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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왜 5060이 되어 서로 원수가 될까? 미움의 자동문을 잠그는 어른들의 대화법-백작가TV 어른심리통

작성자지금여기|작성시간26.06.14|조회수34 목록 댓글 2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왜 5060이 되어 서로 원수가 될까?

미움의 자동문을 잠그는 어른들의 대화법-백작가TV 어른심리통

 

https://youtu.be/4TZoq8h8vq4?si=bzlQWnsQ5l1VFrMI

 

반갑습니다, ‘백작가TV 어른심리통'입니다.

자식들 다 키워놓고 은퇴해서 이제 좀 편안해지나 싶었는데,

왜 요즘 들어 내 곁의 배우자가 더 미워지고 야속해질까요?

젊은 시절, 그 뜨겁던 연애 기간을 지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자고 약속했던 우리였습니다.

퇴근길에 남편이 사 오던 붕어빵 봉지 하나에 행복했고,

아내가 끓여주던 된장찌개 냄새에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던

눈부신 시절이 분명 우리에게도 있었지요.

그런데 나이 오십이 넘고, 육십이 지나 은퇴를 하고 나니 참 이상합니다.

이제는 남편이 신었던 양말을 여기저기 벗어두는 것만 봐도 속에서 천불이 나요.

아내가 지나가면서 툭 던진 차가운 말투 하나에도 섭섭하고,

나를 쳐다보는 무심한 표정 하나에도

"평생 나를 무시하는구나" 싶어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거리를 바라보며 ‘내가 이 집에서 평생 식모로 살았나’ 하는

억울한 생각까지 들지요. 공감하시나요?

우리는 나이 들어서까지 이렇게 지독하게 싸우는 이유를

‘서로 성격이 안 맞아서’ 혹은 ‘이제는 사랑이 식어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심리학과 뇌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부부가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건 결코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평생을 헌신해 온 배우자에게 기대했던

따뜻한 위로나 인정이라는 ‘정서적 보상’이 딱 끊겼을 때,

우리 뇌가 상대방을 위협적인 존재로 분류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들려드릴 어른 심리통 이야기는 가슴 한구석을

조금 아프게 찌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곁의 동반자와 남은 황혼의 여정을 아름답게 동행하고 싶다면,

오늘 제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시면 참 좋겠습니다.

결혼 초반의 우리 뇌는 콩깍지가 잔뜩 씌어 있었습니다.

도파민과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펑펑 솟아나니까,

상대방의 단점은 흐릿하게 보이고 내가 보고 싶은 예쁜 모습만

필터로 보정해서 본 것이지요.

그런데 30년,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삶의 거친 현장을 함께 살다 보면

그 필터가 아주 무참하게 벗겨집니다.

연애 때는 몰랐던 생활 습관, 돈 쓰는 서툰 방식,

그리고 은퇴 후에 드러나는 감정 표현의 바닥까지

매일 벌거벗은 채로 마주하게 되지요.

이때 뇌는 깊은 혼란에 빠집니다.

‘내가 평생 믿고 산 사람이 겨우 이런 사람이었나’

하는 배신감이 올라옵니다.

사실 상대가 변한 게 아니라, 내 뇌가 비로소 보정 없는

고화질의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서 시니어 부부의 첫 번째 균열이 생겨납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고 철이 들었다는 이유로,

속상하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이 나이에 말해서 뭐 하나" 하고 꾹 참고 삼켜버리지요.

겉으로는 허허 웃으며 괜찮은 척하지만,

우리 몸 안에서는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독약처럼 켜켜이 쌓여갑니다.

이 코르티솔 수치가 한계치까지 올라가면

우리 뇌에서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마비됩니다.

상대의 행동을 차분하게 이해하려는 생각보다,

나를 지키기 위해 공격하거나 방어하려는

동물적인 본능이 먼저 튀어나오게 되지요.

그래서 은퇴 후 안방에서 나누는 대화는 다정한 소통이 아니라,

날 선 죄인 신문처럼 변합니다.

"당신은 왜 또 그래?",

"내가 언제 그랬어?",

"당신은 평생 항상 그 모양이야!"

