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金正喜, 1786∼1856, 정조 10∼철종 7 ) : 조선후기 학자·서화가·금석 학자(金石學者).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완당(阮堂)·예당(禮堂). 본관은 경주(慶州). 충청남도 예산(禮山) 출생.
歲寒圖(국보 제 180호)
不二禪蘭
학문이란?: ‘한서(漢書)’ [하간 헌왕전(河間獻王傳)]에 이런 구절이 있다. “실제의 일에서 올바른 이치를 구한다.” 이 말은 학문을 하는데 가장 긴요한 도리를 담고 있다. 만일 실제의 일에 힘쓰지 않고 단지 공허한 학문을 편하게 여기거나, 올바른 이치를 구하지 않고 그저 자기가 먼저 받아들인 말을 옳다고 주장한다면 성현의 도에 어긋나지 않음이 없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서예란?: 서법은 사람마다 전수받을 수 있지만, 정신과 흥취는 사람마다 자신이 스스로 이룩하는 것이다. 정신이 없는 글은 그 서법이 아무리 볼만해도 오래 두고 감상하지 못하며, 흥취가 없는 글은 그 글자 체(體)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고작 글씨 잘 쓰는 기술자라는 말밖에 듣지 못한다. 흉중(胸中)의 기세(氣勢)가 글자 속과 행간에 흘러나와 혹은 웅장하고 혹은 넉넉하여 막으려야 막을 수 없어야 하는데, 만일 겨우 점과 획에서만 글씨의 기세를 논한다면 아직 한 단계 멀었다 할 것이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사군자 중의 난이란?: 사란유법불가무법역불가(寫蘭有法不可無法亦不可: 난초를 그림에 법이 있어도 안 되고 법이 없어도 또한 안 된다) -명필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난(蘭)을 치는 것이 비록 9999분(分)까지 이르렀다 할지라도 그 나머지 1분이 가장 이루기 어렵다. 9999분은 거의 다 가능하겠지만, 마지막 이 1분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사람의 힘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이치를 알지 못하고서 모두 망령되이 난을 치고 있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난(蘭)을 치는 일은 종이 서너 장을 넘어서는 안 된다. 신기(神氣)가 모이고 마음과 대상이 하나로 무르녹아야 함은 글씨든 그림이든 매일반이지만, 난을 치는 데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어찌 작품을 많이 만들 수 있겠는가. 만일 화공(畵工)들이 그리듯 그린다면 한 붓에 일천 장의 난을 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작품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때문에 나는 난을 많이 치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http://cafe.daum.net/hanho101