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님의 카톡 메일.
【2024년 10월 17일 (Thr.)】 Good morning!!!
▣ 【그냥 한 번 걸어봤다.】
"아비다. 잘 지내? 한 번 걸어봤다…”
대개 부모는, 특히 자식과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는
“한 번 걸었다”는 인사말로 전화 통화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왜 그러는 걸까. 정말 일상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그냥 무의식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통화 버튼을 눌러보는 것일까. 심심해서?
그럴 리 없다. 정상적인 부모가 자식에게 취하는 모든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추측은 이렇다. 당신의 전화가 자식의 일상을 방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에, “한 번 걸어봤다”는 상투적인 멘트를
꺼내며 말문을 여는 것은 아닐까.
행여나 자식이 "아버지, 지금 회사라서 전화를 받기가 곤란해요" 하고
말하더라도 “괜찮아, 그냥 걸어본 거니까"라는 식으로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덤덤하게 전화를 끊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냥 걸었다는 말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고 표현의 온도는 자못 따뜻하다.
그 말속에는 “안 본 지 오래됐구나. 이번 주말에 집에 들러주렴"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같은 뜻이 오롯이 녹아 있기 마련이다.
주변을 보면 속 깊은 자식들은 부모의 이런 속마음을 잘 헤아리는 듯하다.
그래서 그냥 한 번 걸어봤다는 부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평소보다
더 살갑게 전화를 받는다. 전화기가 얼굴에 닿을 정도로 귀를 바짝 가져다 댄다.
"그냥"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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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지음
【언어의 온도】
- P. 033 ~ 034 중에서
옮긴 이 : S. I. AHN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