이 세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미 부부의 뇌는 사랑 모드가 아니라 서로를 무찌르는

전쟁 모드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깨달아야 할 무서운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싸움의 원인을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

"내가 결혼을 잘못했어"라며 상대방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이 밝혀낸 진짜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미움 그 자체보다, 내가 평생 외면해 왔던

내 안의 결핍과 불안이 가장 가까운 배우자를 통해

매일 아프게 자극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인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내 무의식을 그대로 비추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었습니다.

내가 평생 외로워했던 감정, 남편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

아내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노년의 공포가 은퇴라는

거대한 상실 앞에서 가장 사정없이 튀어나오는 법이지요.

주변의 시니어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 씁쓸한 생존 전략들을 듣게 됩니다.

"백작가님, 이제는 그냥 말을 섞지 않는 게 상책이요.

이 나이에 이혼할 수도 없고, 그냥 옆집 아저씨라 생각하고

한 집에서 각자 살면 속 편합니다."

또 어떤 분은 "개무시하고 침묵하니까 차라리 싸움도 안 나고 편해요"라고

노골적으로 고백하기도 합니다.

참 가볍게 들리는 말 같지만,

사실 이 문장 안에는 핏물 고인 정서적 피로가 숨어 있습니다.

더 이상 내 진심을 구차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말해 봤자 내 말꼬리나 잡고, 결국엔 또 내 탓으로 끝나며

큰 싸움이 될 것을 뼈저리게 겪었으니까,

차라리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쪽을 택한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아주 위험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사소한 양말이나 설거지 때문에 싸운다는 믿음이지요.

단언컨대 우리를 진짜 무너뜨리는 건

그깟 양말이나 말투 같은 사건 자체가 아닙니다.

그 사건 뒤에 내 머릿속이 제멋대로 붙여버리는 ‘잔인한 해석’ 때문입니다.

배우자가 내 말을 툭 자르고 들어오는 순간,

내 뇌는 번역기를 돌려 이렇게 오해합니다.

‘저 사람은 일흔이 되도록 여전히 나를 무시하고 이겨 먹으려고만 하는구나.’

내가 한마디 했을 때 상대가 대꾸도 안 하고 돌아서면,

뇌는 조용히 판결문을 내립니다.

‘이 사람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평생 벽 보고 사는 게 낫겠다.’ 이건 단순한 짜증이 아닙니다.

내 생존을 같이 책임져야 할 동반자를 더 이상 안전한 대화 상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슬픈 경고 신호입니다.

코르티솔이 뇌를 지배하면 뇌의 경보 장치인

‘편도체’가 미친 듯이 춤을 춥니다.

그래서 상대가 단지 궁금해서 물어본 말에도

나를 추궁하고 비난하는 소리로 들리고,

저 사람이 오늘 몸이 피곤해서 잠깐 조용히 있는 것뿐인데도

나를 개무시해서 입을 다물고 있다고 결론을 내버립니다.

반대로 침묵을 선택한 사람의 속마음도 결코 편안한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괜히 한마디 했다가 또 집안 시끄러워지겠지,

설명해 봐야 통할 사람도 아니고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게 덜 피곤하다.’

이렇게 뇌가 갈등을 회피하는 쪽으로 늙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무시하고 사니 편하다"는 침묵의 방어기제는

당장은 나를 보호해 주는 방패 같습니다.

하지만 이 침묵이 오래되면 관계를 서서히 질식시키는 무서운 독가스가 됩니다.

말을 안 하면 당장 오늘 밤의 부부 싸움은 줄어들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내 서글픈 마음을 상대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능성조차 차단되는 겁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단단히 걸어 잠근 마음의 문이,

나중에는 따뜻한 사랑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시니어 부부는 한 공간에 같이 살지만,

영혼은 전혀 같이 살지 않는 기묘한 상태가 됩니다.

한 이불을 덮고 자지만 그저 같은 주소지를 공유하는

무심한 옆집 사람처럼 늙어가는 것이지요.

많은 분이 "나이 오십, 육십 넘으면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

바꾸려 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참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타인을 내 입맛대로 개조하려는 모든 시도는

예외 없이 참담한 실패로 끝납니다.

그런데 많은 시니어 부부는 사랑이라는 핑계로,

혹은 부부라는 권력으로 여전히 서로를 고치려 듭니다.

"당신은 왜 늙어서까지 말을 그따위로 해?",

"왜 그렇게 행동해?", "왜 내 기준을 그렇게 몰라줘?"

