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고등학교 시절 상춘곡, 관동별곡과 함께 표기법에 주의하며 열심히도 외웠던 훈민정음 해제. 1443년 창제하사 1446년 반포하셨던 그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이 영어 공용화 논의에 밀려 박물관에 전시되는 사어가 될 위기에 처했단다.
<한국어가 사라진다면>이란 책은 다섯 명의 언어학자가 영어 공용화 이후의 상황을 가정하여 미래의 언어사회를 그린 가상의 글이다. 나름의 구성(plot)을 가지긴 했으나 소설로 분류할 수는 없다.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언어학자들이 글을 이따위로 쓰니까 영어공용화론이 힘을 얻는 게지.
주술관계의 오류, 불필요한 어휘의 사용 등으로 글이 퍽퍽하다. 아마 이오덕 선생이 살아계셨더라면 죽비로 되게 후려치셨을 텐데...
책의 구성은 이전에 대략 설명했으니 생략한다.
가장 문제되는 부분은 영어 공용화 이후 100년의 시기를 상정한 4장 "이젠 중국어" 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중국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형편이다. 다만 최근 중국의 성장과 발전에 힘입어 중국어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커지는 만큼 앞으로는 중국어가 영어를 대신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할 뿐 치밀한 어학적 분석은 없다.
어차피 글의 구성이 미래의 상황을 추측해보는 것이라 하지만 논리적이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이다. 인류 공동의 문명과 민족어 문명 사이에서 그 해법은 무엇인가 고민했던 독자가 기대했던 정치한 분석과는 거리가 있어 다소 실망스럽다.
사실 이 책은 여는 글에 소개된 영어 공용화론을 둘러싼 찬반논쟁을 살펴보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면 족하다.
영어 공용어론 찬성
1. 국제화 시대에 영어는 이미 세계 공용어이다. 국제화 시대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영어는 필수다.
2. 미래사회는 영어와 민족어가 공존하는 이중언어 상태가 될 것이다.
3. 민족어들은 대중의 외면을 받고 박물관 언어가 될 것이지만 전문가들에 의해 쓰이고 보존되고 이어질 것이다.
4. 언어는 도구일 뿐 특정어를 우상으로 떠받드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5. 과학기술시대, 정보화 시대에 통역, 번역은 한계가 있다.
6. 영어를 공용화한다고 해서 한국 문화가 쇠퇴하거나 사멸하는 것은 아니다.
7. 영어 공용은 비용과 혜택이 여러 세대에 걸쳐 나오는 초장기적인 투자이며 그 혜택은 거의 모두가 수혜자이다. 정책 결정은 후손들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하는 방법으로 해야 할 것이다. 영어의 모국어 선택권을 후손들에게 주자.
8.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이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이기주의이다.
영어 공용어론 반대
1. 민족 집단 자살 행위로 민족 정체성과 주체성 상실이 우려된다.
2. 문화의 근본 원천인 모국어가 위축되어 한국 문화와 한민족이 말살될 것이 우려된다.
3. 영어 사용으로 새로운 계층 대립이 생겨 영어 사용 능력 계층만이 잘 살고 영어 사용 무능력 계층은 못살 것이므로 영어는 상류어가 되고 토박이 국어는 하류어가 되어 모국어를 기반으로 한 창조적 문화 발달과 민족 공영적 경제 발전은 불가능해지고 계층 대립과 민족 분열이 심화될 것이다.
4. 영어 사용 능력은 필요 전문 계층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습득해 가면 되는 것이지 모든 국민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영어 스트레스가 심한데 공용화하면 국민의 부담이 커져 국력이 크게 낭비될 것이다.
5. 영어 사용 능력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것은 착각이다. 이미 영어 공용을 실시하고 있는 필리핀, 인도 등이 국제적 경쟁력이 우수한 나라라고 보기는 어렵고 일본이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을 가진 것을 보면 영어 능력과 국가 경쟁력이 무관하다.
6. 영어 교육을 개선하면 되는 것이지 공용어로 만들 필요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공용화에 반대한다. 토익군과 토익양 때문에 속 썩는 수많은 카페인들도 마찬가지라고 감히 내 맘대로 생각해본다.
반대 논리 3항에 동의한다.
언어 사용 능력이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결정한다.
물론 이 책에서 가정했듯 영어 능력 하나만 가진 재미교포나 미국인들이 고위층을 점령하는 건 아니다. 언어 사용 능력은 기본으로 갖추고 그 위에 전문적 역량을 갖추어야만 한다. 다시말해 언어 사용 능력은 필요조건일지언정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조선조에는 한학교육의 대상을 제한하여 계층을 구분하고 기득권자들의 권력과 지배를 합리화하고 지속시켜 나갔으며 만백성이 사용할 수 있는 한글은 '언문, 암클'이라 천시햇다.
