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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감동글

<감동글>-심성이 고우면 복도 따라 옵니다.

작성자자유인한문희|작성시간26.06.10|조회수49 목록 댓글 0

■ 심성이 고우면 복도 따라 옵니다.■

조선 철종 임금 때 경상도 상주 땅에 서씨 성을 가진 농부가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그냥 "서 선달" 이라고 불렀습니다.

원래 선달이란 문과나 무과에 급제를 했으나 아직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었지만,

이 사람은 무슨 급제와는 관련이 없었고 그냥 사람이 심성이 착하고 무던해서 사람들이 (그를 대접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서 선달은 남의 땅을 빌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았는데,

어느 해 인가는 봄이 왔어도
그해 농사를 지을 비용이 없을 정도로 곤궁 하였지요.

생각다 못한 그는 부산 쌀가게에서 장부를 담당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큰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효자 아들은 주인께 통사정을 하여 6개월치 월급을 가불 받아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서 선달은 500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느 고개를 넘던중 그만 돈을 흘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반대쪽에서 고개를 넘어오던 한 양반이 이 돈 꾸러미를 발견했는데 세어보니 한 백냥쯤 되는 큰돈이었습니다.

한편 서 선달은 30리는 더 가서야 돈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는데
전 재산을 잃어버렸으니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 돈을 발견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횡재라고 좋아하는 하인에게 일러 말하기를
"잃은 사람은 반드시 찾아온다.
목숨같이 귀한 돈을 잃은 그 사람은 얼마나 속이 탈꼬"

그 노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몇 시간이고 돈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과연 한참 후 서 선달이 얼굴이 훍빛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그 사람은 주운돈을 서선달에게 돌려주자

서 선달은 "어른께서 제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하며 돈을 찿아준 은혜를 갚겠다며 사례를 할려하는데~

그사람은
"은혜랄게 있소, 당연한 일인데"
하곤 펄쩍뛰며 사양을 했습니다.

그는 주운돈 100 냥을 서 선달에게 잘 전달을 해 준뒤 가던 길을 갔습니다.

서 선달도 다시 집을 향해 갔고 이윽고 어느 강가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마침 한 소년이 물에 빠졌는데 구경꾼은 많아도 누구하나 뛰어들어 구해줄 생각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서 선달이 외쳤습니다.

"누구든지 저소년을 구해내면 백냥을 주겠소"

그러자 어느 장정이 뛰어들어
소년을 살려 냈습니다.

죽다 살아난 도령이 선달에게 말하기를~

"정말 고맙습니다. 어른이 아니었으면 저는 수중고혼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희 집은 안동에서 제일 큰 부자인데 함께 가시면 백냥을 갚아 드리겠습니다"

서 선달은 무슨 사례를 받고자
한 일은 아니었으나 자기의 사정도 있는지라 같이 안동까지 가게 되었는데~

안동의 총각집은 과연 고래등 같은 부자집이었습니다.

그때 소년의 부친이 득달같이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부친이란 사람은 다름 아닌 서 선달의 돈을 찾아준 바로 그 노인이었습니다.

"온 재산을 털어 제 아들을 구해 주시다니 당신은 진정 의인이요
정말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댁의 아드님은 어르신께서 살려내신 것입니다.
제가 돈을 잃었다면 무슨수로 살렸겠습니까?"

"겸손의 말씀이십니다.
7대독자 외아들을 살려주신 은혜 백골이 되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안동 권 부자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살려준 보답으로 돈 천냥을 나귀에 실어 서 선달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서 선달이 사는 상주 고을을 찾아와 백섬지기 전답까지 사주고 돌아 갔습니다.

이 일은 후에 조정에까지 알려져 안동과 상주 두 고을이 모두
조정으로부터 후한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노인의 집안은 그 당시 안동 권부자 하면 그 일대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만석꾼 집안이었다고 하는데 ~

이 권부자는 부자이면서도 심성도 착해 남에게 베풀고 덕도 많이 쌓아 고을 사람들로 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고 하며

그런 착한 심성은 후손에게도 계속 이어지고 있답니다.

-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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