처음에는 조언으로 시작하지만, 듣는 상대방에게는

사사건건 나를 검열하는 무서운 ‘통제’로 들릴 뿐입니다.

특히 내가 평생 가족을 위해 눈물겹게 헌신했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억울함은 분노가 됩니다.

‘내가 젊은 날 청춘 다 바쳐서 이렇게까지 고생했는데,

왜 당신은 내 나이 육십이 되도록 손가락 하나 안 바뀌는 거야?’

바꾸게 하려고 내 삶을 통째로 바쳤는데,

돌아온 건 대접받지 못하는 헌신짝 같은 신세라는 서글픔이지요.

이 외침 안에는 사랑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었던

늙은 어린아이의 서러운 눈물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부부 갈등의 가장 선명한 심리적 민낯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사실 상대방을 뜯어고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 숨 막히는 비난 뒤에는 "나 평생 외로웠어,

내 고통 좀 한 번만 알아줘"라는 애절한 고백이 숨어 있습니다.

"왜 맨날 그 모양이야!"라는 호통 뒤에는

"나 혼자 이 무거운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 같아서 무서워"라는

두려움이 숨어 있고, "말 안 하련다" 하는 침묵 뒤에는

"내 진심을 꺼내봤자 당신한테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서 나 너무 지쳤어"라는

절망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소중한 진짜 속마음이 다정한 언어로 나오지 못하고,

날카로운 비난과 싸늘한 침묵, 그리고 조롱이라는 일그러진

방어기제로 변형되어 튀어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서로의 신경계가 안정감을 얻는 방식이 달라서 충돌하는 것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 식었다고 오해하며 매일 지쳐갑니다. ]

물론 여기서 우리가 명백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경계선은 있습니다.

혹여나 배우자의 상습적인 폭언이나 폭력, 외도,

혹은 경제적인 무책임이나 인격을 짓밟는 반복적인 모욕처럼

내 삶을 처참하게 망가뜨리는 명백한 가해 행위라면,

그것은 단순히 참고 이해하라는 말로 덮을 수 없습니다.

그때는 단호한 거리두기나 법적인 보호, 심지어 황혼 이혼까지도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존엄한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관계를 지킨답시고 소중한 내 영혼을 피폐하게 망가뜨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저 미련한 소진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일상적인 말투와 사소한 습관으로 부딪히는

갈등 속에서조차 매번 "이혼이 답이다, 늙어서 갈라서면 그만이다"라며

칼로 무 베듯 가버린다면, 우리는 내 마음속의 오랜 상처를

치료할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람을 갈아치워도 내 안의 해석 번역기와 애착의 불안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우리는 다음 관계에서도

똑같은 장면에서 똑같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황혼의 길목에서 미움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저 인간을 어떻게 고칠까"가 아닙니다.

"나는 왜 저 사람의 저 사소한 말 한마디에

내 존재 전체가 통째로 무너지는 것처럼 아플까?",

"나는 어쩌다 이 지독한 침묵 속에 나를 가두게 되었을까?"

상대를 심판하려는 재판관의 자리에서 잠시 내려와,

내 마음속에서 제멋대로 날뛰는 자동 반응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겁니다.

상대를 바꾸려는 무의미한 전쟁을 멈추고 내 상처를 어루만지는 순간,

기적처럼 관계의 프레임이 통째로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부부가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진짜 파국은

매일 피 터지게 싸우는 날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 기대도 안 한다, 그냥 한 집 사는 남이라 생각하자" 하고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걸어 버린 고요한 날부터 진짜 비극은 시작됩니다.

밥은 한 상에서 같이 먹지만 눈빛은 나누지 않는 상태,

배우자가 밖에서 무슨 일을 겪고 밤늦게 들어와도 전혀 궁금하지 않은 상태.

집안은 겉보기에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미안하지만 그건 평화가 아니라 영혼이 완전히 밖으로

빠져나간 ‘정서적 철수’ 상태입니다.

침묵하면 당장은 싸움을 피하니 안전해 보이지요.

하지만 뇌는 아주 무서운 최종 결론을 내립니다.

