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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시의 운율

작성자자유/유기영|작성시간11.01.19|조회수1,082 목록 댓글 0

2.2. 시의 운율

 

2.2.1. 운율의 개념

 

  시든 산문이든 소리로 발음되는 모든 언어는 어느 정도의 운율적 흐름을 가지게 마련이다. 이것은 언어가 지닌 소리 자질을 사용하는 모든 표현 자체가 어느 정도는 운율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문이나 기타 언어에서보다 시에서 그것이 문제되는 이유는 시가 매우 의도적으로 이러한 소리 자질을 이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시에서의 운율은 의도적 배치이다.

  운율을 형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반복이다. 음운이나 음절 혹은 단어나 구절의 반복을 통해 시는 운율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반복성에 기반한 운율은 시에서 통일성과 연속성의 감각을 준다.운율이 반복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것이 시간적인 요소임을 보여준다. 시를 읽고 낭독하는 시간의 흐름이 개입될 때 운율은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소리의 반복을 통한 운율은 동일한 요소의 반복만이 아니라 차이까지도 포괄하게 된다. 대응되는 요소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어느 정도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게 되어도 운율적 감각으로 읽을 수 있게 되는데, 이를 병렬이라고 한다. 병렬은 주로 대비되는 두 구절 사이의 대조 내지는 대응의 원리를 통해 운율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2.2.2. 운율의 종류

 

  운율(rhythm)은 운(rhyme)와 율(meter)을 합한 개념이다. 운이란 한시나 영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으로 일정한 소리가 일정한 위치에서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한시에서는 주로 각운의 형태로 사용되며 두운이나 자음운, 모음운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를 압운이라고 한다.

  율은 율격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고저나 장단 혹은 강약과 같은 율격적 특징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운이 일정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음운의 반복이라면, 율은 시간적 질서 위에서 나타나는 일정한 양의 반복을 말한다. 이 둘은 규칙성과 반복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동일한데, 규칙성과 반복성은 운율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면서 시의 정형성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이러한 운율은 한 언어 체계가 지니고 있는 소리 자질과 매우 깊은 관련을 가지는데, 강세가 단어에서 의미의 차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영어의 경우에슨 강약률이, 모든 단어들에 소리의 고저가 존재하는 한시의 경우에는 고저율이 중요한 운율적 자질이 된다.

  운율을 언어 자질에 따라 나누면 복합율격과 단순율격으로 나눌수 있다. 복합율격이란 운이나 율이라는 소리 자질이 함께 작용하는 경우이고, 단순율격이란 이러한 두가지 중 한 가지만 소리 자질로 작용하는 언어를 말한다. 한시의 경우 고저율과 함께 압운이 작용하는 복합율격의 대표적인 경우이고, 영시에서도 시행의 일정한 위치에서 동일한 음적이 반복되는 rhyme과 함께 모음의 강약이 운율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므로 복합율격을 가진다고 하겠다.

 

2.2.3. 우리 시의 운율

 

  본질적으로 우리 말에는 고저나 강약 혹은 장단과 같은 율격적 자질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말은 단순율격의 특징을 지니게 된다.

 

     청석령 지나거다 초하루 어디메오

     호풍도 차도찰사 궂은 비는 무삼일고

     뉘라서 내 행색 그려다 님계신 데 보낼고

                                                          - 효종대왕

 

     꽃가루와 같이 보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은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 이장희, 「 봄은 고양이로다 」중에서

 

  위의 글을 보면 압운의 형태를어렴풋이 확인 할 수 있다. '어디메오', '무삼일고', '보낼고'라는 단어의 마지막이 모두 '오'로 끝나고, 이장희의 시에서도 매행의 끝부분에 '에'음과 '도', '다' 음이 의도적으로 배치됨으로써 압운의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압운으로 제시된 것들은 모두 조사나 어미에 해당하는 것으로, 우리말의 경우 조사나 어미는 문법적인 역할과 관련이 되어 있어 소리의 반복을 통해 의미를 강조하기 힘들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압운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한 우리말과 같은 교착어는 한 문장이나 어절의 끝부분에 사용되는 음상이 빈약하여, 문장이 끝나는 경우에는 평서형 '다'이거나 의문형 '까'와 같은 것이 대부분이고 문장이 이어지는 경우에도 연결어미나 조사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어 다양한 음상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이것은 한국시가 영시나 한시와 같은 복합율격이 아니라 비교적 간단한 구조를 가진 단순율격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데, 그런 까닭에 학자들은 한국시의 율격을 음수율 혹은 음보율에서 찾게 되었다. 음수율이란 음절의 숫자가 일정하게 반복되는 것으로 우리가 흔히 7.5조니 4.4조니 하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한 행의 음절의 수가 7자,5자로 이루어져 있거나 4자.4자로 이루어져있는 정형시가의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시조의 정형률도 이러한 음수율로 나타내는데 3.4/3.4//3.4/3.4//3.5/4.3 으로 대표된다. 그러나 이것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시조는 거의 없으며, 3.4조의 음절은 일상적인 언어 자체에 내재하는 음절이기도 하므로 시가에서 의도적인 배치를 통해 달성하는 효과라고 보기 힘든점도 있다. 즉 우리말 어휘에는 주로 2음절 내지 3음절로 이루어져 있는 단어가 많은데, 여기에 1음절 혹은 2음절의 조사나 어미가 붙으면 3음절이나 4음절의 단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보율이 논의 되기 시작되었는데 음보란 영시의 foot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시를 읽을 때 휴지(休止)에 의해 자연스럽게 구분되는 단위를 뜻하며, 음보율이란 이러한 음보가 한 행에 몇 번 반복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율격을 말한다.

