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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시의 수사학

작성자자유/유기영|작성시간11.01.24|조회수254 목록 댓글 0

2.4. 시의 수사학

 

2.4.1. 비유

 

  시에서 비유는 세계 인식의 수단으로서, 그리고 시적 표상의 한 형태로서, 새로운 체험내용 혹은 심상을 담을 수 있도록 사용되는 의장의 하나이다. 비유는 원래 전이 혹은 이월을 뜻하는 말로, 하나의 표현으로부터 다른 표현으로의 이동을 뜻하며, 이러한 의미론적인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유추이다. 유추는 서로 다른 대상 사이에 비슷한 성질을 추정해 내는 추리작용을 말한다.

  이러한 비유를 시학에서 사용하는 수사학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결합관계이다. 원관념은 화자가 원래 드러내고자 했던 사상 혹은 정서를 뜻하는 단어로 주지라 부르기도 하며, 보조관념은 원관념을 표현하기 위한 표현수단 혹은 표현방식을 말하는 것으로 매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주지와 매체 사이가 하나의 비유로 결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사성이 존재해야 하고 이것을 파악하는 방법이 상상력의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인 유추이다. 이처럼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유추적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유사성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사성이 쉽게 간파되는 것이거나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일 경우에는, 그 유사성이 새로운 의미를 지니기 힘들기 때문에, 이러한 비유를 죽은 비유(dead metaphor)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기에 비유를 형성하는 요소에는 동일성 못지않게 차이성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추적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유사성이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동일성을 형성하여 의미를 형성하는 것이라면, 차이성은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동일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결국 비유는 차이성 속의 유사성을 필요충분 조건으로 삼게 된다.

  시인이 발견하는 두 사물 사이의 유사성 혹은 동일성은 차이성이 클수록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데, 테이트는 보조관념과 원관념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팽팽하게 고조되어 긴장의 강도가 커지고 그것이 시를 더욱 시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하여 시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서 긴장(tension)을 주장한다.

 

1) 직유와 은유

  비유 가운데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관계가 직선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을 직유라고 말한다. 직유는 대개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관계를 '~와 같이, ~처럼, ~인 양, ~만큼'등의 연결어를 통해 결합한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얕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김영랑,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

 

  직유는 표면적으로 둘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드러내기에 독자들에게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김영랑의 시에서 매행 끝부분이 '같이'라는 단어로 직유를 사용하고 있는데, '내 마음' 과 '햇발', '샘물' 사이의 관계가 선명하게 인식되는 효과가 생긴다. 이렇게 시인은 직유를 통해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형성되는 의미의 상관관계를 독자에게 전달함으로써 구체적이고 선명한 정서까지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은유는 직유보다 함축된 의미의 밀도를 훨씬 풍부히 지니고 있는데, 표면적으로 드러난 관계성에 한정되는 직유가 그러한 속성 때문에 표현하기 힘든 영역까지도 은유는 드러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은유는 모든 비유 방법 전체를 총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될 정도로 가장 중요한 수사학 중의 하나이다. 은유는 직유와 달리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연결어 없이 'A는 B이다'의 형태로 제시된다. 그러한 형태상의 특징 때문에 은유는 암유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명확하게 그 관계가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암시적으로 유추적 관계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어느 먼 -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먼 -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찬란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 김광균, 「 설야 」

 

  이 시는 눈 내리는 밤의 고요한 정취를 서정적인 비유를 통해 묘사하고 있다. 눈 내리는 밤이 추억처럼 다가오고, 그것이 옷 벗는 여인의 조용한 소리처러 정답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러한 정감을 표현하기 위해 시인은 다양한 수사법을 동원하는데, 그 중에서 특히 은유는 매우 중요하다. '눈'은 ' 먼 - 곳의 그리운 소식'으로 ' 여인의 옷벗는 소리',  '잃어진 추억의 조각'으로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고적하고 조용한 정적의 세계와 그리운 추억의 세계로 안내한다. 또한 2연에서는 '~양'이라는 직유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은유는 본질적으로 전이의 형태로 사용되며 이러한 은유에는 대체 혹은 치환의 효과가 있다. 휠라이트는 이러한 전통적인 은유를 치환은유라고 설명하며, 그것을 현대시에서 새롭게 나타난 시적 표현법의 하나인 병치은유와 대비해서 설명하고 있다. 치환은유는 말 그대로 보조관념이 원관념을 대체하는 방법, 즉 치환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비해, 병치은유는 시구와 시구를 병치함으로써 그 병렬과 종합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 이때 사용된 두 사물 혹은 이미지 사이에서는 쉽게 유사성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A는 A대로, B는 B대로 독립성을 유지하는 관계이며,어느 것이 원관념이 되고 어느 것이 보조관념이 되는지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벙치은유가 극단적인 단계로 확장되면 단어 혹은 이미지 사이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전혀 상호관계를 파악할 수 없는 이미지들이 나열되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이 때의 이미지들은 비논리적으로 결합하게 되고, 그 결과 시는 무의미의 예술이 된다.