‘이 사람에게는 내 영혼을 꺼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이 결론이 굳어지는 순간, 내 곁의 배우자는 소중한 동반자가 아니라

내 에너지를 갉아먹는 귀찮은 소음이자 가구처럼 느껴집니다.

"요즘은 우리 영감이랑 안 싸우니까 괜찮아졌어요"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그것은 관계가 회복된 게 아니라,

서로를 향해 연결을 시도할 최소한의 생명력조차

완전히 고갈되어 버린 슬픈 증거일 수 있습니다.

진짜 끝나가는 관계는 시끄럽지 않고 지독하리만치 고요합니다.

상대가 무엇을 하든 마음속에서 "그러거나 말거나"라는

싸늘한 문장이 먼저 올라옵니다.

이 무심함은 나이 들어 성숙해진 게 아니라,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감정 회로의

두꺼비집을 완전히 내려버린 슬픈 방어 반응입니다.

현대 심리학의 거장 존 가트맨 박사는 부부 관계를

완전히 파멸로 이끄는 가장 치명적인 독약으로 ‘경멸’을 꼽았습니다.

경멸은 단순한 분노가 아닙니다.

상대를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마음속에서 저 아래로 내려다보며 혀를 차는 차가운 감정입니다.

서운함이 쌓여 분노가 되고, 그 분노가 수십 년 묵으면

"저 사람은 원래 저 수준밖에 안 돼"라는

잔인한 경멸의 평가로 굳어집니다.

이 지경이 되면 뇌는 아주 비뚤어진 필터를 끼고

오직 상대방의 잘못을 증명할 증거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어쩌다 영감이 설거지를 기특하게 해놓아도

"늙어서 죽을 때가 됐나,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라며

삐딱하게 번역합니다. 아내가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를 해도

"말뿐이겠지, 속으론 딴생각 할걸" 하고 결론을 내버리지요.

내가 못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이미 수없이 실망하고 상처받은 내 뇌가,

더 이상 다치지 않으려고 ‘부정적 예측 시스템’을

풀가동하고 있는 슬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나를 보호하는 동시에,

내 남은 황혼의 삶을 지독한 지옥으로 파괴해 버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저 인간이 나를 괴롭힌다"가 아니라,

"내 지친 뇌가 저 사람을 위협 존재로 잘못 코딩하고 있구나"로

프레임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저 사람이 죽어도 바뀌어야 끝나는 전쟁이지만,

후자는 오늘 당장 내 해석 회로를 고쳐서

나부터 평화로워질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사람의 전두엽도 스마트폰 배터리 같아서,

나이 들고 체력이 바닥나면 공감 능력과

언어 조절 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내 곁의 배우자가 나를 미워해서 저러는 게 아니라,

인생의 무게에 지쳐 조절 능력이 방전된 상태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써야 할 최고의 심리 기술은 바로 ‘해석 지연’입니다.

상대의 날 선 행동을 본 즉시 재판관처럼 판결을 내리지 말고,

최소한 세 가지의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고

뇌의 판결 속도를 일부러 늦추는 훈련입니다.

‘나를 무시해서 저러는 걸까?’라는 단 하나의 생각만 붙잡고 싸우는 대신,

‘저 사람도 오늘 몸이 많이 지치고 아픈 걸까?

표현하는 방식이 워낙 거칠고 서툴러서 저런 걸까?

아니면 내가 과거에 부모나 타인에게 받았던 상처 때문에

저 말에 과도하게 예민해진 걸까?’

이렇게 내 안의 번역기를 한 템포 늦추는 문장을

오늘 밤 부부 식탁에서 한번 꺼내보세요.

"방금 당신이 그렇게 툭 말했을 때, 내

머릿속에서는 당신이 또 나를 무시한다는 서글픈 해석이 올라왔어.

그런데 내 생각이 맞는지 당신 진짜 속마음을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

이 말은 상대를 공격하는 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억울하게 꾹 참고 삼키는 병도 아닙니다.

내 상처받은 감정을 정직하게 드러내되,

내 곁의 동반자를 단번에 범인으로 확정 짓지 않는

가장 격조 높고 영리한 어른들의 대화법입니다.

황혼기 부부의 대화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내 감정을 억지로 없애는 게 아닙니다.

