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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 목사의 악행?

작성자숭산|작성시간26.06.10|조회수68 목록 댓글 1

한경직 목사는 한국 개신교계의 거목이자 청빈한 삶으로 큰 존경을 받은 인물이지만,

그의 현대사적 행적 속에는 서북청년회 연루, 독재 정권 협력,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등 뚜렷한 과오와 비판점이 공존합니다

 

1. 서북청년회 조직 주도 및 제주 4·3 학살 묵인·정당화

한경직 목사는 해방 직후 개신교 세력의 극단적 반공주의를 폭력적인 백색 테러 조직과 결탁하게 만든 중심인물이었습니다. [1, 2]

  • 영락교회가 서북청년회의 본거지: 1945년 북한에서 소련군과 공산주의 세력에게 토지와 재산을 몰수당하고 남하한 개신교 청년들이 서울 영락교회(당시 베다니전도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는 이 청년들을 모아 서북청년회(서청)라는 우익 청년 단체를 결성하도록 주도하고 지원했습니다. [1, 2, 3]
  • 제주 4·3 사건 유혈 진압 투입: 1948년 제주 4·3 사건이 발생하자 이승만 정권은 서북청년회 단원들을 경찰과 군인 신분으로 제주도에 대거 투입했습니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를 색출한다는 명목 아래, 임산부의 배를 가르거나 영유아를 돌에 메치고 민간인을 집단 학살하는 등 극악무도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1, 2]
  • 설교를 통한 학살 정당화: 한경직 목사는 이들의 잔혹 행위를 제지하기는커녕, 당시 설교와 사상 교육을 통해 '공산주의는 사탄이자 붉은 용'이라는 이분법적 교리를 심어주었습니다. 이는 서청 단원들에게 "내가 하는 학살은 신의 뜻을 행하는 거룩한 전쟁"이라는 종교적 확신과 면죄부를 주어 참상을 더욱 키웠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1, 2]
  • 본인의 육성 증언: 1982년 발간된 자서전적 대담집 《한경직 목사》에서 그는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라고 말하며, 서청의 잔혹한 민간인 학살을 국가를 위한 '평정' 작업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1]

2. 신군부(전두환) 정권 찬양 및 조찬기도회 축복

한경직 목사는 권력의 대변자 역할을 하며 군사 독재 정권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해 주는 종교적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1, 2]

  • 5·18 광주 유혈 진압 직후의 축복: 1980년 5월, 전두환의 신군부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수많은 시민을 학살했습니다. 그 직후인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찬양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열렸습니다. [1, 2]
  • 독재자를 향한 축도: 이 자리에 한국 개신교의 최고 원로였던 한경직 목사가 참석하여 전두환을 위한 축복 기도를 집례했습니다. 당시 기도회에 참석한 목사들은 전두환을 가리켜 "어려운 시기에 사회악을 제거하고 정화 운동을 이끄는 모세와 다윗 같은 지도자"라며 찬양했습니다. [1, 2, 3]
  • 정권 안보의 도구화: 민주화를 요구하던 동료 목사들과 대학생들이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던 시절, 대형 교회 지도자였던 그는 독재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함으로써 신군부의 권력 찬탈을 종교적으로 공인해 주었다는 거센 역사적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3.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와 친일 협력 논란

종교적 정결함과 민족정신을 저버리고 일제의 식민 지배 정책에 순응한 배교 행위입니다. [1]

  • 신의주 시절의 굴복: 1930년대 후반 일제는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개신교계에 일본 천황을 숭배하는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당시 주기철 목사 등은 이를 거부하다 순교했으나, 평북 신의주 제2교회를 담임하던 한경직 목사는 결국 일제의 압박에 굴복하여 신사참배에 동참했습니다. [1, 2]
  • 친일 관제 단체 가담: 1941년 일제가 기독교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친일 단체인 '조선예수교장로회 신의주노회 필그림 전도대' 등에 참여하며 일제의 전시 체제와 황민화 정책에 협력한 흑역사가 있습니다.

역사적 과오에 대한 후대의 시선

  • 뒤늦은 참회: 한경직 목사는 1992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하는 전 세계적인 무대에서 "나는 신사참배를 한 죄인입니다"라고 눈물로 대중 앞에 과오를 자백했습니다. 그러나 평생 서북청년회의 잔혹한 민간인 학살이나 군사 정권 비호 행위에 대해서는 역사적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사죄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 맹목적 반공주의의 폐해: 현대 역사학계와 양심적인 개신교계에서는 한경직 목사의 청빈함과 사회복지(월드비전, 보린원 등) 업적은 인정하면서도, 그의 맹목적인 반공 신앙이 어떻게 끔찍한 국가 폭력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반면교사로 평가합니다. [1, 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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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shorts/6YL7oO0AUTk?si=MwAEbPauD_4z3O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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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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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숭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0 사회의 화합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게 목사의 직분입니다.
    한경직은 친일에 동조하고 양민을 비참하게 죽이도록 앞장선 천하의 민족 반역자, 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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