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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풍불경(南風不競)

작성자박사장|작성시간26.06.08|조회수16 목록 댓글 0

남풍불경(南風不競)

중국 남쪽의 음악은 음조가 미약하고 활기가 없다는 뜻으로,

대체로 세력이 크게 떨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南 : 남녘 남
風 : 바람 풍
不 : 아니 불
競 : 다툴 경

 

남쪽지방의 노래가 활기가 없다는 뜻으로,

남쪽지방의 세력이 부진함을 이르는 말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십팔년조(十八年條) 편에 있는 이야기이다.

 

노(魯)나라 양공(襄公) 18년에 진(晉)나라를

맹주(盟主)로 하는 노(魯)나라, 위(衛)나라,

정(鄭)나라의 연합군은 제(齊)나라를 공격하였다.

 

정(鄭)나라에서는 정백(鄭伯)이 대부인 자교(子蟜)와 백유(伯有),

자장(子張) 등을 거느리고 출정하고,

자공(子孔)과 자전(子展), 자서(子西)등의

대부들이 국내를 지키고 있었다.

자공(子孔)은 주력 부대가 원정하고 있는 사이에,

이 제(齊)나라 공격에 가담하지 않은,

 

남쪽의 초(楚)나라 군대를 끌여 들여,

다른 대부들을 내쫓고 권력을 장악하려 했다.

 

자공은 초(楚)나라의 재상 자경(子庚)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 일을 고하였지만 자경은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초(楚)나라의 강왕(康王)이

마음이 내키어 사자를 보내서,

 

“나는 즉위한지 5년이 되지만,

군대를 외국으로 파견한 일이 없다.

 

이래 가지고는 백성들은 내가 안일을 탐내어

선왕의 유업을 잊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니

재상은 파병을 해주시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자경은 한탄하였지만,

왕의 말이라 함부로 물리칠 수도 없어

하는 수 없이 사자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시험삼아 해보기로 하지.

일이 잘되면 임금이 따라 가면 될 것이고,

 

전세가 불리하면 군대를 후퇴시켜도

외국에 파병하는 것이니 왕의

불명예도 되지 않을 것이다.”

자경은 군대를 이끌고 정(鄭)나라로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정나라의 자전과 자서는 자공의 야심을 미리 알고,

 

수비를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상한 전과는 얻지 못하였다.

 

자공도 어리석게 초나라 군대에 응할 수는 없었다.

자경은 정나라의 도읍인 순문(純門)을,

 

공격하였지만 뺏을 수가 없었고,

이틀 뒤에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자경의 군대는 철수 도중에 비와 추위를 만나

많은 동사자를 내고 말았다.

초나라 군대가 출동하였다는 보고는

진(晉)나라에도 전해졌는데,

악관(樂官)인 사광(師曠)이 말하였다.

 

“해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자주 북풍을 노래하고,

또 남풍을 노래했지만,

 

남풍은 생기가 없고 죽음의 소리가 많다.

초나라는 반드시 공이 없을 것이다



역수가(曆數家)인 동숙(童叔)이 말하였다.

“하늘의 도는 서북쪽에 많이 있으며,

 

남쪽의 초(楚)나라의 군대는

때를 얻지 못하고 있으니,

필시 공이 없을 것이다.

정치가인 숙향(叔向)이 말하였다.

“그 임금의 덕에 달려 있다.

여기서 남풍불경(南風不競)이란

진(晉)나라의 사광(師曠)이

초(楚)나라를 평가한 말에 유래되었다.

 

초나라는 국민의 기풍이 저조한데다

천기를 얻지 못하였으며,

 

왕의 자질 부족과 정황 판단의

나약성 등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은 상대를 잘 알고 넘어설 실력을

기르는 것이 이기는 길이다.

 

회사와 같은 작은 조직도 그러한데

나라를 지키는 안보에서는 더욱 경계와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적이 넘보지 못한다.

 

세력이 약해 상대가 되질 않는다는 뜻으로

남풍불경(南風不競)이란 말을 쓴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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