요즘 개정의 노력을 보이고 있다지만 법조문이나 공문서의 난해한 한문투 글은 법과 일반 국민의 간극을 넓힌다. 집에 한 권씩의 법전을 비치해두고 궁금한 게 있으면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국민과 가까운 법이 아니라 여전히 멀기만 한 법조인들만의 법이다.
사회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언어부터 평등해야 한다.
1443년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의의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한자가 유입되기 전부터 우리말은 있었다. 말을 글로 표현해내기 위한 노력은 수천 년 동안 지속돼왔다. 통일신라시대 설총의 이두 따위가 바로 그것. 그러나 말과 글이 일치하는 온전한 우리말글을 갖게 된 것은 수세기가 지난 뒤에서야 가능했다. 물론 한자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야 아쉬울 것 없었을 터. 발음이야 달랐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필담이 가능했으니.
한글을 통해 피상적이나마 언어생활의 평등을 이룬 것이 불과 600여 년에 불과하다. 그것도 우리말글을 갖게 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런 것이지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세로쓰기에 한자어가 넘실대던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이 소수에 불과한 것을 생각해보면 진정한 언어 평등의 역사는 짧기만 하다. 그런데 다시 우리말글과 다른 영어를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공용화하는 것은 언어를 다수 민중과 유리시키고 계층간의 갈등을 증폭시킬 따름이다.
(천성이 냄비인지라 또 마구 흥분하고 있으니 잠시 쉬어가고자 하나 한 까치 담배도 나눠 피울 전우 없으니 이를 어찌 하리오! 오호 통재라! 진작 담배 한 갑 사오는 건데...^^;;;)
2002년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은 <영어가 계급이다>란 글에서 영어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사이의 계층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선 "국가가 책임진다는데, 능력이 되는 자만 알아서 해야 하는 지금보다 더 하겠느냐"고 되묻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교육이 그러하듯 시간과 교육자본의 차이에 따른 교육 효과의 차이가 결국 계층간의 차이를 확대, 심화할 것은 분명하다. 판교학원단지 조성이라는 어불성설인 계획이 나왔던 것도 공교육의 부실 때문이었는데 영어를 공용화한다고 해서 영어 교육을 둘러싼 사교육 붐이 일지 않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순진한 것인가, 어리석은 것인가?
반대 논리 4항에 사족을 달고자 한다.
언어는 필요에 의해 습득하는 것이다. 필요없는 사람에게까지 강제하는 것은 억압이자 폭력이다.
얼마전 박원홍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80여 명이 한자교육강화 법안을 마련 중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그들의 논리 중 하나가 중국이 날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한자교육을 강화하면 나중에 그들과 필담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정책을 입안하는 자들이 얼마나 무식한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대만도 아니고 중국에서 번체자(우리가 쓰는 복잡한 한자)를 써서 필담을 나눈다?
중국어를 모르면 중국 얘기나 말지.
중국은 이미 간체자(간략하게 축약한 한자)를 일반화하여 번체자를 아는 사람은 일부 지식인층에 국한된다.
가만 보면 불쌍한 것은 그 작은 몸에 제 몸집보다도 큰 가방을 메고 이리저리 학원에 뛰어다녀야 할 아이들뿐이다.
물론 한자어휘가 많은 우리글의 특성상 한자는 많이 알면 알수록 좋다. 의미파악도 분명해지고 이해도 잘 된다.
아직도 해석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우리 선조들의 얼이 담긴 한문자료가 허연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문학자를 많이 배출할 필요도 있을 터.
그러나 모든 국민을 다 한문학자로 만들 셈인가?
한자를 모른다고 개탄하는 어르신네들이 계시지만 왜 좋은 우리말 놔두고 굳이 한자어를 쓰고자 하는가?
어려운 한자어는 한문학자와 국문학자들이 비지땀 흘려가며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꾸어 놓으면 그만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어려운 한자어를 찾아 쓰려는 것은 과시욕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한자교육강화할 시간과 노력, 비용을 아름다운 우리 고유어를 발굴하고 실용화하는 데 쓰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영어공용화 얘기하다가 왜 또 엉뚱한 한자얘기냐고 하겠지만
영어든 한자든 언어는 필요한 사람의 자유의사에 맡길 문제이니 국민 전체에게 강제할 사안이 아니다.
잘못된 외국어나 외래어, 어려운 한자어로 인한 의사소통의 부재는 외국어 전공자와 국어학 전공자가 힘써 해결할 문제이다.
익게에서 냄비 대장이라는 지탄의 화살을 맞고도 아직 제 버릇 개 못주고 오늘도 흥분하여 늘어지고 말았다.
