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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감상실

『섬진강』 김용택 1시집 감상

작성자자유/유기영|작성시간12.11.30|조회수573 목록 댓글 0

  김용택시인은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고,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 <섬진강1>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뷰했습니다.  시집『섬진강』은 1985년 창비에서 발행한 김용택시인의 첫시집입니다.

 

  『섬진강』은 총 3부로 구성되어있는데, 1부에는 20편에 이르는 섬진강 연작시가 수록되어있고, 이 시집으로 인해 김용택시인은 섬진강시인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섬진강을 중심으로 농촌의 자연과 농민들 삶에 있어서의 행복, 애환, 고통을 그리고 있고, 비판적 시선으로 농촌의 피폐함을 고발하는 내용의 글도 있습니다. 맑은 감성으로 진솔한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름답고, 아프고, 슬픈 글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특히 1부의 섬진강 시편은 편편히 모두 아름답습니다. 시의 형식면에서는 일반적인 서정시 양식과 산문시, 그리고 4.4조의 민요풍의 시 등 세가지 형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당히 긴 작품들이 많아서, 되도록 짧은 작품으로 고르려 했는데, 쉽지 않네요. 관심있는 분들은 시집을 구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섬진강1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섬진강2

 

 

저렇게도 불빛들은 살아나는구나.

생솔 연기 눈물 글썽이며

검은 치마폭 같은 산자락에

몇 가옥 집들은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불빛은 살아나며

산은 눈뜨는구나.

어둘수록 눈 비벼 부릅뜬 눈빛만 남아

섬진강물 위에 불송이로 뜨는구나.

 

밤마다 산은 어둠을 베어내리고

누이는 매운 눈 비벼 불빛 살려내며

치마폭에 쌓이는 눈물은

강물에 가져다 버린다.

누이야 시린 물소리는 더욱 시리게

아침이 올 때까지

너의 허리에 두껍게 감기는구나.

 

이른 아침 어느새

너는 물동이로 얼음을 깨고

물을 퍼오는구나.

아무도 모르게

하나 남은 불송이를

물동이에 띄우고

하얀 서릿발을 밟으며

너는 강물을 길어오는구나.

 

참으로 그날이 와

우리 다 모여 굴뚝마다 연기나고

첫날밤 불을 끌 때까지는,

스스로 허리띠를 풀 때까지는

너의 싸움은, 너의 정절은

임을 향해 굳구나.

 

 

 

 

섬진강4

누님의 초상

 

 

  누님. 누님들 중에서 유난히 얼굴이 희고 자태가 곱던 누님. 앞산에 달이 떠오르면 말수가 적어 근심 낀 것 같던 얼굴로 달그늘진 강 건너 산속의 창호지 불빛을 마룻기둥에 기대어 서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던 누님. 이따금 수그린 얼굴 가만히 들어 달을 바라보면 달빛이 얼굴 가득 담겨지고, 누님의 눈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그 그렁그렁한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누님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었지요. 왠지 나는 늘 그랬어요. 나는 누님의 어둔 등에 기대고 싶은 슬픔으로 이만치 떨어져 언제나 서 있곤 했지요. 그런 나를 어쩌다 누님이, 누님의 가슴에 꼭 껴안아주면 나는 누님의 그 끝없이 포근한 가슴 깊은 곳이 얼마나 아늑했는지 모릅니다. 나를 안은 누님은 먼 달빛을 바라보며 내 등을 또닥거려 잠재워주곤 했지요. 선명한 가르맛길을 내려와 넓은 이마의 다소곳한 그늘, 그 그늘을 잡을 듯 잡을 듯 나는 잠들곤 했지요.

 

  징검다리에서 자욱하게 죽고 사는 달빛, 이따금 누님은 그 징검다리께로 눈을 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지요. 강 건너 그늘진 산속에서 산자락을 들추며 걸어나와 달빛속에 징검다리를 하나둘 건너올 누군가를 누님은 기다리듯 바라보곤 했지요.

 

  그러나 누님. 누님이 그 잔잔한 이마로 기다리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니라는 것을, 누님 스스로 징검다리를 건너 산자락을 들추고 산그늘 속으로 사라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을 세월이 흐른 후, 나도 누님처럼 마룻기둥에 기대어 얼굴에 달빛을 가득 받으며 불빛이 하나둘 살아나고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누님이 그렇게나 기다리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니며 그냥 흘러가는 세월과 흘러오는 세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나도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과 헤어져 캄캄한 어둠속을 헤매이며 아픔과 괴로움을 겪었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과 만나고 또 무엇인가를 기다렸는지요.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아픔과 슬픔인지요 누님.

  누님, 누님의 세월, 그 세월을, 아름답고 슬픈 세월을 지금 나도 보는 듯합니다.

 

 

 

 

섬진강9

 

 

  강 건너 산밭에 하루 내내 스무 번도 더 거름을 져나르셨단다. 어머님은 발바닥이 뜨겁다며 강물에 발을 담그시며 자꾸 발바닥이 뜨겁단다. 세상이야 이래도 몸만 성하면 농사짓고 사는 것이 이상 재미있고 속 편한 게 어디 있겠냐며 자꾸 갈라진 발바닥을 쓰다듬으시며 자꾸 발바닥이 뜨겁단다.