 

     빼어난 / 가는 잎새 / 굳은 듯 / 보드랍고

     자줏빛 / 굵은 대공 / 하이얀 / 꽃이 벌고

     이슬은 / 구슬이 되어 / 마디마디 / 달렸다

                                                            - 이병기, 「난초 」

 

  위의 글 처럼 한 번의 호흡 속에 발음하게 되는 단위를 묶어서 하나의 음보로 잡고 이것이 한 행에 몇 번이나 반복되는지를 따지는 것이 음보율이다.

  음보율은 고전시가의 율격적 특징을 밝히는 데 매우 유용한 개념인데, 우리 시가에서 자주 나타나는 음보에는 3음보와 4음보가 있으며 이것은 그 장르의 속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3음보는 우리의 미의식과 결부된 고유의 리듬으로 고려속요나 민요 등에 주로 나타나는 서민적인 리듬인 반면, 4음보는 중국 문화의 우수개념(遇數槪念)의 영향으로 성립된 리듬으로 시조나 가사 등 사대부들의 문학에 주로 나타나는 리듬이다.

 

2.2.4. 자유시와 산문시

 

  시의 운율을 말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운율은 정형시를 논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현대시는 자유시와 산문시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말은 현대시가 과거의 정형시가 지닌 외형률, 즉 표면적으로 드러난 율격과 행과 연의 배열에서 오는 정형성을 깨뜨리고 이탈된 형태라는 것이다.

  자유시의 경우 정형시가 지니고 있던 행과 연의 배열방식은 유지하고 있지만 정형적인 운율은 완전히 파괴해 버린다. 그러나 자유시는 매 시편마다 그 시편만의 독특한 운율을 창조하는데 이러한 자유시의 운율을 내재율이라고 부른다.

  산문시는 자유시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운율의 바탕이 되는 행과 연의 구분을 아예 없애버린 것을 가리킨다. 즉 자유시는 행이나 연이 구성단위가 되지만 산문시에는 이러한 행이나 연이 없이 '단락'이 기본적인 구성단위가 된다. 그러나 산문시는 산문과 달리 짧고 압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명백한 운율과 소리 효과, 이미저리의 사용과 같은 의장을 다양하게 사용한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 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박두진,  「 해 」중에서

 

      을지로 3가역 지하통로, 시골 노파가 버들피리 팔고 있다. 밤 10시 반, 노파는 석상같이 굳어져, 표정 없이 바쁜 발걸음들 밑으로

   줄기차게 버들피리 불어 보내고 있다. 지하철 소음 사이사이, 짓눌린 공기가 버들피리 울음 먹을 때마다 파랗게 떨며 조그맣게 부

   풀어 오르고  있다. 눈알이 시뻘개지도록 토해 내는 버들피리 소리 유효사거리, 전철 소음에 반비례로 오무라지고 늘어난다. 전철

   소음에 밟힌 버들피리 소리 무심코 밟고 지나가다.

     하고 많은 세상 장사 중에 왜 저것밖에 모를까?

     아내는 스스로에게 짜증내며 돌아가 백 원짜리 하나 산다.

                                                                         - 서림, 「 아내는 버들피리를 분다 」중에서

 

  위의 박두진 시는 동일한 단어의 반복을 통해 운율이 외면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서림의 시에서는 이러한 외면적인 운율을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시로 읽게 되는 이유는 이 시가 가진 표현방식에 있다. 시적인 응축과 시적으로 사물을 이해하는 자아의 시선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산문시는 형태적으로는 산문과 크게 다를바 없지만 시적인 여러가지 기법들을 가져와 사용하기 때문에 당연히 시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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