 

     모래밭에서

     수화기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 조향, 「 바다의 층계 」

 

  이 작품에서 보는 여러 이미지들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일상적이고 논리적인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각 이미지들은 비논리적으로 병치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병치은유의 시는 현실이나 관념의 모방적 요소가 사라지고, 아주 난해한 추상화와 같은 형식이 되어 버린다. 현대시, 특히 초현실주의시나 해체시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시 같은 경우 이러한 병치은유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 환유와 제유

  환유와 제유는 모두 어떤 사물을 그것과 연관성이 있는 다른 사물로 대신하는 비유법으로, 대유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환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구분되어 있으며, 각각 독립된 전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백의 민족'에서의 '백의'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백의 민족은 우리 민족에 대한 비유적 이름이다. 그런데 여기서 흰옷은 우리 민족을 구성하는 구성요소가 결코 아니며, 단지 우리 민족이 즐겨 입는 옷의 색깔에 불과하다. 즉 흰옷은 우리 민족이 자주 입고 좋아하는, 우리 민족과 인접해 있는 사물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사물이 된 것으로 이러한 비유를 환유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제유는 부분으로 전체를 나탄재거나 전체로 부분을 지칭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5쌍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표현한 경우 '눈'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과 구조적으로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형성한다. 이렇게 둘 사이에는 부분과 전체로서 결합이되는데 이러한 비유를 제유라고 한다.

  환유와 제유는 모두 인접성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에 바탕을 둔 은유와 대비되는 수사학이다. 인접성이란 물리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 인접해 있는 사물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원리를 말한다. 흰옷과 우리 민족 사이의 환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두 사물들 사이의 인접성 때문인 것이다.

 

2.4.2. 상징

 

  상징(symbol)은 '조립하다, 짜 맞추다'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symballein에서 유래한 말인데, 이것의 명사형은 '부호, 증표, 기호'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상징은 쉽게 말해 그 무엇에 대한 신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문학적으로 사용되면 내적인 상태, 즉 불가시적이고 관념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세계의 사물들을 지칭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것은 연상의 힘, 즉 상상력이다.

  상징은 은유와 마찬가지로 원관념과 보조관념이라는 두개의 요소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이 명확히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1) 상징은 원관념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은유와 다르다. 그래서 상징을 원관념이 은폐된 은유라고 말하기도 한다. 은유도 원관념이 문장표현 속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은유는 문맥을 통해 쉽게 원관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상징에서 원관념은 문맥을 통해 유추적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2) 상징의 원관념은 불가시적인 사상 혹은 관념이라는 점에서 은유와 구별된다. 상징의 원관념은 사상이나 관념 혹은 정서적인 세계에 뿌리를 깊이 박고 있기 때문에 상징을 해석할 때에는 항상 고차원적인 유추가 필요하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윤동주, 「 십자가 」

 

  이 시에서 1연의 십자가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을 당한 십자가를 말한다. 그러나 3연의 십자가는 그 의미가 상당히 달라진다. 즉, 1연의 십자가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양으로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면, 3연의 십자가는 일제강점기 하의 우리 민족이라는 제한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타인을 위한 희생이라는 공통점이 흐르지만, 이러한 차이를 통해 윤동주는 개인적 상징을 창조하고 있다.

3) 상징은 원관념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은유가 보조관념과 원관념 사이가 1:1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비해, 상징은 1:多으 관계를 형성한다. 상징은 해석자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된다.

4) 상징은 또한 모든 의미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상징은 항상 감춤과 드러냄의 양면성을 필연적으로 지니며, 모든 해석의 경우에도 항상 여운이 남는데, 이는 상징의 암시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상징은 관습적 상징과 창조적 상징으로 나눌 수 있다.

1)관습적 상징 : 의미가 고정되어 있고 창조적인 속성이 타타나지 않기 때문에 시에서는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자연적 상징, 제도적 상징, 알레고리컬 상징 등이 있다.

2) 창조적 상징 : 시인 자신이 독창적으로 만들어 내는 상징으로, 개인적 상징이라고도 한다.  시에서 많이 사용되는 상징이다.

윤동주의 「 십자가 」에서 1연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기독교의 제도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3연의 십자가는 윤동주 개인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창조적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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