내 감정에 "너는 나를 상처 주려고 작정했다"는

잔인한 판결문을 섣불리 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상처받아 아프다"라는 고백과

"너는 나를 상처 주려고 일부러 그랬다"라는 비난은

완전히 다른 행선지로 가는 기차입니다.

오늘 당장 배우자의 방어벽을 단숨에 낮출 수 있는

다정한 치트키 문장을 아끼지 말고 건네보세요.

"나는 지금 당신을 비난하고 바꾸려는 게 아니야.

그냥 내 안의 마음이 조금 외롭고 아파서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설명하고 싶을 뿐이야."

사람은 고쳐야 할 대상으로 취급받고 통제당할 때

가장 완강한 돌기둥처럼 굳어집니다.

바꾸려고 다그칠수록 사람은 저 멀리 도망쳐버립니다.

하지만 내 지친 상태를 온전히 이해받았다고 느끼는

거룩한 안전감 속에서는, 굳게 닫혔던 빗장을 열고

아주 조금씩 움직일 기적이 시작됩니다.

결혼은, 그리고 우리가 함께 걸어온 이 30년의 세월은

우리를 미워하게 만들려고 준비된 덫이 아닙니다.

내가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뒤에 얼마나 많은 기대와 결핍,

그리고 노년의 두려움을 상대방의 어깨에 무겁게 맡겨왔는지

정직하게 보여주는 거대한 확대경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확대경 앞에서 도망치거나 침묵하지 않을 때,

우리가 느끼는 미움은 이상하게도 애절한 사랑의 메시지로 번역됩니다.

"나 아직 당신과 따뜻하게 연결되고 싶어.

나 아직 당신에게 온전히 이해받고 싶어.

내 남은 황혼의 인생길 동안 이 관계 안에서

가장 안전하고 다정하게 안기고 싶어."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돋보기를 들고

상대의 잘못을 더 매섭게 따지는 게 아닙니다.

내 낡은 번역기부터 의심해보는 여유입니다.

미움이 울컥 올라오는 순간, 가만히 내 심장에 손을 얹고 물어보세요.

"이건 정말 백 퍼센트 사실일까?

아니면 내 외로운 상처가 만들어낸 슬픈 해석일까?"

완벽한 부부가 되어 늙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서로를 미워하며 차가운 벽을 쌓기 전에,

그 미움 아래 숨어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서로의 결핍과

두려움을 딱 한 번만 다정하게 알아차려 주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젊은 날처럼 다시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보다,

황혼의 길목에서 "이 사람 곁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안전한 안식처구나"하는

안전감을 회복하는 것에서 비로소 다시 시작되는 법입니다.

오늘 제 이야기가 여러분의 거실에, 그리고 남은 인생길에

부드러운 온기를 채워주는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

 

오늘 나눈 이야기의 핵심을 다시 한번 요약해 봅니다.

황혼기 부부의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영혼이 빠져나간 위험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미움이 올라올 때 서둘러 판결하지 말고 뇌의 해석을 지연시키세요.

상대를 고치려 드는 통제를 멈추고 내 곁을 가장 안전한 공간으로

만드는 다정한 감정으로 시작할 때,

우리의 미움은 비로소 깊은 감사와 연대의 문장으로 다시 쓰이게 될 것입니다.

시니어 어른 분들, 편안하고 건강하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오늘 영상이 생활에 활력이 되길 바라면서 이만 영상 마칩니다.

시니어 어른 심리를 관통하고 힘을 실어주는 좋은 영상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백작가TV 어른심리통이었습니다.

영상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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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지금여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4
    황혼기 부부의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영혼이 빠져나간 위험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미움이 올라올 때 서둘러 판결하지 말고 뇌의 해석을 지연시키세요.
    상대를 고치려 드는 통제를 멈추고 내 곁을 가장 안전한 공간으로
    만드는 다정한 감정으로 시작할 때,
    우리의 미움은 비로소 깊은 감사와 연대의 문장으로 다시 쓰이게 될 것입니다.
  • 작성자지금여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4
    사랑은 젊은 날처럼 다시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보다,
    황혼의 길목에서 "이 사람 곁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안전한 안식처구나"하는
    안전감을 회복하는 것에서 비로소 다시 시작되는 법입니다.
    오늘 제 이야기가 여러분의 거실에, 그리고 남은 인생길에
    부드러운 온기를 채워주는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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