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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주

작성자청포도|작성시간25.08.16|조회수26 목록 댓글 0

술은 인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과일들이 익어 떨어져 썩으면서 저절로 발효되어
나무 등걸이나 바위의 패인 곳에 고여있는 것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면서 인위적으로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천여년 전의 이집트 문명의 벽화에서도 술을 빚는 모습이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세계의 명주는 수없이 많이 알면서도 우리 한국의 술은 고작 소주나 막걸리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한반도 전역에서 옛부터 빚어낸 술의 종류는 헤아릴수 없이 많습니다
각 집안마다 제사에 반드시 필요한 가양주를 빚었고
그 술맛은 사람들의 입담과 함께 조선 팔도에 퍼졌지요

이제 얼마후면 한가위 명절이 돌아 옵니다
주과포혜라고 해서 제사의 기본인데 가장 먼저 나오는 주(酒), 즉 술입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술 한 병이면 산소에서 혼령을 뵈올수 있습니다
술은 자손과 조상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라는 뜻입니다
그 중요한 술을 빚기 위해 때로 밥 지을 쌀이 없더라도 곡식을 여투어 둡니다
봉제사 접빈객이 조선 사대부의 첫 째 의무 였습니다
사대부의 안방 마님은 그 가문을 빛내줄 가양주는 반드시 빚을줄 알아야 했고 접빈객으로 그 명성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술의 역사는 고려시대 중기까지만 해도 막걸리로 대표되는 탁주였다고 여겨집니다
술 만드는 기술이 탁월하여 일본에까지 그 기술이 전파되었고 청주의 원류는 우리 한반도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정종 (마사무네)-는 청주를 말함이 아니라 청주를 만드는 회사의 상표입니다
원나라에서 증류식 소주 만드는 방식 (증류기술)이 전해지기까지 청주는 탁주에서 걸러내는 방식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조선 시대에 귀한 쌀의 낭비를 막거나 계도 정책으로
몇 번의 금주령이 시행되기는 했으나 가정이나 상인들이 만드는 술에 세금이 붙지는 않았습니다

주세를 한반도에 도입한 것은 일제 강점기 1904년
메가타 타네마로가 탁지부 고문으로 취임하면서
부터 였습니다. 조선인에게 세금을 더 거두려는 정책에서 비롯되었지요
주세령을 피하기 위해 밀주를 만드는 가정이나 상인들이 늘어났고 그것은 해방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육이오 전쟁으로 모든 경제 기반이 완전히 무너지고 생활이 피폐해지자
양조에 쌀을 금지했고 이후 쌀의 생산이 늘어났어도 금지된 채로 있었습니다
막걸리는 밀로 만들어야 했고 전통주는 밀주라는 이름으로 단속을 당하기 일쑤였지요
그 많은 전통주는 사라지고 명맥마저 끊길 지경이 되었습니다

보릿고개가 사라지고 나라의 경제 발전이 시작되자
전통주의 필요성을 느끼는 움직임이 일어났으나
겨우 금복주에서 -경주법주-라는 이름의 술이 생겨났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말만 경주법주이지 정작 경주의 명문 집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술이었습니다
명가에서 제사와 접빈을 위해 만드는 술조차도
밀주라는 이름으로 단속을 해대니 결국 모든 전통주는 자취를 감출수밖에 없었지요
일제 강점기의 마인드가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의 술을 핍박 했습니다

소주와 막걸리 맥주 청주등만 있는 나라에 외국의 술이 넘치게 된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군요
어느새 우리 나라의 남자들은 모든 모임이나 술자리의 최고의 술은 양주, 즉 브랜디나 위스키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거의 그렇지만 요즘은 와인이 대세입니다.

1988년 올림픽이 시작되려던 전후
나라의 국격을 나타내는 전통주의 필요성이 대두 되었습니다
국빈들의 건배 때 이것이 우리나라의 술이다라고 소개할 술이 그 때 까지 단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수 백 가지의 가양주는 전국의 종가의 깊은 밀실에 숨겨져 있거나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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