자유주의자 복거일의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편협한 민족주의적 반대가 아니라 전 사회계층의 평등한 언어생활을 꿈꾸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상춘곡, 관동별곡과 함께 표기법에 주의하며 열심히도 외웠던 훈민정음 해제. 1443년 창제하사 1446년 반포하셨던 그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이 영어 공용화 논의에 밀려 박물관에 전시되는 사어가 될 위기에 처했단다.
<한국어가 사라진다면>이란 책은 다섯 명의 언어학자가 영어 공용화 이후의 상황을 가정하여 미래의 언어사회를 그린 가상의 글이다. 나름의 구성(plot)을 가지긴 했으나 소설로 분류할 수는 없다.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언어학자들이 글을 이따위로 쓰니까 영어공용화론이 힘을 얻는 게지.
주술관계의 오류, 불필요한 어휘의 사용 등으로 글이 퍽퍽하다. 아마 이오덕 선생이 살아계셨더라면 죽비로 되게 후려치셨을 텐데...
책의 구성은 이전에 대략 설명했으니 생략한다.
가장 문제되는 부분은 영어 공용화 이후 100년의 시기를 상정한 4장 "이젠 중국어" 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중국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형편이다. 다만 최근 중국의 성장과 발전에 힘입어 중국어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커지는 만큼 앞으로는 중국어가 영어를 대신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할 뿐 치밀한 어학적 분석은 없다.
어차피 글의 구성이 미래의 상황을 추측해보는 것이라 하지만 논리적이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이다. 인류 공동의 문명과 민족어 문명 사이에서 그 해법은 무엇인가 고민했던 독자가 기대했던 정치한 분석과는 거리가 있어 다소 실망스럽다.
사실 이 책은 여는 글에 소개된 영어 공용화론을 둘러싼 찬반논쟁을 살펴보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면 족하다.
영어 공용어론 찬성
1. 국제화 시대에 영어는 이미 세계 공용어이다. 국제화 시대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영어는 필수다.
2. 미래사회는 영어와 민족어가 공존하는 이중언어 상태가 될 것이다.
3. 민족어들은 대중의 외면을 받고 박물관 언어가 될 것이지만 전문가들에 의해 쓰이고 보존되고 이어질 것이다.
4. 언어는 도구일 뿐 특정어를 우상으로 떠받드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5. 과학기술시대, 정보화 시대에 통역, 번역은 한계가 있다.
6. 영어를 공용화한다고 해서 한국 문화가 쇠퇴하거나 사멸하는 것은 아니다.
7. 영어 공용은 비용과 혜택이 여러 세대에 걸쳐 나오는 초장기적인 투자이며 그 혜택은 거의 모두가 수혜자이다. 정책 결정은 후손들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하는 방법으로 해야 할 것이다. 영어의 모국어 선택권을 후손들에게 주자.
8.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이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이기주의이다.
영어 공용어론 반대
1. 민족 집단 자살 행위로 민족 정체성과 주체성 상실이 우려된다.
2. 문화의 근본 원천인 모국어가 위축되어 한국 문화와 한민족이 말살될 것이 우려된다.
3. 영어 사용으로 새로운 계층 대립이 생겨 영어 사용 능력 계층만이 잘 살고 영어 사용 무능력 계층은 못살 것이므로 영어는 상류어가 되고 토박이 국어는 하류어가 되어 모국어를 기반으로 한 창조적 문화 발달과 민족 공영적 경제 발전은 불가능해지고 계층 대립과 민족 분열이 심화될 것이다.
4. 영어 사용 능력은 필요 전문 계층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습득해 가면 되는 것이지 모든 국민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영어 스트레스가 심한데 공용화하면 국민의 부담이 커져 국력이 크게 낭비될 것이다.
5. 영어 사용 능력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것은 착각이다. 이미 영어 공용을 실시하고 있는 필리핀, 인도 등이 국제적 경쟁력이 우수한 나라라고 보기는 어렵고 일본이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을 가진 것을 보면 영어 능력과 국가 경쟁력이 무관하다.
6. 영어 교육을 개선하면 되는 것이지 공용어로 만들 필요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공용화에 반대한다. 토익군과 토익양 때문에 속 썩는 수많은 카페인들도 마찬가지라고 감히 내 맘대로 생각해본다.
반대 논리 3항에 동의한다.
언어 사용 능력이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결정한다.
물론 이 책에서 가정했듯 영어 능력 하나만 가진 재미교포나 미국인들이 고위층을 점령하는 건 아니다. 언어 사용 능력은 기본으로 갖추고 그 위에 전문적 역량을 갖추어야만 한다. 다시말해 언어 사용 능력은 필요조건일지언정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조선조에는 한학교육의 대상을 제한하여 계층을 구분하고 기득권자들의 권력과 지배를 합리화하고 지속시켜 나갔으며 만백성이 사용할 수 있는 한글은 '언문, 암클'이라 천시햇다.
