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님의 카톡 메일
【2026년 06월 15일 Mon.】
Good Morning!
▣ 【어디 길이 따로 있습니까 - 덕현 스님】
지나온 길에도 갈 길에도 미련이나 욕심 따윈 없는 눈빛이다.
말씀에도 서두름이 없고 다음 행보를 위한 재촉도 없다.
내일이든 내년이든 십 년 후든 똑같은 보폭으로 여여히 걸어갈 듯
스님은 단출하고 고즈넉한 방에 수도승처럼 앉아 있었다.
그리고 여낙낙한 스님의 말 품새는 마치 오래된 선방의 부드러워진
미닫이문을 닮아 있었다. 스님은 차를 한잔 내주시더니 문득
허준과 그의 스승 류의태 이야기를 꺼내신다.
의원 류의태는 자신의 친자식들과 허준을 함께 가르쳤다.
그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떠났는데 도중에 전염병이 도는 마을을 지나게 됐다.
류의태의 자식들은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라 그냥 지나쳐갔으나
허준은 그곳에 머물며 사람들을 치료했다. 당연히 과거시험은 보지 못했다.
류의태는 허준이야말로 의사가 될 인물이라 생각하고 허준에게 모든 것을
전수해 주었다. 수행자라면 산중에서 다리 틀고 앉아만 있을 것이
아니란 말씀이다. 선방만 다니다가 그것이 공허하게 느껴지면 언제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사람들의 아픔을 보고
그 속에서 재 발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행이라는 것은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생사의 고통에 직면하지 않으면 발심이 힘들어요. 중생의
괴로움과 아픔을 외면하고서는 수행도 힘들지요.
법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었던 덕현 스님은 군사정권의 시녀로서만
존재하는 법을 보았다. 그런 법이 정한 것을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이 세상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으니
탐진치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 세상의 문제도 풀리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꿈꾸는 이상적 사회도 구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출가를 결심하고 바로 법정 스님을 찾아갔다.
"진짜 법, 불법을 공부하게 된 것이지요. 둘 다 법이라는 말을 쓰긴 하지만
하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기적인 동기로 나온 것이고 하나는 깨달음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 근원을 향해 나아가는 가장 이상적인 법이죠.
그런 진정한 법을 찾아 떠나오면서 가짜 법, 세속의 법을 버린 것이지요."
스님과 가벼이 걸으며 여쭌다. 요즘은 마음이 어떠십니까?
"정말 중답게 살아간다면 무슨 미련이 있고 후회가 있고 대단한 욕망이
있겠어요. 즐길 만합니다."
산보를 마친 스님께 여쭙는다. 이제 어디로 가시렵니까? 그러자 스님은
이 한겨울에도 바위 위에서 얼어붙지 않고 숨 쉬는
초록빛 이끼를 매만지며 말씀하신다.
"어디 길이 따로 있습니까. 그때그때 자기 안의 진실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마음 챙기며 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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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영 지음
【누구도 아프지 말아라.】
- P. 171 ~ 175 중에서
옮긴 이: S. I. AHN(정수님, 요셉)
註: 여낙낙하다
부드럽고 상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