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복음선포를 시작하신 후로
예수님의 명성과 그분의 행적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자
그 소문이 헤로데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소문을 헤로데왕이 듣자, 그는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헤로데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헤로데의 이러한 고백은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지난 11월, 40일 피정을 마치고 돌아와 본당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피정중에 새롭게 체험한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대해 청년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듣더니, 어떤 청년 하나가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신부님,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니, 무슨 죄를 지어도 상관없지 않나요?
제가 무슨 죄를 지어도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다 용서해주시지 않을까요?
이렇게 하느님께서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시는데,
천국에 가기위해 굳이 착하게 살 필요가 있나요?”
저는 아직 죽음을 체험해보지 못했기에,
우리가 육신의 죽음을 떠난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구원관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이 지상의 삶을 마치고 육신을 떠나면,
우리의 영혼은 어떤 형태로든 하느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순수하고 거룩하며, 밝고 깨끗하신 창조주 하느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한 없이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두 팔을 벌려
우리가 죄인이건 의인이건 상관하지 않으시고,
환하게 웃으시며 우리를 포옹하시면서
당신의 영원한 나라에 함께 들어가자고 이야기하실 것입니다.
이때, 순수하고 거룩한 하느님 앞에 선 우리는
우리들이 지상에서 했던 모든 일들을 한 순간에 펼쳐 보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지난 날 들이 순수이신 하느님 앞에서 숨김없이 드러나게되면,
의인들은 하느님의 품에 자신을 맡겨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이나,
죄인들은 감히 하느님의 품에 안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들은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고,
죄인들은 그 자리에 남을 수 밖에 없게 되는데
그렇게 구원받지 못한 상태가 지옥의 상태가 될 것입니다.
저는 저에게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시어 다 용서하시는데,
천국에 가기위해 굳이 착하게 살 필요가 있나요?”하고 묻는 청년에게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변함없으시며 한 없이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자비로우심으로 우리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입니다.
우리가 의인으로 살면 하느님의 그 무한하신 자비하심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죄인으로 살면 감히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치는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왕을 보십시오.
예수님에 대한 말씀과 행적을 듣자,
즉시 자신의 죄책감으로 인해 예수님께 대한 적개심을 갖게됩니다.
그가 만약 의인으로 살았다면 예수님에 대한 말씀과 행적을 들었을 때,
그 소식을 있는 그대로 순히 받아들였을 것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께대한 적개심을 갖게 된 것은 하느님께서 그리 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죄의 결과인 죄책감의 결과입니다.
변함없고 무한한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늘 사랑하시는 하느님,
그 하느님과 함께 하기위해 우리는 의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 가기위해 굳이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