 

  어머니, 우리들의 땅이신 어머니. 오늘도 강을 건너 비탈진 산길 거름을 져다 부리고 빈 지게로 집에 오기가 아까워 묵은 고춧대 한짐 짊어지시고 해 저문 강길을 홀로 어둑어둑 돌아오시는 어머니, 마른 풀잎보다 더 가볍게 흔들리시며 징검다리에서 봄바람 타시는 어머니. 아, 불보다 더 뜨겁게, 불붙을 살도 피도 땀도 없이 식지 않는 발바닥으로 뜨겁게 뜨겁게 바람 타시는 어머니. 어느 물, 이 나라 어느 강물인들 어머님의 타는 발바닥을 식히겠습니까 어머니, 우리들의 땅이신 어머님.

 

 

 

섬진강15

겨울, 사랑의 편지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빛을 머금으며

서리 낀 풀잎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가만 어는

살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풀들의

몸 다 누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는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 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섬진강18

나루

 

 

섬진강 나루에 바람이 부누나

꽃이 피누나

나를 스쳐간 바람은

저 건너 풀꽃들을

천번 만번 흔들고

이 건너 물결은 땅을 조금씩 허물어

풀뿌리를 하얗게 씻는구나

고향 산천 떠나보내던 손짓들

배 가던 저 푸른 물 깊이 아물거리고

정든 땅 바라보며

눈물 뿌려 마주 흔들던 설운 손짓들 두고

꽃길을 가던 사람들

지금 거기 바람이 부누나

꽃이 피누나

하루에도 몇번씩 오가던 뱃길

뱃전에 부서지며 갈라지던 물살을 보며

강 건너 시집간 누님도 객지로 가고

공장 간 누이들은 소식도 없다가

남편 없는 아기엄마 되어

밤배로 몰래 찾아드는

타향 같은 고향 나루

그래도 천지간에 고향이라고

이따금 꽃상여로 오는 사람들

빈 배가 떠 있구나

기쁜 일 슬픈 일 제일 먼저

숨가쁜 물결로 출렁이던

섬진강 나루에

지금도 물결은 출렁이며

설운 가슴 쓸어

그리움은 깊어지는데

누가 돌아와서 이 배를 저을까

오늘도 저기 저 물은 흘러, 흘러서 가는데

기다림에 지친 물결이 자누나

풀꽃이 지누나.

 

 

 

시는 서울서 쓰고 사는 건 우리가 살고

 

 

일반벼는 공판하고

힘 좋은 놈 서울 가고

통일벼는 우리 먹고

머리 존 놈 이민 가고

 

재래종은 가두고

젊은 놈은 쥐어박고

개량종은 풀어두고

늙은이는 촌에 남고

 

잘사는 데 너그 살고

잘사는 건 너그 덕

못사는 덴 우리 살고

못사는 건 우리 탓

이자는 너그 갖고

본자는 우리 갖고

 

눈뜬 놈은 쌔려주고

잠자는 놈 떡 주고

우는 놈은 패주고

노는 놈은 한술 더 주고

돈은 너그가 쓰고

빚은 우리가 갚고

 

 

 

물레야 물레야

 

 

돌고 도는 물레 고비마다

사람 살 고비고비는 다 있다는데

이 고비나 저 고비나

행여 이 고비나

돌리고 돌리고 다시 돌려도

우리네 고비고비는

부모 형제 자식 잃어

한맺힌 실타래로

목 감기며 도는구나.

실타래 풀고 감고

한 시름에 두 시름

세 시름에 네 시름

시름시름 돌려봐도

우리네 기다리는 고비고비는

골골 숨넘어가는 피맺히는 소리로

몸서리치며 떨리다가

가락 끝에 반짝이는 피눈물로

피 흘리며 도는구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시 돌아올 저 고비는

우리네 시름 설움 다 자아올려

고른 실타래로

한 꾸러미 두 꾸러미

옴쏙옴쏙 떨어지거라.

 

 

 

풀꽃

 

 

우리 어디서부터

그리움 있어 매양 그리웁고

그 그리움 만나 흐드러지게 피려

목말라 애태우며

쓰러지고 일어서며

피 흘려 싸웠으니

흘린 피 땅에 강에 스며들고

뼈에 사무쳐서

이 땅에 몸바친 우리 사랑은

우리 빛,

우리 물,

우리 바람 찾아

산에 강에 언덕에

어머님 고추밭 가에도

이름 찾는

풀꽃으로 줄기차게 피어

더욱 곱고

 

 

 

고춧값

 

 

어머니,

올해도 어머니 맘과 하늘의 마음은

서로 잘 맞아 곡식들이 이렇게 저렇게

소담스럽습니다.

사람들은 콩 심으랄 때 고추 심고

고추 심으랄 때 콩 심었으나

어머님은 이제나 저제나 고추를 심으셨습니다.

저렇게 보기도 좋은 곡식을 자식들같이 가꾸어

이렇게 먹기도 좋게 다듬어서

누구 좋은 일만 시키고

어머니, 어머님은

쭉정이나 벌레 먹은 것들을 잡수시며 사셨습니다.

잘되면 잘되어 걱정

안되면 안되어 걱정으로

고추가 저렇게 불송이같이 이글거리는데

어머님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올해도 고춧금은 똥금입니다.

 

 

 

고향

 

 

한번 왔다 가는 이 세상

살면은 얼마나 살겠다고

울고 갔던 타관길

들꽃 피는 고향길에

꽃상여로 왔구나

앞산 뒷산 오동동

오동꽃이 피어

흰나비 노랑나비 훨훨 날아

이 건너 저 건너 물 건너

이 산 저 산 청산을 나는데

한번 왔다 가는 저 세상

잘 가소, 잘 있으소 눈짓도 없이

물 건너 저 건너

녹수야 청강 건너서

오월 청산을 가는구나

저 세상에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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