.
언어의 진실성은 곧 삶의 진실성에서 온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아도 그것을 실천 할 만큼의 솔직함이라던가 용기가 없었다. 시의 진실성보다는 시의 사교성에 기대고 싶었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브레히트의 시들은 대게 서사성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소소한 감상이나 시어자체의 예술성보다는 서사의 흐름속에서 시를 통하여 세상을 달리 볼 것을 요구한다. 그 역시 서사보다는 서정이 시인의 속성에 어울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는 그의 말대로 서정시가 쓰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 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우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이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히틀러를 칭함)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1939)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는 비단 그가 살았던 2차대전 당시의 독일만 그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모순에 대하여 눈 뜬 모든 이의 심정일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행복과 그것의 추구가 죄처럼 느껴지는 시대. 기실 그것은 늘 현존하는 현실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현실의 한 모습이 아니라 현실의 전체가 되거나 혹은 전체로 보일 때 사적인 행복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 죄책감과 부끄러움 그리고 현실에 대한 분노가 나는 사람에 대한 희망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역설적으로 브레히트의 시는 인간에 대한 존엄과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다. 시집 전체에서 보이는 브레히트의 언어는 날이 서있고 예리했지만 그 불편함 들이 오히려 개운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브레히트 시가 지닌 진정한 문학성이 여기서 증명된다.
개인적으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를 꼽으라면 그가1934년에서38년에 걸쳐 쓴 <후손들에게>라는 시였다. 그 시의 마지막 두 연은 이렇게 끝이난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었지만
우리 스스로가 친절하지 못했단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정도까지 되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다오.
그는 서정시가 쓰기 힘든 시대에 태어나 서정시를 쓸 수 있는 시대를 위해 투쟁해왔다. 하지만 그런 투쟁을 통해 스스로 서정시를 쓸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지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 고백을 통해. 그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자신들의 삶이 자신들이 진정 원한 것이 아님을 다음 세대들에게 전하려 한다. 하지만. 그 다음 세대들이 과연 그 조상들의 바람을 제대로 수긍할 수 있을까? 이는 브레히트만의 후회와 반성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이고 후회일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쉽게 읽히는 시집이다. 난해한 단어도 없고 상징적인 시어들도 거의 없다. 브레히트 스스로가 자신의 시는 인텔리겐차들의 지적 만족을 위해 예술적 완성을 위해 쓰는 시들이 아님을 천명했다고 한다. 그는 기독교의 기도들처럼 자신의 시들이 사람들의 의식을 개혁할 수 있는 언어의 도구가 되기를 바란 듯 하다. 사실 그것은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욕심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브레히트는 적어도 한 사람에게 확실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 한 사람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밝히면서 서둘러 서평을 마친다. 시간에 쫒긴 글이었다.
꼬리말
에펨포미 히틀러의 "표상"이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세계"가 되던 시절에 그가 적어내려간 서정시는 무엇에서 연유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지적인 것과 정적인 것 중 그 우위에 있는 무엇이 과연 존재할까요? 그럼, 그것이 살아남고 죽어나가는 차이와 어떻게 다를까요? 괜한 질문? 우흐흐 ^^* [2003/08/28]
학사우유 오빠가 그 요란했던 X세대였군요..^^ 고 1때 박일문의 책을 읽으며 브레히트의 시집을 꼭 보리라, 아니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이 나열하던 모든 사상가들의 책을 모조리 섭렵하리라 다짐 했건만...이제 살아남음을 슬퍼하는 자들을 찾는다는건 흔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죠... [2003/08/29]
그러나 여기서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이번 주에 서평 하는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니라 박일문의 소설<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었다. 소위 말하는 80년대 운동권 후일담 소설. 박일문은 80년대 살아남은 운동권들이 성에 탐닉하는 상황을 그려 당시에 가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책에서 처음 브레히트의 이름을 들었다. 소설의 제목은 브레히트의 시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리고 잊혀졌던 브레히트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것은 김광규의 시집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김광규의 시는 매우 쉬운 언어로 쓰여있으면서도 현실의 뒷부분을 예리하게 풍자하고 역설하는데 한국시단에서 가히 군계일학이었다. 그를 통해 시어의 화려함보다 시어의 조탁성보다 시어가 가진 도구로서의 힘에 더욱 매료될 수 있었다. 그의 시는 내게 복음과 같은 것이었다. 평범한 언어로도 현실을 후려칠 수 있다는 사실.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다른 시선이라는 것. 그에 대한 자료를 모으다보니 이 시인이 브레히트의 시집을 번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그런 과정을 거쳐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김광규의 시가 브레히트의 그늘 아래서 자랐음을 알 수 있었다.