요즘 개정의 노력을 보이고 있다지만 법조문이나 공문서의 난해한 한문투 글은 법과 일반 국민의 간극을 넓힌다. 집에 한 권씩의 법전을 비치해두고 궁금한 게 있으면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국민과 가까운 법이 아니라 여전히 멀기만 한 법조인들만의 법이다.
사회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언어부터 평등해야 한다.
1443년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의의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한자가 유입되기 전부터 우리말은 있었다. 말을 글로 표현해내기 위한 노력은 수천 년 동안 지속돼왔다. 통일신라시대 설총의 이두 따위가 바로 그것. 그러나 말과 글이 일치하는 온전한 우리말글을 갖게 된 것은 수세기가 지난 뒤에서야 가능했다. 물론 한자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야 아쉬울 것 없었을 터. 발음이야 달랐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필담이 가능했으니.
한글을 통해 피상적이나마 언어생활의 평등을 이룬 것이 불과 600여 년에 불과하다. 그것도 우리말글을 갖게 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런 것이지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세로쓰기에 한자어가 넘실대던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이 소수에 불과한 것을 생각해보면 진정한 언어 평등의 역사는 짧기만 하다. 그런데 다시 우리말글과 다른 영어를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공용화하는 것은 언어를 다수 민중과 유리시키고 계층간의 갈등을 증폭시킬 따름이다.
(천성이 냄비인지라 또 마구 흥분하고 있으니 잠시 쉬어가고자 하나 한 까치 담배도 나눠 피울 전우 없으니 이를 어찌 하리오! 오호 통재라! 진작 담배 한 갑 사오는 건데...^^;;;)
2002년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은 <영어가 계급이다>란 글에서 영어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사이의 계층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선 "국가가 책임진다는데, 능력이 되는 자만 알아서 해야 하는 지금보다 더 하겠느냐"고 되묻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교육이 그러하듯 시간과 교육자본의 차이에 따른 교육 효과의 차이가 결국 계층간의 차이를 확대, 심화할 것은 분명하다. 판교학원단지 조성이라는 어불성설인 계획이 나왔던 것도 공교육의 부실 때문이었는데 영어를 공용화한다고 해서 영어 교육을 둘러싼 사교육 붐이 일지 않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순진한 것인가, 어리석은 것인가?
반대 논리 4항에 사족을 달고자 한다.
언어는 필요에 의해 습득하는 것이다. 필요없는 사람에게까지 강제하는 것은 억압이자 폭력이다.
얼마전 박원홍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80여 명이 한자교육강화 법안을 마련 중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그들의 논리 중 하나가 중국이 날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한자교육을 강화하면 나중에 그들과 필담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정책을 입안하는 자들이 얼마나 무식한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대만도 아니고 중국에서 번체자(우리가 쓰는 복잡한 한자)를 써서 필담을 나눈다?
중국어를 모르면 중국 얘기나 말지.
중국은 이미 간체자(간략하게 축약한 한자)를 일반화하여 번체자를 아는 사람은 일부 지식인층에 국한된다.
가만 보면 불쌍한 것은 그 작은 몸에 제 몸집보다도 큰 가방을 메고 이리저리 학원에 뛰어다녀야 할 아이들뿐이다.
물론 한자어휘가 많은 우리글의 특성상 한자는 많이 알면 알수록 좋다. 의미파악도 분명해지고 이해도 잘 된다.
아직도 해석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우리 선조들의 얼이 담긴 한문자료가 허연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문학자를 많이 배출할 필요도 있을 터.
그러나 모든 국민을 다 한문학자로 만들 셈인가?
한자를 모른다고 개탄하는 어르신네들이 계시지만 왜 좋은 우리말 놔두고 굳이 한자어를 쓰고자 하는가?
어려운 한자어는 한문학자와 국문학자들이 비지땀 흘려가며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꾸어 놓으면 그만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어려운 한자어를 찾아 쓰려는 것은 과시욕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한자교육강화할 시간과 노력, 비용을 아름다운 우리 고유어를 발굴하고 실용화하는 데 쓰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영어공용화 얘기하다가 왜 또 엉뚱한 한자얘기냐고 하겠지만
영어든 한자든 언어는 필요한 사람의 자유의사에 맡길 문제이니 국민 전체에게 강제할 사안이 아니다.
잘못된 외국어나 외래어, 어려운 한자어로 인한 의사소통의 부재는 외국어 전공자와 국어학 전공자가 힘써 해결할 문제이다.
익게에서 냄비 대장이라는 지탄의 화살을 맞고도 아직 제 버릇 개 못주고 오늘도 흥분하여 늘어지고 말았다.
자유주의자 복거일의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편협한 민족주의적 반대가 아니라 전 사회계층의 평등한 언어생활을 꿈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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