박일문은 80년대 학생운동세대들이 살아남은 90년대의 슬픔을 말한 것이었고 브레히트는 2차대전에서 살아남은 지식인들의 슬픔을 말한 것이었다. 박일문의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공허한 심리를 극복하지 못하지만 브레히트의 시집에는 그것조차 사치로 느낄 정도의 자괴감이 묻어있었다. 박일문의 소설은 소설적 재미는 있었지만 묵중한 감동을 주거나 뇌리에 오래도록 남지 않았다. 하지만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내 평생의 책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는 책이 되었다.
전자의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혹은 자신을 변명하거나 혹은 애써 자위하며 억지의 희망을 만드는 반면 후자의 현실과의 싸움과 대결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고 좌절의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브레히트가 의도한 가정기도서 연작처럼 나는 그의 시들을 읽고 시에 대한 인식이 세상에 대한 시선이 한층 달라졌음을 경험했다. 그것은 바로 진실한 언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힘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언어의 힘이 내 자신을 내세우는데 필요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한창 시를 공부한답시며 온갖 종류의 시집을 필사하던 그 무렵. 나 역시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간절하고 절박한 욕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한 언어를 쓰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잘 포장되고 잘 가꾸어진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 욕망은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허영이었으며 사치였다.
언어의 진실성은 곧 삶의 진실성에서 온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아도 그것을 실천 할 만큼의 솔직함이라던가 용기가 없었다. 시의 진실성보다는 시의 사교성에 기대고 싶었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브레히트의 시들은 대게 서사성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소소한 감상이나 시어자체의 예술성보다는 서사의 흐름속에서 시를 통하여 세상을 달리 볼 것을 요구한다. 그 역시 서사보다는 서정이 시인의 속성에 어울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는 그의 말대로 서정시가 쓰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 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우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이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히틀러를 칭함)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1939)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는 비단 그가 살았던 2차대전 당시의 독일만 그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모순에 대하여 눈 뜬 모든 이의 심정일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행복과 그것의 추구가 죄처럼 느껴지는 시대. 기실 그것은 늘 현존하는 현실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현실의 한 모습이 아니라 현실의 전체가 되거나 혹은 전체로 보일 때 사적인 행복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 죄책감과 부끄러움 그리고 현실에 대한 분노가 나는 사람에 대한 희망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역설적으로 브레히트의 시는 인간에 대한 존엄과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다. 시집 전체에서 보이는 브레히트의 언어는 날이 서있고 예리했지만 그 불편함 들이 오히려 개운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브레히트 시가 지닌 진정한 문학성이 여기서 증명된다.
개인적으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를 꼽으라면 그가1934년에서38년에 걸쳐 쓴 <후손들에게>라는 시였다. 그 시의 마지막 두 연은 이렇게 끝이난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었지만
우리 스스로가 친절하지 못했단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정도까지 되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다오.
그는 서정시가 쓰기 힘든 시대에 태어나 서정시를 쓸 수 있는 시대를 위해 투쟁해왔다. 하지만 그런 투쟁을 통해 스스로 서정시를 쓸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지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 고백을 통해. 그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자신들의 삶이 자신들이 진정 원한 것이 아님을 다음 세대들에게 전하려 한다. 하지만. 그 다음 세대들이 과연 그 조상들의 바람을 제대로 수긍할 수 있을까? 이는 브레히트만의 후회와 반성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이고 후회일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쉽게 읽히는 시집이다. 난해한 단어도 없고 상징적인 시어들도 거의 없다. 브레히트 스스로가 자신의 시는 인텔리겐차들의 지적 만족을 위해 예술적 완성을 위해 쓰는 시들이 아님을 천명했다고 한다. 그는 기독교의 기도들처럼 자신의 시들이 사람들의 의식을 개혁할 수 있는 언어의 도구가 되기를 바란 듯 하다. 사실 그것은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욕심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브레히트는 적어도 한 사람에게 확실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 한 사람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밝히면서 서둘러 서평을 마친다. 시간에 쫒긴 글이었다.
꼬리말
에펨포미 히틀러의 "표상"이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세계"가 되던 시절에 그가 적어내려간 서정시는 무엇에서 연유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지적인 것과 정적인 것 중 그 우위에 있는 무엇이 과연 존재할까요? 그럼, 그것이 살아남고 죽어나가는 차이와 어떻게 다를까요? 괜한 질문? 우흐흐 ^^* [2003/08/28]
학사우유 오빠가 그 요란했던 X세대였군요..^^ 고 1때 박일문의 책을 읽으며 브레히트의 시집을 꼭 보리라, 아니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이 나열하던 모든 사상가들의 책을 모조리 섭렵하리라 다짐 했건만...이제 살아남음을 슬퍼하는 자들을 찾는다는건 흔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죠... [200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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